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난해하지만 가장 직설적인 그들의 외침 - 스트릿 노이즈 STREET NOISE

글 입력 2021.03.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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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그래피티"는 지나다니는 길의 벽에 물감이나 스프레이 등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래피티는 혼란스러운 사회에 대항하는 집단의 하위문화 중 하나로 익히 알려져 있다. 요즘은 자주 볼 수 없는 그림이지만, 흔히 '힙한' 감성의 을지로나 성수동 골목에 가면 그래피티를 발견할 수 있고, 그 벽은 곧 2030세대의 "포토존"이 되기도 한다.

 

한편, 이제는 골목길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그래피티 포토존을 찾을 필요가 없다.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 힙한 감성을 잔뜩 머금을 수 있는 다양한 그래피티 작품들이 모아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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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전시회 소식을 접했을 땐 그래피티 작품들에 관한 호기심 반, 그리고 친구와 함께 인스타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사진들을 건져오겠다는 의지가 반이었다. 그동안 매체로 접했던 여러 색깔과 글귀들이 마구 엉켜 있는 그래피티 작품들은 멋있고 있어 보이다가도, 어차피 그것들을 이해하기엔 버거웠기 때문이다.

 

MD를 판매하고 전시를 '미리 보기' 할 수 있는 구역을 지나 첫 섹션으로 들어간 뒤, 나를 반기던 거대한 고양이 모형을 봤을 때도 역시나 당황스러웠고, 친구와 나는 연신 "오 이게.. 그 유명한 힙한 감성인가... 적응해보자." 말했을 정도로 이 어색함을 떨쳐내긴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그래피티를 제작할 수 있는 체험을 하면서부터 그래피티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태블릿 PC에 직접 내가 원하는 글씨를 적으면, 네온사인 같기도 한 묘한 그래피티 효과가 입혀진 글씨가 벽면에 나타나는 방식이었다.

 

어떤 글씨를 적어야 할까, 부끄러운데 하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그래. 오늘만큼은 힙한 이현지가 되어보자!'하는 마음으로 친구가 원하는 글, 내가 원하는 글 하나씩 당당하게 적어봤다. 그래피티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지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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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를 직접 그려보는 체험 덕에 용기를 얻은(?) 나는 난해한 그래피티의 그림들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이런 걸 그릴 땐 한 번에 의도한 대로 그려야 하고 수정이 불가능하니 힘들진 않을지와 같은 사소한 걱정부터 시작해서, 이건 어떤 불만을 가진 상태로 그린 그림인가에 관한 사색까지. 내가 그 그림이 되어 사회를 바라보고, 그 그림을 그려낸 아티스트의 입장이 되어 사회를 바라보려고 해봤다.

 

그리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페인트들이 거짓말처럼 가지런히 정돈되어 보였다. 깊게 해석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피티는 생가보다 직설적으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단순히 반항심에 마구잡이로 그려낸 낙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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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들의 로고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 섹션에 들어섰을 때 살짝 혹하며넛 '다 가지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그래피티다.

 

옆의 코카콜라 역시, 거대 자본을 보유한 대형 기업 중 하나이다.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상업주의에 떠밀리는 우리 모습 같아보이기도 하면서, 돈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는 이 사회가 녹아 없어지길 바라는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흘러내리는 기법은 중국 공장과 환경 문제를 다루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정말 강물로 흘러내려가며 환경 오염의 주범이 되는 공장 기름 그 자체 같으면서도,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가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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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고발하는 듯한 그림도 눈에 들어왔다. 대놓고 그린 미국 국기, 직설적으로 써져 있는 "We the people / are greater than fear"라는 문장은 복잡하지도 난해하지도 않았다.

 

이 그림을 그린 셰퍼드 페어리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바마 대통령 (후보였을 당시)의 얼굴과 VOTE라고 쓰인 그림, 'MAKE ART NOT WAR'이라는 짧지만 강렬한 문구는 '그래피티는 어렵다'는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작가는 누구보다도 힘 있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며 희망을 찾고자 했고, 사회의 변화를 꿈꾸고 있었다.

 

*

 

솔직히 인스타에 올릴 법한 이 힙한 감성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그래피티와 그것을 그려내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괜히 벽을 지저분하게 만들면서 반항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특정 집단이 그렇게 반항하기까지 뒤틀린 사회와 방관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다 부정적으로 바라봤었다.

 

그래서 더 거부감을 가지고 난해하다며 공감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난 이런 거 어색해"라고 고고하게 말하면서 숨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피티는 반항이 아니라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처절한 외침이었다. 길거리의 벽에 알 수 없는 색깔들로 가득 채워서라도 사람들에게 여기 좀 봐달라고, 고개를 들고 세상을 둘러봐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하고 조금만 가까이 다가와서 들여다보면 꽤나 직설적인 그들의 메시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한편, 초반에 언급했듯 요즘은 '힙한 감성'으로 유명한 골목길이 아니면 그래피티를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과연 지금 이 사회가 그래피티로 목소리를 낼 지경까지 뒤틀리지 않아서 다행인걸까, 아니면 그래피티의 외침이 통하지 않을 만큼 타락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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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 NOISE]

 

2021.02.26. - 2021.06.13.

 

오전 10:30 - 오후 10:00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1층 P/O/S/T

 

평일 12,000원

주말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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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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