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 [도서]

글 입력 2021.02.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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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다른 시간대에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안겨준다.

 

내내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도, 환하게 빛을 내던 전등도 잠이 든 고요한 시간. 그렇게 빛이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고개를 드는 상념이 있다. 이 시간에 마주하는 상념은 실로 연약하고 부끄러운 것이라 남에게 함부로 내보일 수 없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색할 오롯한 기회이기도 하다.


최유수 작가의 도서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를 읽는 내내 새벽의 잔잔함과 공허함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아래는 프롤로그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한결같이 진지한 태도는 이제 쉽게 외면당한다. 누구나 사랑에 관한 글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무도 자신의 사랑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근래에 나는 의미와의 싸움에서 계속 진다. 왜 우리는 타협적일 수밖에 없는가. 왜 마지막은 죽음이어야 하는가.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말의 힘은 강력하다. 말에 담긴 의도는 생각에 영향을 주고 행동까지 제어하니 말이다.

 

어느 순간 등장한 오글거림과 진지충이라는 단어의 힘은 강력했다. 재치 있는 유머와 쿨한 여유가 환한 빛처럼 세상을 비췄다. 하지만 이 빛은 너무나 강력해 응당 있어야 할 일말의 어둠마저 없애고 말았다. 진지함이 곧 재미없음이 되어버리고, 날것의 감정은 내뱉는 순간 자신의 약점이 되어버린다. 전등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빛을 쫓아 날아가는 사람만이 남았다.


이렇듯 외로운 사회에서 작가는 꿋꿋이 어둠을 찾아 날갯짓 한다. 의미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사색한다. 누군가와 함께했던 날, 숱하게 내뱉는 말의 무게, 멀어지는 관계에 대한 아쉬움, 불안과 오해 등 고민의 대상은 다양하다.

 

나라는 작은 존재에서부터 너를 거쳐 우리로 확대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사랑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열심히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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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사랑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다. 책 속에서 언급한 여러 시선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단이다. 과거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운명적인 힘에 의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자기 행위의 방향성을 자기 의지로 표출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므로 사랑은, 전달보다는 발산에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주는 만큼 받아야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았는데 혼자 들떠서 이것저것 퍼주고,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아 실망하고는 했다.

 

기대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버리기 어려웠다. 그러다 한 친구를 만났다. 주는 것에 만족하는 친구였다. 나라면 서운함을 느꼈을 순간에도 그 친구는 그저 담담해 보였다.


받지 못해도 괜찮은지 물어보니, 사랑은 주는 것으로 생각한단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주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으니 기대했던 만큼 돌려받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애초에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달랐던 거였다. 이를 계기로 받으려는 마음을 버리려 노력했다. 지금의 나는 조금씩 달라지는 중이다. 완벽히 달라지지는 못했지만, 괜한 감정 소모가 사라지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순간의 감정에 훨씬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선인장처럼 가시를 가지고 있다고. 다만 인간의 가시는 사고방식을 담고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한다. 그렇게 선인장이 가까워지면 가시에 찔리게 된다. 무언가를 찌르기 위해 내놓은 가시가 아니지만, 필연적으로 찔리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가시를 부러뜨려야 한다. 다만 나는 내 가시를, 상대방은 그의 가시를 직접 부러뜨려야 한다. 서로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받은 만큼 돌려주기를 바라는 사랑은 상대방의 가시를 부러뜨리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의 사고방식을 자신에게 맞춰 다듬기 때문이다. 기꺼이 스스로 가시를 꺾는 사람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몸에는 생채기가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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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많았다. 여러 주제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지만, 읽고 난 후의 여운은 길었던 책이다. 깊이 있는 사색이 담긴 책을 원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로부터 의미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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