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읽는 모습은 어떻게 생겼나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3.0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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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서 책을 읽나


 

어젯밤에는 아래 사진 속 책장 중 하나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었다. 원래는 퇴근 후에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려던 게 계획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탓에 더 이상 노트북은 그림자도 보기가 싫어서 계획을 바꿨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할 일은 접어 둔 뒤, 근처 서점에서 책 구경이나 하다가 집으로 홀랑 가버리는 기가 막힌 계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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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지만 사진 속에도

두 명이 책장 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책장 사이를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가 항상 눈여겨 보던 <아무튼,> 시리즈가 꽂혀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뮤지션과의 접점이 많아서 항상 궁금했던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를 뽑아서 사진 속의 책장으로 갔다. 저곳은 위치적으로도 서점 내에서 가장 구석일 뿐 아니라 철학, 역사 도서 코너라서 사람들이 더더욱 잘 지나다니지 않는다. 저 뒤에 앉아 책을 읽는 20여 분 동안 나는 그냥 바닥과 비슷한 존재였다. 한 명도 기웃거리지 않아 내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사람들도 나를 거슬려 하지 않았다. 안 읽던 공간에서 읽어서인지, 할 일을 제쳐 두고 농땡이를 부려서인지 책은 아주 재밌었다. 그렇게 쪼그려 앉은 자세로 허리와 목의 눈치를 살살 보며 읽다가 그만 까불어야겠다 싶을 때쯤 읽던 책을 사서 나왔다.

 

 

 

당신은 책을 어떻게 구해 읽나


 

사실 평소에는 일반 서점에서 책을 잘 안 사는 편이다. 출판계의 번영을 누구보다도 바라지만 매번 새 책을 사기엔 비용도 부담스럽고 물건에 대한 소장 욕구도 별로 없는 편이라 도서관을 주로 이용한다. 더군다나 등록금의 액수를 떠올릴 때면 학교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학교 돈으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맹렬히 불타오른다. 재학 중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본전을 뽑으리라.

 

물론 이런 나도 서점에서 구경하다 보면 충동적으로 책을 사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망설여지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종이책은, 종이로 된 책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종이책은 무게를 가지며 부피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주변 학생들은 학기마다 여러 기숙사나 자취방 등 여러 형태의 주거 공간을 전전하며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다. 나의 경우 학기의 시작과 끝마다, 즉 일 년에 네 번 짐을 싸고 또 풀어야 한다. 이런 경우 물성을 가진 것은 모두 '언젠가 옮겨야 하는 짐'이 된다. 특히나 책은 덮어놓고 모으다 보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무거운 물건이라 서점에서 책을 보며 '이거 살까' 싶다가도 내 '집'에 들일 생각을 하면 다시 내려놓기 일쑤다. 많은 걸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시대인데, 짧은 주기로 주거지를 옮겨 다니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책도 그런 존재일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열심히 여기저기서 빌려보다가 어쩐지 작가와 출판사들에게 미안해질 때는 내가 읽고 싶은 책 중에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지 않은 책을 사 달라고 ‘희망 자료 신청’을 한다. 하지만 학교가 책을 사주는 데에도 기준이 있더라. 문예지 같은 ‘연속간행물’은 안된다. 그림책과 동화책 등도 ‘아동물’이라는 이유로 안 된다. 지난주에 “동화책과 그림책은 아동용 책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책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이 곳에 기고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입장으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다. 지난주에 쓴 글을 첨부해서 도서관 홈페이지에 문의해보면 어떤 답변이 돌아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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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 그림책을 희망 자료로 신청했다가 반려당했다.

 

 

가끔 나의 종이책에 대한 애증 어린 사연을 듣고, 부피를 차지하지 않고 무겁지도 않은 e-book을 이용할 생각 없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노트북이나 태블릿PC 등 전자기기로 글을 읽으면 눈과 머리가 아프고, 어쩐지 깊게 빠져들 수가 없다. “이래도 네가 글에 집중할 수 있나 보자”라며 훼방을 놓는 무형의 방해꾼들을 헤치며 책을 읽어야 하는 기분이다. 화면이 종이책과 비슷하다는 전자책 리더기를 알아본 적도 있는데, 대부분의 전자책 리더기는 액정이 쉽게 깨져서 ‘설탕 액정’이라는 별칭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약한 내구성을 감수해도 될 만큼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았다. 나는 워낙 덤벙대는 탓에 물건을 살 때 내구성이 아주 중요한 편이다. 뭐 얼마나 덤벙대겠나 싶겠지만 정말 심하다. 물건들이 내 손에 가만히 붙어있질 않는다. 나로서는 ‘나는 가만히 있는데 물건들이 내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가곤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 입장에서는 지금 판매되고 있는 전자책 리더기들을 구매하기가 아주 부담스럽다. 우주로 사람도 보내는 시대에 전자책은 왜 아직도 겨우 이 정도밖에 발전하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전 세계의 이과가 어서 분발해주길 바란다. 일단 만들어주면 돈 내고 사 줄 문과가 널렸단 말이다.

 

 

 

당신은 언제 어떤 책이 고픈가


 

책을 잘 안 사는 내가 최근엔 책을 좀 많이 샀다. 근래의 책 소비 패턴을 돌아보며 스스로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충동적으로 에세이를 ‘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걱정이 많을 때 소설이나 비문학은 집중해서 읽기가 힘든 반면, 여러 꼭지로 나누어져 호흡이 짧고 내용이 비교적 가벼운 에세이는 부담 없이 읽히기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 힘들 때면 다른 사람들은 어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일지도.

 

한 달 전에는 어떤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면접장을 나오자 생각이 많아져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지만, 과거의 내가 하필 그날 저녁에 약속을 잡아 둬서 그럴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약속 시각까지 시간을 때우려고 근처 중고서점에 들렀다. 베스트 셀러 평대에 김금희 작가의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이 있길래 무심코 펴서 넘겨보는데 딱 <<소설 수업>> 꼭지가 펴졌다.

 


"졸업 무렵의 학교는 뭔가를 얻은 곳이 아니라 잃은 곳이었다. 연애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준비도 부족한데 학교에서 나가야 하는 시간은 가까워졌다.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결국 소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사회로 던져졌다. .... 정확히 말하면 모교가 아니라 나의 이십 대가 미웠다고 할 수 있다" (p.104)
 


이 문장을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이 책을 안 살 수 있다면, 그는 '착잡한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진로 못 정한 채 졸업하게 생긴 대학생'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근데 나는 마침 그게 맞아서, 이 책을 사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김금희 작가의 에세이라면 100%의 확률로 학교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겠지만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내 손에 이게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에서 영업 당한 김신회 작가의 글쓰기 에세이 <심심과 열심>과, 외계인들이 지구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은 만화 <낯선 행성>도 샀다. 그날 면접은 딱 책 세 권 어치 위로가 필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저녁 약속은 즐거웠고 책도 재밌었다. 그리고 당시 면접은 떨어졌지만, 몇 주 후에 그 회사에서 다시 연락 와서 이력서를 재검토하고 싶다고 했을 때 미련 없이 거절하는 건 더 재밌었다.

 

 

 

당신은 책 말고 또 어떤 글을 읽나


 

종이책 신봉자인 나도 짧은 글은 종종 웹에서 읽는다. 애초에 웹에만 노출되는 글들은 어쩔 수 없다. 이곳 <아트인사이트>의 글들이 그렇다. 얼마 전 이곳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즐겨찾기’를 해두고 읽었다. 처음엔 지인이 과거에 이곳의 에디터였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의 글을 따라 읽고 싶어 들어왔다. 누군가와 아주 친해지고 싶을 때면 다들 그 사람의 SNS를 훑어보곤 하지 않나(나만 이렇게 음침한 게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는 SNS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여기까지 올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의 글을 따라 읽으며 그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재밌어 조금 놀리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에디터가 되어 이제는 그가 내 글을 따라 읽으며 놀리고 있다. 역시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 항상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또 배웠다.

 

상대가 궁금해서 그의 글을 찾아 읽는 이런 내 습관은 (믿기지 않겠지만) 교수님에게도 적용된다. 근황이 궁금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내가 더 들을 수업이 남아있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자주 연락할 사이도 못 되니 그분이 쓰신 논문 말고는 소식을 접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쉬워 보이는 걸로 하나 골라 읽어봤는데 놀랍게도 꽤 재밌었다. 지난 설에 안부 인사 겸 교수님께 메일을 보낼 때 “앞으로도 제가 교수님 논문 따라 읽고 싶으니까 계속 쉽게 써주세요.”라고 했더니 “원래 쉬운 말을 어렵게 쓰는 게 논문입니다^^”라는 답을 받았다. 역시... 교수님께 또 하나 배운다.

 

 

 

당신의 읽는 모습은 어떻게 생겼나


 

지금까지 나의 읽는 모습에 대해 길게 썼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읽는 모습을 궁금해하다가 나의 읽는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 이렇게 썼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난 한 달간 어디서 무엇을 읽었을까. 어떤 이유로 거기서 그렇게 읽었을까. 어떤 마음이 그 글을 고르게 했나, 혹은 어떤 사정이 그 글을 읽어야만 하도록 만들었나. 지금 이 글은 어디서 무얼 하다가 읽고 있을까. 다들 어디서 어떤 글을 만나며 살고 있나.

 

 

[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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