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주가 하나뿐인 말 - 보잭홀스맨 [애니메이션]

아무리 빨리 달려도 도망칠 수 없죠.
글 입력 2021.03.0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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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가 하나뿐인 말


 

보잭 홀스맨은 블랙 코미디 성인 애니메이션이다. 동물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지만 귀엽다고 하기엔 거리가 멀다. 술, 마약, 욕설이 일상이고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19금이 난무하는 이야기는 확실한 진입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주인공 보잭이 신경 쓰였다. 커다란 집과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을 보낸 연예인 보잭이 왜 저렇게 사는 것일까?


보잭은 가족시트콤 ‘Horsin’ Around(말장난)’ 로 일약 대스타 되었다. 그러나 전성기도 잠시, 시트콤의 인기가 시들게 되면서 보잭의 인기도 시들게 되었다. 다시 할리우드에 복귀하기 위해 갖은 시도를 했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엔 고스트 라이터를 대동하여 자서전을 집필하기로 한다. 자서전을 통해 과거 인기를 되찾기 위해 우여곡절 하는 내용이 시즌 1의 전반적인 이야기이다.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답게 20분 내외의 짧은 이야기 속웃음을 자아내는 풍자와 유머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그러나 이 웃음은 어딘가 씁쓸하고 마냥 생각 없이 웃기에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잭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보잭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증을 떨쳐내기 위해 마약, 술, 성관계, 폭식한다. 그러나 아무리 폭식을 하고, 술을 마셔도 보잭은 여전히 우울하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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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그것을 한 번에 다 먹어버렸어.

왜냐면 난 자제능력이 없고 나 자신을 싫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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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잭은 어린 시절 가족에게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사랑을 원했다. 그래서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 그 인기를 되찾고 싶었다.


<보잭 홀스맨> 주요 등장인물로는 겉으로는 철이 없어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보잭에게 위로가 되는 토드, 일에 빠져 살지만 늘 사랑을 갈구하는 캐롤린, 이성적이고 냉철해 보이지만 가족을 부끄러워하는 다이앤, 보잭과 정반대로 늘 긍정적이기만 한 미스터 피넛 버터, 어른처럼 굴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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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잭은 자신의 내면을 계속해서 파고드는 다이앤을 처음에는 밀어냈다. 하지만 남들은 이해 못 하는 면을 알아주는 다이앤의 모습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다이앤은 사랑의 감정이 아닌 우정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약혼자 미스터 피넛 버터가 있다. 보잭은 다이앤을 사랑하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준다면 자신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쓰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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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아직 기회가 있겠죠? 너무 늦은 건 아니에요. 그렇죠? 다이앤, 내게 너무 늦지 않았다고 말해줘요. 당신의 대답이 필요해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줘요. 난 이기적이고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자기 파괴적일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아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사실 나도 좋은 사람이라고, 당신이 꼭 말해줘야만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아홉 살 보잭이 우상 세크리테이엇에게 어떻게 슬픔을 피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세크리테이엇은 대답한다. 슬플 때는 앞만 보고 달려. 무슨 일이 있어도 앞만 보고 달리는 거야. 뒤돌아보지 마. 모든 존재는 앞에 있지. 그러니 절대 뒤돌아보지 마… 그러나 기구하게도 보잭의 우상 세크리테리엇은 몇 개월 후 경마 출전을 평생 금지당해 다리에 떨어져 자살한다.


보잭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슬프고 외로워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어른이 된 것이다. 아니, 보잭이 과연 어른이 된 것일까? 아직도 아홉 살 보잭이 자라지 않은 것은 아닐까?


보잭은 자신의 사건, 사고, 치부, 트라우마가 낱낱이 기록된 자서전 ‘재주가 하나뿐인 말’이 발간된다. 처음에 보잭은 자서전이 발간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보잭의 치부가 가득 담긴 이야기를 보고 자신을 다시 사랑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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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잭의 예상과는 반대로 자서전은 아카데미 상을 받고 보잭은 다시 인기 연예인이 된다. 그렇게 원하던 전성기 시절이지만 보잭의 우울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세크리테이엇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 주연 오디션을 본다.


Q. 경마장에서 달릴 때 무엇에 도망을 치나요? 누구나 뭔가에서 도망치잖아요.

 

A. 없는 것에서 도망쳐요. 없는 게 무섭거든요. 사람들이 다가와 사진을 요구하고 사인을 받아 가죠. 그들은 내 진가를 안다고 생각하죠. 나도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건 가짜예요. 그들은 내 재능을 보고 좋다고 착각하지만 내 안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리 빨리 달려도 도망칠 수 없죠.


보잭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받고 있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시 찾은 전성기는 그에게 해답을 주지 않았다.

 

 

 

마음의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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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 자신을 너무나도 확연하게 미워하는데, 어떻게 남들이 너를 사랑할 거라 기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발병의 원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방식으로 발병되고 잠깐 왔다 갈 수도 있고 고질병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은 참으로 고약해서 우울해지면 무기력해지고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원인을 알지 못하게 꽁꽁 마음 깊은 곳에 숨겨버린다. 그래서 우울한 자신이 원래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뿌리 깊게 박힌 우울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블랙코미디 애니메이션 중 이렇게 인간의 깊은 내면, 특히 우울증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내용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빠져들었다. 보잭 홀스맨은 유명 연예인이자 할리우드에 살고 있지만 나와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보잭의 시니컬하고 염세적인 마인드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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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가 구멍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아요. 내가 선한 일들을 좀 해보려고 하면 그것들은 내게서 천천히 빠져나가고, 이젠 다 사라져버렸어요.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다시 갖지 못할 거예요. 너무 늦었어요. 삶이란 그저 문을 닫는 일의 연속이죠. 안 그래요?

 

<보잭홀스맨>은 당신은 사랑받을 만한 존재예요. 금방 나아질 거예요. 같은 희망찬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인생은 마냥 달콤하지도, 그렇다고 씁쓸한 초콜릿도 아닌 독한 술과 고약한 담배 향기가 가득한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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