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상의 기술로 담아낸 믿음 예찬론, 무난하거나 고루하거나 -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영화]

글 입력 2021.03.1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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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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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신작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하 <라야>)을 보고 “재미가 없다”라고 하는 관객을 찾긴 쉽지 않을 것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전반적으로 늘 그래왔다. 사랑, 우정, 가족애 등등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매력적인 캐릭터와 함께 그 누구보다도 앞서간 최상의 기술력으로 구현해내니, 사실상 그 결과물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쪽이 더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디즈니는 매번 남녀노소 모두를 즐겁게 하는 스토리텔링이란 어떤 것인지를 기계처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일까. 어느덧 우리나라 관객들 사이에서도 자리 잡은 ‘디즈니는 믿고 본다’라는 통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이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재미’라는 요소는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값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문제는, 관객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기본만으로는 만족할 줄을 모르는 욕심 많은 소비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식당을 찾은 손님이 주문한 메뉴에 정갈한 밑반찬도 함께 곁들여져 있길 기대하는 것처럼, 관객들은 디즈니에게도 재미라는 기본 요소와 더불어 ‘+α’를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디즈니가 주도하여 선보인 <빅히어로> <겨울왕국> <주먹왕 랄프> 같은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연 그들이 그러한 요구에 제대로 응답해왔다고 할 수 있을지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들 모두가 자기만의 매력과 개성으로 확고한 영화적 재미를 획득한 작품들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재미 이상의 의미를 성취하는 데까지 성공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망설여지는, “무난하게 재밌다"라는 정도의 감상을 벗어나진 못한 작품들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이런 점이 디즈니와 픽사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디즈니가 야심 차게 내놓은 이번 신작 <라야> 역시 그러한 아쉬움을 말끔히 해소하진 못했다.

 

 

 

부정할 수 없는 '디즈니 클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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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라야>가 상당한 수준의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마저 부정할 생각은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동남아시아의 신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판타지 어드벤처인 <라야>는 확실히 지금까지의 디즈니와는 다른 색깔을 선보이며 뚜렷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중세 서양풍의 공주님 서사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적인 성공을 일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화권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작품 세계의 층위를 더하는 디즈니의 행보는 다양성의 시대를 향유하는 크리에이터 집단으로서 보여야 할 모범적인 태도라고 할만하다.


그 결과로 완성된 <라야>는 특히 미술적인 측면에서 빼어난 성취를 이뤄냈다. 제작진들이  직접 동남아시아 각 지역의 전통과 관습을 체험하며 만들어낸 것이라 자부할 만큼, 지금까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선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동양미가 5개의 나라를 뚜렷하게 구분하면서도, 감탄스러울 만큼 섬세한 퀄리티로 구현되어 있다. 이렇게 전형적인 모험물에서 중요한 건 주인공 일행이 거쳐 가는 모든 공간에 고유한 특색을 부여하여 질리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일 텐데, 이 지점에 있어서 <라야>는 확실히 흠잡을 데 없는 성과를 보여준다.


디즈니의 라인업 중에선 이례적으로 뮤지컬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사실적인 액션에 더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디즈니라니. 언뜻 상상이 잘 안 가기도 하지만,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다. 실제 동남아시아권의 전통 무술을 참고하여 구성했다고 하는 <라야>의 액션 시퀀스들은 동화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디즈니식 액션으로부터 진일보한 타격감과 박진감을 선사한다. 이는 여태껏 타고난 초능력이나 초현실적인 존재들에 의존해왔던 디즈니의 공주상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단련한 힘으로 시련을 돌파하는 ‘라야’만의 주체적인 캐릭터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설득력 없는 믿음 예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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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토록 빛나는 여러 가지 매력들 사이에서도 끝내 아쉬움을 남기는 건 <라야>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디즈니는 지금껏 모든 작품들에서 그래왔듯, 이번 <라야>를 통해서도 역시나 그 가치를 부정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믿음을 바탕으로 한 화합만이 균열한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열쇠라고 주장하는 ‘믿음 예찬론’이다.

 

애초에 ‘라야’ 일행이 떠나온 여정의 목표가 ‘조각’난 드래곤젬을 ‘하나’로 합치기 위함이었다는 점과 극 중 5개 나라 각지의 특산물을 한 데 섞어서 만들어낸 요리인 ‘똠얌꿍’이 서사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것만 봐도, <라야>의 제작진이 이 메시지에 얼마나 깊이 매료되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마스크 뒤로 얼굴을 감추게 된 이후,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신이 쌓여가고 있는 현 시국에 꽤나 조응할 만한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는 단단한 설득력이 뒷받침되었어야 했다. 세뇌에 가까운 훈계의 반복만으로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하기엔, 계속되는 세상과의 거리 두기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은 이미 녹이 슬어 더욱 단단히 밀폐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순박함과 아둔함의 경계에 있는 캐릭터에게 ‘용’이라는 영물의 이미지를 덧씌운 것만으로 그가 하는 말이 곧 올곧은 진리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화술은 더 이상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자.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 건 어느 쪽이었나. 매번 속기만 해서 일을 그르치는 용의 ‘믿음’인가, 아니면 신중한 사리판단으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라야의 ‘불신’인가. 만약 세상을 구원할 단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더 믿을 수 있겠는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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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오늘날과 같은 시국만 아니었다면 <라야>의 메시지를 좀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기에 이 감상의 끝에는 묘한 씁쓸함이 감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제를 살 수 없고, 오늘에 머무를 수도 없다. 그저 앞으로, 그럼에도 앞으로, 끝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 더 이상 있는 그대로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메시지 따위는 없다. 이젠 메시지도 시대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앞으로.

 

그런 메시지만이 앞으로의 관객들의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걸 디즈니가 깨닫게 될 날이 머지않았기를, 디즈니의 오랜 팬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바다.

 

 

[임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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