[Opinion] 당신의 원미동은 언제 그리고 어디에 있나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3.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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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가득한 글을 쓰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늘 '양귀자' 작가를 고른다.

그의 글을 읽으면 마치 '인간극장'의 한 장면을 돌려보는 것처럼 사람들의 행동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감정과 욕구들까지 섬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섬세한 관찰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양귀자 작가는 사람 행동 이면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라도 늘 깊이 공감하며 빠져들고 마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양귀자 작가의 힘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원미동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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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원미동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하나의 큰 이야기가 아닌 소제목 별로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에 집중한 단편들이 연결된 구성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사연들은 마냥 밝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희망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사람들의 이기심과 욕망 또는 빈곤과 고단함 등의 어두운 부분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인지 총 11편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다른 책들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기보다, 마음속에 진득하게 남아서 더욱 긴 여운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원미동 사람들'은 독자들의 마음 한구석 저편의 삶의 기억들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우리들 모두가 조금씩은 어쩌면 비관적인 삶의 기억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듯, 양귀자 작가의 글들은 내 이야기 아닌 내 이야기 같은 그런 착각이 들게 한다.

 

 

 

멀고 아름다운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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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장인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11편의 이야기들 중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고, 동시에 어쩌면 잊어버릴 뻔한 어렸을 적 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이야기다.

 
이 편은 추운 날씨와 이삿날이 겹친 한 가족의 이사 풍경을 통해 그들의 경제적으로 빈곤한 삶의 고단함을 담은 이야기다.

 

추운 겨울날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1톤 트럭의 짐칸에서 덜덜 떨며 함께 실려가는 남편과 만삭인 아내의 모습은 짠함과 동시에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분명 그 가족은 처음으로 자기 집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행복하기보다 씁쓸한 감정이 더 커 보이는 걸까.

 

 

"그는 뭔가 기이하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넓고 넓은 서울에서 그는 여태껏 집을 갖지 못하고 살았다. ... 그런데 이제 집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것은 서울이 아니고 부천이라는 점이다."

 

"그는 대답을 찾지 못하였다. 아니 쫓겨가는 것은 아니다, 라고 거듭 생각하기는 하였다."

 

- '원미동 사람들' 중

 

 

점차 강해지는 바람과 더불어 깊어지는 남편의 속마음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이 가족은 결국 서울에 뿌리박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내 집 마련은 마냥 속 시원하지는 못하다.

 

한편, 이런 불편한 감정과 함께 떠올랐던 건 어렸을 적 우리 집 이사 풍경이었다.

 

어렸을 적엔 우리 집도 잦은 이사를 했다. 부모님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야말로 누구의 도움 없이 맨땅에 헤딩하기로 살 곳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터전의 시작은 오후 5시만 되면 아이들이 야구방망이로 벽을 부수면서 노는 연립주택이었다. 자신들이 사는 터전을 스스로 부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 보다 그러려니 하며 익숙해지던 때 우리 가족은 다시 다른 곳으로,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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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들게도, 이사 가는 기간은 소설 속 가족처럼 늘 겨울이었다.

 

여름마다 전학을 자주 다니셔서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유년시절의 경험을 나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주장으로 부득불 겨울에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학교에 적응은 잘 했을지언정, 부모님에게 겨울에 이사하는 건 정말 고된 일이었다. 지금이야 포장 이사에 청소업체도 부르면 이사 끝나고 몸만 들어가면 되지만, 그때의 경제적 사정에는 그런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삿짐 직원들이 짐을 푸는 동안 부모님과 나는 차 안이나 이사 가는 집 안에서 이리저리 직원들에게 치이면서 벌벌 떨며 기다리곤 했다. 그래서 이사만 끝나면 엄마가 연례 행사처럼 몸 져 누웠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어린 나는 새로 가는 곳에 대한 설렘이 컸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남들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이사를 다니는 고단함과 서러움을 느끼셨을 것이다. 가끔 그때 그 시절을 부모님과 이야기하다 보면 특히 어머니는 매번 새롭고 낯선 곳에서 무척이나 외로우셨다고 한다. 기댈 수 있을 정도로 자라지 않았던 어린 나와, 어딘가에 기대고 싶을 나이였지만 기댈 수 없었던 젊은 어머니,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꿈을 좇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던 아버지.

 

원미동 사람들의 첫 장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우리 가족의 마음 한구석에 있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이야기였다.

 

 

 

으악새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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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에는 원미동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제물포 주 씨, 슈퍼 김 반장 등 마치 내가 살고 있는 동네처럼 구체적이고도 입체적인 인물들이 나온다. 그중에 가장 짧게 언급되었지만 가장 깊게 인상에 남았던 인물이 있다면, 바로 '으악새 할아버지'이다. 양귀자 작가조차 더 다루지 못해 아쉬웠다는 인물인 으악새 할아버지.

 

 

"그것도 소리만 내뱉는 게 아니라 흡사 목젖 밑의 무엇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인 듯 양손바닥을 탁 치면서, 혹은 팔목을 내리치면서 으악, 외치는 것이었다."

 

- '원미동 사람들' 중

 

 

시도 때도 없이 밖에서 "으악! 으악!" 소리를 지르면서 다니기에 동네에서 으악새로 불리는 이 할아버지는 막상 일대일로 대화를 할라치면 말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뒤로 내빼는 모습을 보인다.

 

소리를 지르는 그 기세와 말조차 잘 잇지 못하는 모습에서 모순성이 짙게 배어있는 이 인물에 대해 소설 속에서는 딱히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그렇기에 원미동을 가장 대표할 수 있는, 아니 우리 시대를 가장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 인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이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4층짜리 연립주택에 산 적이 있다. 우리 집은 3층이었고, 맨 꼭대기 층에는 노부부와 젊은 아들이 살았다. 그런데, 그 집 할아버지가 정말 이상했다. 늘 집에서 뭔가 수리를 했다. 밤과 새벽에는 집에서 망치질을 하고, 낮에는 밖에서 망치로 유리병을 깨뜨리고 다녔다.

 

낮에 가끔 마주치면 말은 어눌해 보이고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는 그런 할아버지였다.

 

이 할아버지나 으악새 할아버지나 분명 뭔가 가슴에 맺힌 게 많은 사람들인 것 같다.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뒤로 한 채, 홀로 남아 고독해진 사람들. 찬란했던 그 시절을 공유할 누군가가 더 이상 없고, 늘 혼자 삭히는 사람들. 그 맺힌 것들을 연장으로 때려 부수면서 털었던 걸까. 으악새 할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날려버렸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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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원미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겪은 일들이 분명 아닌데, 언젠가 겪었던 것과 같은 감정들을 묘사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는 양귀자 작가 또한 '원미동 사람들'을 쓰면서 느꼈던 것 같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원미동은 우리 사회 어느 곳에든지 있다는 것을 실증해 주었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 '원미동 사람들', 작가 후기 중

 

 

직접 겪지 않았어도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 누구라도 겪었을 법한 그런 사연들이 원미동이라는 공간 속에서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것처럼 '원미동 사람들'은 우리에게 현실적인 위안을 준다. 완벽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아닌 오히려 평범하다 못해 그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고난을 보며 우리는 이 사람들도 살아가는데 나도 살아가야지 와 같은 위안을 받는 것이다.

 

'원미동 사람들' 속 양귀자 작가의 위안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 결말 때문이기도 하다. 딱히 이렇다 할 결말을 그녀는 쉽게 직접적으로 제시해 주지 않는다. 슬프다, 기쁘다 와 같이 명확하게 떠오르는 결말이 없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 이야기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향기가 짙게 묻어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미동 사람들의 삶이 비극적이고 힘들다고 정의 내릴 수는 없었다. 그저 내릴 수 있는 건 아마 그러더랬지.. 와 같은 마무리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순간순간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행복한 감정은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면 그때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정의 내리기 힘든 평범한 삶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원미동 사람들'은 다른 어떤 책들보다도 현실적인 위안을 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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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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