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질문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울 일이 많다 [영화]

글 입력 2021.02.2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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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나만으로 감독과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생각보다 희귀하다. 나는 영화를 보면, 감독님의 인터뷰를 거의 다 찾아본다. 그러다 인터뷰를 보고,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 내게 윤가은 감독님은 '앞으로도, 절대 실망할 일이 없겠다.'라는 확신을 줬다. SNS에서 유명해진 '우리집 촬영 수칙'처럼, 감독님은 아역배우를 배우로 존중한다. 그래선지 영화에서도 애라서 이럴거야, 애는 이래야 하지 않아? 같은 어른의 편견어린 시선이 없다. 아이들의 일상과 감정을 꾸며내지도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아이들의 표정은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이들의 이야기 또한 그렇다. 사소한 시선과 손짓에서 상한 감정이 느껴진다. 세세한 감정들이 쌓여, 상처를 주는 말들을 교실에서 폭탄처럼 쏟아낸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작은 다정함과 아이들만의 대담함은 '선'과 '지아'를 묶어준다. 여전히 나는 어리고, 관계를 쌓는 게 어렵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그 이유가 사람을 대하는 일이 점점 능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어리숙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선, 지아, 보라 모두 어딘가에 있을 법하다. 우리는 한 번쯤은 선이었을 거고, 지아였을 테고, 보라였던 순간이 있을 거다. 친구와의 갈등에 마음 아파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온종일 설렌다. 친구와의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면, 당황하고 자문한다. 내가 뭘 잘못했어? 선이는 다른 사람을 세심하게 신경 쓸 줄 아는 사람이었고, 많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질문이 많은 사람은 더 쉽게 웃을 수 있고, 그만큼 울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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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한 명씩 팀원을 고를 때, 선택받지 못하는 선의 표정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선을 밟았는지에 관한 미묘한 갈등과 신경전이 반복된다. 갈등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선이를 보면, 내 어릴 때가 떠오른다. 내가 영화 속 장면을 똑같이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초등학교 내의 권력 다툼이 생각나면서, 그때의 나는 어땠는지 떠올린다. 이런 다툼을 조장, 아니 방관했던 선생님과 완벽한 평화를 원하는 학교의 고질적인 시스템을 떠올렸다. 과연 선생님은 이런 폭력을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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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언제 놀아?"

 

영화에서 가장 어린 민준이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싸우고, 때리고, 욕하면서 미워하기만 하면 우리는 언제 놀 수 있냐고. 그냥 친구랑 노는 게 좋으니까, 맞고 때리고 싸우기만 하면 언제 놀 수 있냐고. 무슨 일이 생겼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을 살아야 하고 긍정을 믿어야 할 때가 있다. 감독님은 그 말을 메모장에 적어, 힘들 때마다 보면서 이겨냈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우울함과 후회가 나를 옭아맬 때, 민준이의 순수한 음성을 떠올린다.

 

아이들이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단지 절대적인 시간이 쌓이지 않아서, 삶을 살아가는 데 능숙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능숙함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옳은 방향으로만 우리를 끌고 가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숱하게 울고 후회하는 일이 없었겠지. 아이들은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바라보고, 이렇다한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들에서는 민준이가 제일 어른이었다. 내가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점점 찾게 되는 이유는 어른다움을 찾고 싶어서인 것 같다. 미성숙한 어른의 변명이다.

 

 

[안다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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