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대학생활의 끝에서 (1) 동아리

글 입력 2021.03.1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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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취준생’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학기에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생각은 없지만, 스스로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떠벌려야 부끄러워서라도 뭔가를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인지 자꾸만 무언가를 정리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가장 열정적으로 임한 일, 가장 힘들었던 일 같은 것들을. 자기소개서에 적을 일이 없어도, 20대 초반을 어떻게 추억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후회가 남을 것 같다. 그래서 4학년 2학기를 시작하는 지금, 지난 4년간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보려 한다.

 

*

 

취미에도 목표가 있어야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 나의 목표는 영화 1000편 보기다. 이런 목표를 세우게 된 데는 동아리의 영향이 크다. ‘인스타그램 하세요?’라는 말보다 ‘왓챠(피디아) 하세요?’ 라고 먼저 묻는 우리 동아리는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던 내 취향의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진지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고, 대학교에서 영영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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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피디아 기록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좋은 도구다

 


주된 활동은 발제자가 매주 대주제에 맞게 예술 작품, 문화 콘텐츠를 다룬 발제문을 준비해오면, 다른 부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발제문을 낭독하고, 발제자가 준비해온 질문에 각자의 대답을 내놓는 세미나였다.

 

모든 동아리가 그렇듯 술자리도 세미나만큼이나 중요했다. 다만 술 한 모금 마시지 않는 나도 소외감 없이 참여할 수 있었기에 좋았다. 지난 술자리나 누군가의 추태가 안주가 되지 않고, 좋아하는 것에 관해 마음껏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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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키스 해링 전시회

 

 

어설프게 참여할 것이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성격이다. 자유로운 참여가 원칙이지만 동아리에 들어간 이후로 급한 일이 없으면 세미나에 참여했고, 어쩌다 보니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동아리 박람회를 제외하면,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를 완성할 일이 없어서 특별히 마음고생 할 일은 없었다. 가끔 다른 사람들보다 예술에 관해 잘 모른다는 생각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내 문제일 뿐 드러내놓고 무시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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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에 들어간 이후로 내 삶의 중심은 더 이상 학교와 강의가 아니었다. 온갖 독립 영화들을 보기 위해 학교 근처의 영화관 시간표를 열심히 찾아봤고, 어느 미술관에서 무슨 전시가 있는지 적극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고, 재밌는 전시가 보이면 제일 먼저 동아리 부원들이 생각났고, 다들 어떻게 작품을 평가할지 궁금했다. 매주 동아리 시간을 기다리고, 발제 때 이야기할 작품을 언제 볼지 계획을 세워가며 열심히 참여했다.

지난 2월 동아리를 나오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를 취준생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동아리 부원들에게 한 명 한 명 말하지는 못했지만 - 그리고 이렇게나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 단체 채팅방을 나오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우습게도 바로 다음 순간, 세계문학 작품 속 주인공의 MBTI를 소개하고 있는 한 출판사의 게시물을 채팅방에 올릴까 하는 생각 - 심리학과인 나보다도 더 MBTI에 열광했던 부원들이기에 - 이 바로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앱을 켜기까지 했다가, 채팅방이 없는 것을 보고 더 허전한 기분으로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대학은 너무나 크고 넓고 나와 다른 사람들로 가득해서, 축제 때가 아니면 소속감을 느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나는 모두가 어울리던 축제에서조차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으니, 영영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어울리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는 섬으로 남게 될 줄로만 알았다.

 

학생회관의 제일 접근성 좋은 위치에 둥지를 틀고 있으면서도, 불친절하고 졸린 영화, 소음으로 가득한 음악, 알 수 없는 형체의 현대미술 작품을 좋다고 하던 사람들이 끝없이 들고 날던 동아리는 그래서 내게 더 위안이 되었는가 보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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