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3.0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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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모순으로 가득한 곳이라는 말을 문득 들은 적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그 말에 꽤 공감하며 살아왔다. 끔찍한 학대를 저지른 부모가 사실은 본인도 학대의 피해자였다든지,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가해자가 된다든지 조금만 둘러보아도 모순은 쉽게 찾아진다.

 

그래서일까?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은 인생의 모순을 참 잘 담아낸 책이라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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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인물] 안진진(주인공), 안진모(남동생), 어머니, 아버지, 이모, 이모부
 
[줄거리] 안진진은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다짐의 일환으로 우선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쌍둥이 자매인 이모의 삶, 동생 진모의 삶, 그리고 집을 나간 뒤 언젠가부터 소식이 들리지 않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삶에 대해 적극적인 관찰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관찰에 기반해 두 명의 결혼 후보자들 중 한 명을 결정하게 된다.

 

 

 

쌍둥이 자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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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안진진'의 어머니와 이모는 쌍둥이 자매이다. 둘은 한때 매우 흡사한 성격과 삶을 살았고 생김새도 똑같았다. 그래서 삶의 풍파로 인해 너무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어머니와 이모의 현재 모습은 안진진에게도 그리고 독자에게도 매우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그 둘이 달라지게 된 정확한 시점은 '결혼'이었다. 안진진의 어머니는 결혼 후 억척스럽게 변했다. 결혼 초반에는 술주정뱅이이자 가정 폭력꾼인 아버지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에는 아버지를 대신해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남동생을 뒷바라지하느라 어머니는 변화했다. 젊었을 적에는 울음과 한탄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위기가 있을 때 더 활기가 생기는 안진진에게는 불가사의한 불굴의 존재가 되었다.

 

 

어머니의 웃음은 나날이 힘차진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다. ... (중략)...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갔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양귀자, '모순', 64pg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그것이 어머니의 삶의 요약하는 가장 핵심적인 말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어느새 평화와 안정은 배부른 소리, 사치스러운 허세로 받아들여졌고, 풍파를 만나야 삶에 활기를 얻는 사람이 된 것이다.


반면, 이모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바르고 원칙적이며 성실한 이모부를 만났고, 자식들도 외국에 유학을 갈 만큼 공부도 잘한다. 부족한 것도 없고 하고 싶은 취미도 다 하는, 마냥 풍족해 보이는 그런 이모였다. 그야말로, 아무 고생 없이 이모는 평탄한 결혼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모는, 끝낸 자살을 선택한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양귀자, '모순', 283pg

 


왜 이런 충격적인 결말로 마무리한 걸까?


소설의 중간중간 이모가 외로워 보인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 외로움이 죽음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안진진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이모는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삶 대신 죽음을 선택한 것 말고는 내가 알고 있는 이모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양귀자, '모순', 288pg

 


그보다 나는 작가가 삶의 직접적인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달한 것이라 느꼈다. 힘든 고비를 매 순간 넘기는 어머니와, 힘든 고비 없이 평화롭게 살았던 이모의 죽음. 이 둘의 대비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행복보다는 고통이라고. 즉, 겉으로 보이는 풍족함보다는 물질적으로 환경적으로 힘들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만이 계속 삶을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는 말이다.

 

참 모순이 가득한 삶이다. 살기 위해 필요한 고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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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모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다르게 해석해볼 수도 있다. 겪어보지 않은 서로의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절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이 소설 속에서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바른 남편을 얻어 편하게 사는 이모를, 이모는 고비를 이겨내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어머니의 삶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결국 한 쪽은 경제적, 환경적으로 힘든 삶을, 다른 한 쪽은 자아정체성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각자만의 힘든 삶을 살고 있던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인간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해 부러워하면서도 그 삶에 수반되는 어려움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 소설 속 이모는 누구보다도 풍족한 삶 속에서 살았기에 아마도 그 고통을 누구에게도 이해받고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반쪽인 쌍둥이 언니에게조차도. 그렇기에, 자신의 삶의 한계를 느끼고 고독한 죽음을 선택한 것이리라.

 

 


안진진의 선택


 

앞서 이야기했듯, 안진진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두 명 중 한 사람을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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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영규'는 이모의 남편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모든 일들이 계획되어 있고, 그 계획을 한 치 오차 없이 실행에 옮기며, 주인공에게 성실하고 솔직하게 구애한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이다. 그러나 안진진은 어떤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나영규의 삶에 숨 막힘을 느끼곤 한다.

 

반면, '김장우'는 자신의 형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며, 섬세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매우 가난하다. 안진진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번째 인물로부터 느끼지만, 결국 그를 택하지 않는다.


이모의 죽음을 보았을 때 안진진의 선택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안진진은 이미 이모의 충격적인 죽음을 겪었고 이모가 이모부와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녀의 죽음을 통해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이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것도 같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모의 삶을 택한다.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어쩌면 '김장우'는 이미 안진진이 경험해본 어려움을 겪어온 사람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하며 세상의 보이지 않는 약한 것들을 사랑하는 삶 말이다. 안진진은 자신에게 익숙한 이 모습을 가진 이 인물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고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녀에게 이러한 삶의 방식은 더 이상 계속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 터.


이모의 죽음을 불러온 삶의 방식이 안진진에게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동력을 주는 선택지였던 것이다. 아무 변화 없는 삶을 살고 있던 이모에게는 쉼 없이 동적인 삶이 살아가는 동력이었겠지만,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고비를 넘겨 왔던 안진진에게는 이모의 그 변화 없는 고요한 삶이 너무나도 절실했으리라.

 

누군가에겐 처절하게 빠져나오고 싶은 곳이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는 희망이자 탈출구일 수 있다는 게 어쩌면 인생의 모순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가 일깨워준 현실



어쩌면 안진진이 나영규를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일 수도 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안진진은 집을 나간 아버지에 대해 계속해서 미화한다. 아버지는 다른 술주정뱅이와는 달랐으며, 그 눈빛이 그랬다고. 자신의 어머니를 때리던 모습도 안진진은 이렇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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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그래도 굳이 써본다면 아버지의 그 망나니짓에는 일종의 '품위'가 있었다. ...(중략)... 아버지는 상스러운 욕설을 하더라도 입술을 깨물며, 이마에 푸른 힘줄을 돋우면서, 온 힘을 다해 자신도 지금 죽을 듯이 괴롭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었다.

 

양귀자, '모순', 90pg

 

 

아마도 안진진은 아버지의 존재를 자신의 삶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안진진은 어렸을 적 보았던 아버지의 폭력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  언젠가 아버지로부터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아버지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포개서 두 사람의 손가락 길이가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날, 그때 꼭 물어보리라고.

 

양귀자, '모순', 93pg

 


하지만 소설 후반부에 아버지는 치매가 걸려 부랑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자기 자식도 알아보지 못했고, 손바닥은 다 쭈그러져 포개어 볼 수도 없었다. 그건 아마도 주인공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더이상 '자신의 삶이 가난했지만 아버지의 정이 있었다'라고 긍정적으로 해석된 여지가 조금도 없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그저 폭력적인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남자였고, 그런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 채 술을 핑계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화풀이하는 그런 인간일 뿐이었다.

 

자신의 삶이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오라기 같은 낭만적 해석을 덧붙이며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려 했던 안진진은 자신의 그런 시도들이 의미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진진은 위에서 이야기한 이모부와 같은 인물과 결혼을 결심한 것 같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기억해보려고 해도 자신의 삶은 어두웠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나영규와 결혼해야했다. 이모 입장에서 아무리 처절하게 싫었던 삶의 방식이라 하여도 안진진의 삶은 이모의 동경 속 주체적인 모습이 아닌 비극적인 현실이었기 때문에 이모부 같은 '심심한'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

 

안진진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살면서 내렸던 모순적인 선택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왜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혹은 어떤 사연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약간의 해답이랄까.


때로는 현실의 비극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다른 사람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고 선택을 한다. 그리고 인생은 그런 아이러니한 선택들이 모여 그려지게 되는 것이고.


어찌됐든, 이 책에서는 그런 모순성에 대해 나쁘다, 좋다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고 담담하게 결론을 내린다. 어쩌면, 이게 정말 인생의 답이 아닐까?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생은 모순 그 자체일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이.




[송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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