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행위 예술의 대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에게 쓰는 편지
글 입력 2021.02.2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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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예술의 대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드립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전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 전시 관람객입니다. 이 전시에서 저는 당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꺼내며 눈물을 흘렸어요. 이전에 울라이와 함께 했던 행위예술을 보고 당신에게 매료되었는데, 아마 저는 당신을 직접 본 것에 대해 감격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존중을 담은 당신의 눈빛을 보았어요. 당신의 눈빛이 제 삶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나 봐요. 마리나, 저는 이 전시를 계기로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어요. 물론 이전의 작품으로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면 좋겠지만, 궁금한 점을 물어볼 뿐만 아니라 제가 당신에게 매료된 이유를 말하고 싶어 편지를 남깁니다.

 

저는 당신의 작품 중 <리듬 0(Rhythm 0)>를 처음 접했는데, 행위 예술은 처음이었기에 기괴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토마스의 입술(Lips of Thomas)>에서 깨진 크리스털 잔 조각으로 배에 별을 새기거나 채찍을 휘두르고, 얼음덩어리가 녹을 때까지 누워있는 행위는 충격적이었어요. 끝내 그것을 보다 못해 당신을 끌어내린 관객에게 박수를 쳐줄 정도였으니까요.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에서 당신은 4일 동안 6시간씩 유고슬라비아의 전통 민요를 부르면서 1,500개의 피 묻은 소뼈를 닦는 행위를 계속하죠. 끊임없이 흔적을 지워나가지만, 행위가 반복될수록 당신의 옷이 더럽혀져 내전의 참혹함과 살인의 죄는 영원히 닦이지 않는다는 것을 관객에게 알렸다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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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3개의 작품으로 당신의 예술상이 가학적이고 기괴하다고만 생각했으나 제가 행위 예술에 대해 빠져들 수 있게 해준 작품이 있어요. 바로 당신의 옛 연인이었던 울라이와의 공동 작업인 <두 개의 머리(Two Headed Body)>와 <정지 에너지(Rest Energy)>예요. 이 작품들은 이전 작품처럼 폭력적 행위가 잦지 않고, 오히려 관계와 신뢰를 보여주고 있어요. <두 개의 머리(Two Headed Body)>는 머리카락으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한 명의 인간을 표현함으로써 유대감을 보여주었어요. <정지 에너지(Rest Energy)>는 다른 누군가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상대의 심장을 관통해버리는 자세를 보여주었는데, 보는 내내 얼마나 심장을 졸였는지 몰라요. 특히 이 두 작품은 가족, 친구, 지인이 많이 떠올라서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즐겨찾기에 당신 작품에 관련된 영상밖에 없을 정도예요.


마지막으로 제가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한 계기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에 대해 말해볼까 해요. 마리나, 저는 행위 예술이 미술의 한계를 허물어 예술가의 행위만을 작품이라 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통해 행위 예술이란 단순히 예술가로부터 관람객으로 전달되는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행위를 예술가와 관람객이 동시에 경험함으로써 소통이 중심이 되는 예술임을 알게 되었어요. 솔직히 당신과 눈을 맞추면서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상대방의 눈을 1분 이상 쳐다본 일이 많지 않거든요. 앞서 당신의 눈빛이 내 삶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고 했잖아요? 당신도 나와 함께 이 행위를 통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을 실감했어요.

 

당신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생기니 이제는 앞서 말한 3개의 작품이 기괴하다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참, 현대미술 수업을 듣다가 <리듬 0(Rhythm 0)> 작품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신체 전부를 허락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당신이 그랬죠.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잠재적인 폭력성을 끌어내어 그들의 의식을 테스트하는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고통을 대변하는 거라면서요? 과연 제가 이 무대의 참여자였을 때 인간의 어떤 본성을 드러내었을지 궁금하네요.

 

당신의 작품을 예술이라 칭하는 이도 있지만 반인륜적이라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어요. 사탄을 숭배한다며 당신을 비판하는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생각하기엔 행위 예술이 기존 예술의 틀을 깬 경향 중 하나이기에, 갑자기 받아들이기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봅니다. 특히 당신은 인간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한계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 노력했던 예술가이기에 증명하려는 모습이 자극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죠. 궁금한 것이 더 있어요. 울라이와 공동 작업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했는데, 그를 연인으로서가 아닌 예술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술가가 예술가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울라이와 22년 만에 재회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이었나요? 제가 22년 만에 옛 연인을 만났더라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지 못했을 텐데, 당신이 퍼포먼스의 금기를 깬 것이라서 더 궁금하네요! 또, 그와의 공동 작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마리나, 제가 당신에게 편지 쓰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제가 당신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고, 당신의 작품에 매료된 이유를 이렇게 직접 말할 수 있다니요. 다시 한번 말해보자면 자칫 기괴해 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를 인간의 본성과 연관시켜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당신의 의도를 보고 반했어요. 당신은 저를 작품의 일부로 만들어주었어요. 저는 그걸 여실히 느꼈고요. 그리고 예술이란 예술가가 관람객에게 일방적으로 의도를 전달하려는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예술가와 관람객 간의 상호 작용임을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이렇게 말했죠, 모든 인간들이 죽음·고통·단순함을 두려워하는데, 자신은 그것을 무대에 올려 한계까지 올린다고... 그러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마리나, 전 이렇게 생각해요.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예술은 진심과 스토리가 담겨야 한다고요.



행위 예술의 관객이자 행위자 씀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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