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웹툰 성공의 비결, 설화와 신화에서 [만화]

세계관의 확장, 설화와 신화의 다채로운 변주
글 입력 2021.03.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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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매주 챙겨보는 만화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만화인지 궁금하다. 과거엔 만화를 게으른 사람들이 보는 오락물로 인식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만화(웹툰)는 보다 많은 대중의 일상적인 사랑을 받는 문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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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유미의 세포들> 특별전

 

 

만화가 이제는 옛날의 '만화'가 아닌 데에 플랫폼의 영향이 막대했던 것은 인정한다. 아무리 좋은 만화가 있더라도 인프라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만화책에 그칠 뻔했다.

 

하지만 만화, 정확히는 '웹툰' 자체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잘 변주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플랫폼과 디지털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만화 스타일이 시너지를 낸 것이다. 그리고 인기 있는 웹툰은 종이책으로 재탄생했고 만화와 만화가의 행보는 이전과 달라졌다.

 

 

 

확장되는 세계관, 웹툰 성공의 비결은


 

최근 초중생의 유망 직업 중 10위권 안에 늘 드는 직업군도 웹툰 작가인 것을 보면, 만화를 제작하는 일 자체가 상당히 가치 있는 일로 이해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단순히 만화의 바뀐 위상을 플랫폼의 공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새롭게 세계관을 펼쳐내는 웹툰 작가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옛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설화를 감각적으로 변주한 돌배 작가의 <계룡 선녀전>과 레이첼 스마이스 작가의 <로어 올림푸스>를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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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 <계룡선녀전>

 

 

돌배 작가는 웹툰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으로 데뷔해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그림체와 독특한 소재, 현실감 있는 등장인물의 성격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한국인이라면 어렸을 때 한번은 들었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재해석한 <계룡선녀전>으로 성공적인 차기작은 물론, 전래동화 모티브를 신선하게 변주해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웹툰 세계관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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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였다가, 젊은 여인이 되는 선옥남 선녀

 

 

 

설화의 다채로운 변주, <계룡선녀전>


 

<계룡선녀전>의 줄거리는 이렇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바리스타가 된 계룡산의 선녀님 '선옥남'이 환생한 서방님을 만나, 날개옷을 찾는 과정을 그리며,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지금의 시대 감수성에 맞게 각색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계룡산에서 바리스타를 하며 평범한 사람에겐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극 중 주인공인 정 교수와 김금에겐 젊은 모습으로 보이는 비밀 많은 선녀님 선옥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반전에 있다. 날개옷을 위한 남편 찾기에서, 원래 남편인 줄 알았던 정이현 교수가 전생에 나무꾼에게 도움을 받은 사슴이었다는 것이다. 인물 추리에 대한 반전은 흔한 클리셰가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단순히 남편이 아니었다는 반전에 흥미가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남편이 아닌 사슴이라는 캐릭터를, 선녀님의 과거 천계 시절 동료이자 거문성 선녀인 '이지'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떻게 선녀 '이지'가 '사슴'으로 환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텔링 키워드를 설화에서 차용, 상상을 덧대어 매우 짜임새 있게 그렸다. 오해를 풀고 전생을 꺼내는 과정에서 개심하고 변화하는 인물들의 입체감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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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은 애독자를 탄생시킨 돌배 작가가 최근 신작 <율리>로 돌아왔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중인 <율리>는 아직 10편도 안 나온 신작이다.

 

현재 연재된 <율리>를 한 편씩 읽어나갈수록 다음 화가 너무 궁금해져 미리 보기를 결제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티베트를 모티브로 몽골, 알타이, 신장, 중앙아시아 등 토착 신앙과 유산들이 재창조되어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한 가상국가 '함백'의 설정이 신선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겐 조금 낯선 문화를 섬세하게 변주하며 또 다른 힐링을 선사하는 돌배 작가의 개성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 일상의 낙이 또 하나 생긴 것 같다.

 

 

 

트렌디한 그리스 로마신화, <로어 올림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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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스마이스, <로어 올림푸스>

 

 

또 하나의 '신화' 모티브를 트렌디하게 변주한 작품은 북미 웹툰 1위를 달리고 있는 <로어 올림푸스>이다. 독특하고 신선한 미국만화 화풍에 쨍한 색감으로 살아있는 작화는 물론, 그리스 신화를 역시 시대 감수성에 맞게 재해석해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연재를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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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하데스, 포세이돈, 아폴로

 

 

모티브가 된 그리스 로마신화를 떠올리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얽힌 신들의 관계성을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했는데, 줄거리는 이렇다.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어머니 데메테르의 과한 보호를 받게 된 페르세포네가 독립해 지하세계 하데스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그와 얽히는 로맨스 판타지를 그렸다.

 

뻔한 로맨스인가 싶지만, 아폴로에 강간을 당하고, 그 모습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박제 당하며 트라우마가 생긴 페르세포네가 아버지의 학대를 받으며 상처가 있는 하데스와 함께 극복해나가려는 모습은 로맨스로 위장한 성장물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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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가 보낸 사진을 확인하는 페르세포네

 

 

강간을 당한 이후 페르세포네의 심리를 묘사하는 과정은 보다 진지하게 그려지기에 15세 이상 관람 및 경고가 함께 기재될 때도 있다. 하지만, 가벼운 흥미 유발 소재로만 소비되지 않고, 많은 바를 시사함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서 오히려 다행이다.

 

현대와 판타지 어딘가에서 가장 어리고 약한 신 페르세포네의 여정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다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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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는 곳곳에 있다, 멋진 변주에 찬사를


 

이렇게 신화, 설화 등 과거의 요소를 그 시대에 맞게 잘 변주하는 능력은 비단 만화 업계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문화의 많은 부분이 변주로 구성되어있다. 돌고 도는 패션이며, 레트로 음악까지, 어디서 본 것 같지만 왠지 새롭고 쿨한 감성은 '시대 감수성'에 맞는 재해석 덕분이다. 그리고 재해석의 핵심은 '제작자만의 관점' 혹은 '안목'이다.

 

몇 년 전, 망해가던 구찌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컬렉션으로 1020세대의 선망에 오른 브랜드가 되었다. 평소 자유로움을 표방하는 그의 라이프스타일과 그의 옷장에 있던 빈티지 의류들을 매치하는 안목이 더해져, 트렌디한 앤티크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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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 컬렉션

 

 

그렇기에 변주는 참 어렵다.

 

흥미로운 과거의 소재를 찾는 일, 소재를 새롭게 매치할 아이디어를 찾는 일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어도, 조합들을 흥미롭게 재창조하는 추진력은 온전히 제작자의 안목에 달려있다. 또, 그 안목이란 누군가 그대로 답습하고 표절해낸다고 절대 따라잡을 수 없기에 보는 관점에선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뻔하다고, 재미없다고 관람자의 외면을 받는 작품들은 흥미로운 소재를 가져와서도 변주에 실패했을 때의 결과다. '캐비어를 가지고 알탕을 끓였다'라는 표현이 딱 적절한 경우다. 그래서 표절을 할지, 수많은 표절작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원조에 도전할지는 제작자의 선택이자 역량이다.

 

그래서 이렇게 멋지게 변주를 해내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들의 안목과 탁월한 센스를 보는 것은 일상을 따분하지 않게 해주는 즐거움 그 자체이기 때문에. <율리>의 다음 편이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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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율리>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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