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년 전의 미술관, 이탈리아 여행 편 [여행]

글 입력 2021.03.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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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이 중단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1년 전에는 유럽에 있었다. 교환학생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히 1년 전 오늘, 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며 한국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돌아온 내가 마주친 현실은 전 세계를 마비시켜 버린 전염병의 유행이었다. 나의 여행도 그렇게 끝났다.


그래서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를 오랫동안 망설였다. 굳이 말하자면 타이밍을 놓쳤다. 한국 안에서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인데, 굳이 저 먼 나라 미술관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까? 갈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정보를 줄줄 나열하며 미술관을 소개해 봐야, 누구에게 소용이 있을까.


그렇게 미루던 이야기들이 1년 넘게 지나면서 많이 흐릿해지고 말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게 되었다. 이제는 내 기억도 그다지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지루한 지금을 같이 한탄하며, 과거를 추억하는 가벼운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내 기억이 더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쓰는 글은 실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참고하기에는 부적절함을 미리 알린다. 그러나 언젠간 가볼까 하는 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엔 나름대로 적절할 것이다.




11일간의 이탈리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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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짧은 교환학생 기간 동안 가장 장기간 여행을 떠난 곳이다. 첫 이탈리아 여행이었기 때문에 큰 틀은 남들의 룰을 따랐다. 로마에서 피렌체, 베네치아를 거쳐 여행계획을 짰고, 일정 중 하루에 여유가 있어 피렌체 근교의 볼로냐에 다녀왔다.

 

이탈리아 여행 중 남들이 가는 여행지는 거의 다 다녀왔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곳들 말이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기대만큼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우피치 미술관은 과연 명성만큼 화려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동안 체력을 다 빼앗겨 버렸다. 그 수많은 걸작 앞에서 나는 피곤해 감기는 눈을 겨우 뜨고 서 있었다. 콜로세움의 내부도 비싼 입장료를 내고 다녀왔지만,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다. 차라리 숱한 현대 건물들과 신호등,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고 콜로세움의 외관이 드러나던 첫 순간이 백배는 더 감동적이었다.

 

그런 이탈리아 여행 중 오아시스가 되어주던 것이 도시의 현대미술관이었다. 현대미술관들은 어디든 도시를 많이 닮았다. 내가 지금 보고 느끼는 이 도시를 오랜 기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작가들이 아름답게 기록해두었다. 게다가 대부분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도 않고, 입장료도 저렴하며, 내가 여행하던 시기의 겨울 찬바람을 든든하게 막아주었다. 누구에게든 같은 오아시스를 내어 줄 이탈리아의 현대미술관 두 곳을 소개하려 한다.

 

 

 

로마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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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그 엄청난 관광지로의 명성만큼이나 붐비는 도시이다. 온종일 힙색에 손을 떼지 못하고 사람들에 치이며 지쳐버린 마음을 달래던 곳이 로마 현대 미술관이다. 이곳의 위치는 사람 많은 역 주변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한적한 공원 같은 곳을 걸어 조금 올라가다 보면, 그만큼이나 한적한 풍경의 미술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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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로마 관광지들이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같은 고대 유적들임을 고려한다면, 로마의 현대 미술관은 꽤 낯설지도 모른다. 의외로 몬드리안, 알베르토 자코메티, 뒤샹과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마주칠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읽은 책에서 우연히 보고 인상에 깊게 남았던 키스 반동겐의 작품을 이곳에서 만난 것이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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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여유로운 관람 환경을 추구하고 있는지, 중간중간 쉴 곳이 많다. 아쉬운 점은 영어로 된 캡션이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번역기의 이미지 검색 기능으로 관심 있는 작품을 찍어가며 관람했다.

 

그러나 이런 언어적 장벽이 더 재밌는 관람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당시 나는 한 전시장 홀에서 마주친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곧 그 전시장이 슬픔에 관련된 각양각색의 작품들을 모아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참혹한 전쟁의 슬픔이 담긴 대형 회화의 맞은편에는 처음 보는 작가의 추상 조각이 놓여있었다.

 

캡션을 읽을 수 있었다면, 슬픔을 참 난해하게도 표현했군, 하고 지나쳤을 작품이었다. 그게 불가능해지자 작품이 놓인 맥락에 집중하게 되었다. 의도는 오히려 더 정확하게 느껴졌다. 울퉁불퉁한 추상 조각 작품에서 말 그대로 슬픔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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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렇게 귀여운 손 그림 지도로 길을 잃지 않고 관람을 할 수 있고, 주요 작품들 역시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니 언어의 장벽을 겁낼 필요 없이, 편안하고 쾌적한 이곳에서 뻔하지 않은 여행의 보물들을 발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볼로냐 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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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는 피렌체에서 쉽게 닿을 수 있는 도시로, 주황색 건물들과 회랑으로 이루어진 도시 외관이 특징적이다.

 

볼로냐 현대 미술관 역시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볼로네제 파스타와 유명한 젤라또를 먹으러 관광 중심부를 누빌 때, 우리의 발걸음은 조금 더 외곽으로 향해야 한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빵 공장을 고쳐서 만든 아담한 볼로냐 현대 미술관이 있다.

 

척 봐도 학생처럼 수수한 차림의 내가 입장하자마자 학생용 공짜 표를 흔들며 어서 오라고 외치던 데스크 직원이 생각난다. 표도 공짜, 규모도 대단하진 않지만, 볼로냐 현대미술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볼로냐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그려낸 역사적인 흐름을 훑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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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가장 좋은 점은, 볼로냐를 닮은 화가 모란디의 전시 섹션이 크게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란디는 아트인사이트의 다른 글을 통해서도 한 번 소개한 적 있지만, 평생 볼로냐를 거의 떠나지 않고, 이 도시에서만 대부분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도시와 장소가 영감이 되는 방면, 누군가에겐 똑같은 공간의 미묘한 새로움이 영감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모란디는 평생 자신의 집 겸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을 했고, 그러다 보니 작품의 소재도 단조로운 편이다. 대부분 병이나 접시들을 그린 정물이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 정도가 다다. 그러나 당시 미술사의 흐름에서 등장한 복잡다단한 그림들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세계에 충실했던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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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한 톤으로 이루어진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그림들은 볼로냐라는 도시가 주는 느낌과 굉장히 닮았다. 하필 내가 볼로냐를 방문했던 날은 날이 흐려 사진에 예쁘게 담기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런 풍경이 주던 감정이 모란디의 작품과 더 닮아서 공감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수년 전 모란디의 전시를 한 적이 있어서, 이곳에서 한국어 도록을 읽을 수 있었다. 단조롭지만 지루하지 않은 모란디의 작품세계가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에겐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수많은 관광지를 다 보고자 발걸음을 재촉하다 그 무엇도 기억에 남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여행자였던 나에게, 매일 보는 집 안마저 성실하고 깊숙하게 바라본 모란디의 작품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


편안한 울림을 주는 이탈리아의 현대미술관들을 추천한다. 언젠가 이 상황이 지나가고 유럽을 다시 방문했을 때, 소매치기와 관광객들의 물결로 마음이 피로할 때, 예상치 못했던 발견과 감동을 가져다줄 현대미술관들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그곳에는 언어의 장벽도, 긴 설명도 필요 없는, 예술을 통한 공감이 있다. 이 도시에 대해 숱한 예술가들과 언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이 도시를 새롭게 기억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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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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