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녕히 가세요, 나의 할아버지

글 입력 2021.03.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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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학교에 찾아온 대학생들과 뮤지컬을 올린 적이 있다. 그 대학생들은 뮤지컬 동아리의 부원들이었는데 교육 기부의 목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고자 멘토로서 학교에 방문한 것이었다.


뮤지컬의 이름은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공연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장유정이 작사, 극본, 연출을 맡아 만들어진 공연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 8주 정도 연습하고 공연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뮤지컬의 ‘ㅁ’도 모르는 학생들이 모여서 제대로 연습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꽤 알찬 수업을 받으며 어찌어찌 공연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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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째 주에는 해당 작품에 관한 배경지식을 익힌 후 대본을 읽어가며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했다. 그리고 조촐한 오디션을 치러서 모든 학생이 하나씩 역할을 배정받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최병호’라는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다.


뮤지컬의 배경은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무료 병원이다. 최병호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반신불수의 중년 남성 환자인데, 한밤중에 감쪽같이 사라진다. 다음 날 아침에 최병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병원 관계자들은 급히 그를 찾아 나서고 이때 부르는 노래가 뮤지컬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넘버인 ‘없네, 없어’다.


아마 최병호의 평판은 아주 좋지 않았던 듯하다. 병원 관계자들이 그를 ‘다리병신, 고집불통, 독불장군, 왕싸가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최병호는 오갈 데 없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며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냈다. 그는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는 환자와 다투었고, 봉사자에게 고함을 질렀으며 병원의 원장 신부와도 크게 싸웠다. 기쁨이나 환희는 찾아보기 힘든 어두운 일상에 갇힌 채로 주위 환경과 담을 쌓으며 살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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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배역을 내가 맡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음울한 인물이랑 영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는데,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있으려니 어색함을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최병호가 부르는 노래들은 어찌나 축축 늘어지는지, 삶의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두운 가사를 외우며 캐릭터에 이입해야만 했다.


비록 어두운 감정으로 점철된 캐릭터였지만,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나에게는 굳은살이 배겼고 마침내 큰 무리 없이 맡은 배역을 소화하여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9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최병호라는 인물을, 그와 관련된 우울한 기억을 삶에서 벗어던지고 살았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우리 곁에 있는 소외된 이웃을 조명하는 작품이었지만, 정작 나는 그 이웃의 모습을 공연이 끝난 후에는 기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최병호가 다시 나에게로 왔다. 그 흐릿한 과거와 왜곡된 감정을 들고. 몸을 가누는 것은 힘들어도 누구보다 꼿꼿하게 소리 지르고 자존심을 내세우던 남성이. 지팡이를 짚다가, 휠체어에 올랐다가, 결국에는 병원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던 운명과 함께 노인의 모습으로 나에게 왔다.


불쌍한 인생은 나와 멀다고 여겼다. 그래서 최병호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병호의 삶은 생각보다 나의 가까이에 있었다.


*


지난 1월 말, 나의 친할아버지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계셨는데, 음식을 드시다가 기도를 통해 이물질이 넘어가 흡인성 폐렴에 걸리셨다. 폐렴은 여러 합병증과 동반하여 할아버지의 의식을 집어삼켰고, 응급실로 이송되어 열흘이 지난 후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셨다.


할아버지는 굽게 휘어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와 같은 사람이었다. 다름을 이해하기보다 배척하셨으며, 이따금 완고한 성품에서 비롯된 날카로운 말로 타인과 다투셨다. 여기에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성격도 한몫하여 가정 안에서도 자주 불화가 일어났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 때면 당신의 아내에게 고된 일을 시켰고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셨다.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면 여과 없는 욕설과 함께 호통을 치셨으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한 마디 대화보다 한 잔의 술로 마음을 달래셨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런 할아버지가 낳은 아들은 나의 아버지가 되었고, 나는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존재해야만 했다. 초등학생 때 아빠가 나를 때려 몸 전체에 피멍이 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토록 심한 폭행을 처음 당했기에, 할아버지 댁에 가서 상처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곳부터 저곳까지 내 몸에 상처가 났어요, 이걸 보고 나를 위로해주세요. 아버지를 혼내주세요.”


어린 나의 하소연을 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빠에게 ‘애 때리지 말라’는 말만 던질 뿐,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자녀가 조부모에게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 가슴에는 원망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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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사연이 있는 법이다. 할아버지도 가부장적인 체계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던 소시민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거친 삶의 굴곡에 관해 자세히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삶을 버틴 사람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청춘의 땀을 흘렸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했으며 그 결실을 타인과 나누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이 남긴 잔혹함과 인생이 주는 고단함은 조금씩 축적되었고 이는 결국 늙은이의 고집과 분노로 영글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마음 한편에 따뜻함을 가진 부모이기도 했다. 자신의 가족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려 애썼으며, 미안함과 고마움, 환희와 격려 같은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셨다. 최근에는 요양병원에서 손주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며 그리움을 전하기도 하셨다. 그것이 비록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 동물적 사랑에서 비롯한 행위였을지라도, 나는 그 따뜻한 성정을 꼭 기억할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최병호의 역할을 맡아 고통과 아픔, 상처를 드러냈던 것은 어쩌면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 투영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최병호의 이름으로 몸부림치며, 받아들이기 힘든 무언가를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로부터 비롯된 연민과 이해는 9년의 세월이 흐른 후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장례식장으로 가서 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영정사진 앞에 서니 할아버지의 죽음이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차가운 몸만 남기고 떠나셨다. 나는 구석에 마련된 방에 들어가 그 몸을 보았다. 차가운 피부와 굳게 닫힌 눈꺼풀. 무심한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와 앙상하게 들어간 볼 구덩이. 아무도 면도해주지 않아 엉성하게 튀어나온 수염. 바짝 마른 팔과 다리.


아, 할아버지 키가 크셨구나. 항상 앉아계신 모습만 봐서 잘 몰랐던 사실이다. 그때 옆에 있던 아빠와 삼촌은 할아버지의 몸을 붙들고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울음을 삼키며 옷을 입혀드리고 관을 닫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주 중 가장 나이가 많았기에 영정사진을 들고 운구행렬에 앞장섰다. 화장터에 도착한 후 할아버지의 몸은 고운 가루가 되었다. 그렇게 유골을 들고 다시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수목원이었고, 우리 가족은 유골을 땅 안에 모신 후 흙으로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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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 그곳은 평안하신가요.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엄마가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보았다고 했는데, 동태탕을 끓여달라고 하셨대요. 여전한 모습으로 말이에요. 그래서 옆에 있던 아빠는 두부를 사러 가고, 엄마는 동태탕을 끓일 준비를 했다고 들었어요. 저도 동태탕 잘 끓이는데 저도 불러주시지 그러셨어요. 그게 조금 아쉽네요.


그곳에서는 마음 편히 동태탕을 드시면 좋겠습니다. 아, 술은 꼭 적당히 드셔야 해요. 할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술 그만 드시라는 잔소리를 더 많이 해야 했는데, 그게 좀 후회돼요. 세상만사가 술로 잊을 수 있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무엇보다 작년부터 코로나 때문에 요양병원에 찾아뵙지 못했는데 그게 참 죄송합니다. 자주 만나 뵙고 더 자주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저는 행복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마음에 여유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사랑의 감정만은 남겨두려고요.


타인과 맺는 모든 관계에서 사랑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한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겠습니다. 할아버지도 그동안 저에게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을게요.


지금도 어디선가 "남기야" 하면서 저를 기다려줄 것만 같은 할아버지,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스러운 세월의 짐은 훌훌 털어버리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 없이 행복하시기를 바라요.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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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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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ㄹㅁㅅ
    • 조의를 표합니다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지켜보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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