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가가 되었다.
-
작가가 되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왔다.
POD사이트를 이용해 독립출판을 했다. 사실 작가라기엔 부끄럽지만 내 이름으로 된, ISBN이 등록되어 있고 책이 유통되고 있으니 아마추어 작가라고 조심스럽게 칭해본다.
원고를 최종 검수하고 인쇄를 누르기 직전까지도 만족스럽게 버튼을 눌렀지만 막상 실물로 책이 나오고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돌리고 나니 매우 민망하다. 속으로만 품었던 은밀한 이야기들을 세상으로 내어놓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나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내 손으로 직접 돌린다니, 더욱 민망해지는 일이었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할 때는 멋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서점에 베스트셀러로 올라와있는 수많은 에세이들, 막상 읽어보면 분량도 적고 페이지도 적어서 30분이면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수 있는 그런 책들을 보고 나도 써보고 싶은 생각을 했다. 여백이 반을 차지하는 책과 차이를 두고 싶어서 나만의 컨셉을 잡고 보기 좋은 글을 썼다. 감성이 가득한 글, 짧아도 여운이 있는 그런 글 말이다.
하지만 쓰다 보니 껍데기만 있는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진심은 아직 마음속 깊은 곳에 숨 쉬고 있는데 아무런 의미 없는 껍데기만 내어놔도 되는 걸까. 내가 책을 쓰는 이유가 단지 '잘 팔리기 위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였나. 순간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회의감이 몰아쳤다.
글을 처음 가르쳐준 은사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글에는 하기 싫어도 네 생각과 가치관이 드러난다. 네 글을 읽고 변화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볍게 쓰지 말아라.'
글의 위대함을 알고 있고, 글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허울뿐인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 한창 쓰고 있던 파일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새로이 기획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책이 지금 내가 출판한 책이다. (제목은 홍보가 될 수 있으니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지난 1년간 백수로 살아가면서 느낀 감정을 담담히 적어 내려갔고,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가치관에 대해 적어 내려갔다.
과거에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나, 상처 받고 숨겨놓았던 아파하는 나, 도전을 하고 성과를 얻은 기뻐하는 나, 타인을 바라보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나. 정말 여러 형태의 내가 A5 사이즈의 작은 종이에 활자로 인쇄되어 세상에 나왔다.
얼마든지 아름답게 꾸밀 수 있었던 나는 잠시 내려놓고,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발가벗겨 세상에 내놓았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어요.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요.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 거예요.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현재의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그려본다.
많이 부족한 글일지라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적어 내려 간 나의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방황하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앞으로를 살아갈 힘이 되었다.
과거의 나를 보며 성찰하고 지금의 나를 수정한다.
미래의 나는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겠지.
언젠가 이 책을 보며 지금의 행위를 반복하겠지.
'아 그때의 나는 그랬구나.' 하면서.
[김상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