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독서 - 읽었는데요, 읽었습니다

글 입력 2021.03.1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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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최근 10대와 20대의 읽는 힘과 쓰는 힘은 전반적으로 처참하다. 조금만 길게 써진 글에는 언제나 “세 줄 요약 좀”이라는 댓글이 달린다. 지원서나 번역 업무를 하면서 봤던 지원자나 고객이 직접 작성한 글은 한국어 문장에서부터 단어의 호응이나 전체적이 흐름이 엉망이다. 표현도 어울리지 않거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넘쳐난다. 이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독서의 부족이다. 2019년 기준 평균 독서량은 연간 6.1 권, 독서량이 0에 수렴하는 비율은 44% 정도라니 이 얼마나 참혹한 광경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 다행스럽게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캠페인도 많이 열리고 독서를 권장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는데, 문제는 권장만 한다. 무턱대고 책 읽으라고 해 봐야 검은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다. 요지는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읽는 것이다.

 

 


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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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ate Williams on Unsplash

 

 

책을 읽는 것은 맥락 없이 고상한 느낌을 풍긴다. 책 많이 읽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 같다. 물론 대단하다. 그렇다고 마냥 대단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나 하려고 하지 않는데 그 사람은 했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지 책을 읽는다는 일 자체가 대단한 일은 아니다. 이 잘못된 선입견을 없애지 않는 한 책 읽기와 친해진다는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책 읽기를 가볍게 대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이 우선 과제를 위해 먼저 해야 할 또 다른 우선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만, 책을 읽는 것이 무조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함은 아니다. 그냥 읽고 싶어서 읽고, 한 번 읽어볼까 싶어서 읽고, 어떤 이유로든 책을 읽는 그 자체가 독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움이 따라온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 논리를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 이를 알고 책을 접하는 것과 모르고 접하는 것에는 꽤 큰 차이가 있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람들이 책 읽기를 꺼리게 하는 가장 큰 원흉이 이놈이다.


책 읽기는 공부와 다르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책과 필기구를 꺼내 각 잡고 집중해서 읽었을 때만 독서를 한 게 아니다. 그냥 책만 읽으면 일단 독서는 했다. 예전에는 책을 들고 다녀야 했지만 요즘은 전자책도 꽤 많이 나오기 때문에 책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에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세상을 살고 있다. 학교 가는 길, 학교 마치고 돌아가는 길, 출근하는 길,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잠시 친구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 등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의도적으로 디지털과 접하는 시간을 조금씩 이나마 줄여보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어딜 가나 디지털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이따금 아날로그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종이의 질감, 냄새, 넘길 때의 소리, 화면 너머가 아닌 내 눈앞에서 읽어지는 글과 그 시간의 질감을 느끼면서 얻어가는 또 다른 재미에 목말라 있을 때가 있기에, 그 갈증에 목을 축이고 싶어진다. 점점 말라가는 내 눈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방해 없이 온전히 읽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 내가 읽은 모든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내 마음을 울리는 몇 개의 문장만 기억한다 해도 우리는 그 책을 제대로 읽었다. 모든 내용을 집중해서 읽다 보면 피곤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방식이 잘 맞는 사람이라면 그리하면 될 터이고, 그게 아니라면 가볍게 술술 넘기다 눈을 사로잡는 부분에서만 온전히 집중해도 된다. 다만, 끝까지 읽어주는 것만은 지켰으면 한다.

 

 

 

읽었는데요, 읽지 마세요



나는 청개구리 심보가 고약하다. 남들은 어떤 것을 읽으라고 추천할 때 나는 읽지 말라고 추천하고 싶다. 책 읽으라는 말에 뒤덮여 살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것을 읽을지 고민도 안 하고 무작정 책을 읽으려고 나선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모범답안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오답을 알려주는 사람도 있어야 듣는 처지에서는 올바른 길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를 마련할 수 있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서문에서부터 말했듯이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가장 먼저 거리를 두라 권하고 싶은 것은 소위 말하는 “힐링” 도서다. 내 마음을 위로하는,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지친 나에게 등의 수식어로 포장된 책들은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어느 서점에서나 인기도서 혹은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책을 막 읽기 시작 할 무렵에는 나도 그런 것들을 겁 없이 펼치고는 했다. 그런 실수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 그런 책들은 쳐다도 안 본다. 읽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책들이 잘 팔리는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이 심적으로 힘들다는 방증이며 우리도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법은 없다. 다만, 두세 권 정도만 읽으면 충분하다.

 

대부분의 힐링 도서는 시대의 흐름을 타서 나온 것이 많고 내용이 비슷비슷하다. 읽다 보면 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책 내용도 거기서 거기다. 내 마음을 달랠 정도만 읽어라. 그 외에는 차라리 전문적인 심리학 도서를 사거나 심리학자가 쓴 일정 수준의 심리학적 지식을 함께 전달하는 책을 읽는 게 내 마음에 더 큰 도움이 된다.

 

 


읽었는데요, 좀 더 읽으세요



책을 별로 읽은 적이 없다거나 특정 분야의 책만 꾸준히 읽은 사람에게는 얇고 넓게 쓰인 책을 추천한다. 책 두께나 넓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에 담긴 것이 얇고 넓어야 한다. 특정 분야에 대해서라도 좋고 다방면에 걸친 것이라도 상관없다. 책을 읽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쌓이기 전까지는 이런 책과 친목을 다지는 것이 더 낫다. 시중에 출간된 것 중에서 예를 들자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 같은 것이 이런 책이다. 읽다 보면 꽤 내용이 깊이가 있고 알차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펼쳐본다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철학이나 사회학책이 이런 경향이 조금 더 심한 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시간을 투자한 연구 없이는 쓸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인지라 자연스럽게 깊이 파고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뿐이랴. 다방면의 지식을 동원해서 유연하게 생각하여 해석하는 것까지 요구한다. 그런 책을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배경지식이 마련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여 나는 얇고 넓게 쓰인 책들을 가장 먼저 추천하는 것이다. 이런 책들을 몇 권 읽다 보면 그 책들이 다루던 분야 중 어느 하나에서는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기반이 닦이고, 그 경우의 수도 늘어 좀 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내 흥미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곧잘 물어보는데 나는 어느 하나를 딱 집어서 추천하지 않는다. 책을 고르는 기준만 제시한다. 자신의 흥미와 목적이다. 운전면허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잘 팔리거나 인기 있다고 해서 힐링 도서 추천하는 건 목적에 맞지 않는다. 재즈에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인기 있다고 재즈책 추천해 봐야 읽지도 않고, 냄비 받침이나 안 되면 다행이다. 남에게 물어봐야 도움 안 된다는 뜻이다. 그 사람에게 재밌는 책이 나에게 재밌을 확률도 희박하며, 내가 뭘 좋아하는지나 왜 읽고 싶은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내 목적에 맞는 코너에서 책을 뒤적거리면 된다. 딱히 정해진 목적이 있다면 아무 책이나 일단 펼쳐보고 그 순간에 재밌는 책으로 골라라. 이마저도 싫다면 그냥 제목에 끌리는 책으로 해도 상관없다.

 

 

 

읽었는데요, 이제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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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Green Chameleon on Unsplash

 

 

초등학생 때 빠지지 않고 나오던 방학숙제는 독후감 쓰기였다. 그때는 왜 그렇게도 쓰기 싫었는지 줄거리만 주구장창 늘어놓고 “읽어서 좋았다”는 허무맹랑한 느낌만 갖다 붙였다. 이제 나는 방학숙제랑은 거리 두기 45단계쯤 되는 나이임에도 자가독후감 쓰기를 하고 있다. 그때는 선생님에게 내가 숙제를 했다는 증거를 남겨두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에 와서 이러는 것은 내가 읽었던 것들을 내 마음속에 조금 더 오래 남겨두기 위함이다.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 못 한다. 한 개를 하면 다른 하나는 대부분 멈춰있다. 해서 책을 읽음과 동시에 그 느낌을 새겨두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책은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도 10분 이상을 쏟아부어야 할 때도 있다. 이제는 일이 세 개다. 두 개도 못 하는데 세 개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나는 하나씩 따로 하는 방법을 택했다. 읽을 때는 그저 읽는다. 다 읽고 나면 내가 그 책을 읽는 동안 어떤 것들을 끄집어냈는가를 되짚어본다. 그렇게 나름의 1차 정리를 끝마친 녀석들로 글을 쓴다. 쓰다 보면 조금 더 정갈한 모습으로 다듬어진다. 마지막 문장을 끝낼 때쯤에는 그 한 권의 책에 대해서 80% 정도는 정리가 끝난다. 간혹 100%에 가깝게 됐을 때는 묘한 쾌감도 느낀다.


간혹 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보이는 실수는 무조건 길고 쓰려고 하는 것이다. 긴 글이 좋은 글이 아니라 좋은 글이 길었던 것뿐이다. 더 쓸 게 없는데 억지로 짜내어 길게 써봐야 거추장스러운 잡동사니만 갖다 붙이는 꼴이다. 과제 분량 맞추겠다고 “아니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문장 써봐야 학점 잘 안 나오는 것과 같다. 나도 길게 써지면 길게 쓰고 짧게 써지면 짧게 쓰고 만다. 그 한 권의 책에서 얻어낼 수 있는 느낌의 총량을 내가 임의로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짧든 길든 계속하다 보면 내 시간의 책장이 새로 생긴다. 그 책장은, 혹은 그 책의 길이는 내가 읽어가는 책에 따라 계속해서 길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어차피 길어질 놈이 따로 있으니 분량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분량보다는 그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읽어내고, 온전히 나의 글로 남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두 놈이 서로 잘 어울릴 때 내가 생각하는 온전한 독서는 완성된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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