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산타클로스 설화의 뻔하지 않은 해석, ‘클라우스’ [영화]

글 입력 2021.02.2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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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라우스'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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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은 다가오고, 정부에서는 연말 모임 자제 요청,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는 따뜻한 집에서 넷플릭스로 영화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중 '클라우스'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재밌다는 평이 많아 이 작품을 선택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요소들을 보고 들었던 생각들을 풀어보려 한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흘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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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제스퍼'는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가족의 품에 있다가 세상을 경험해보길 바라는 아버지에 의해 떠밀리듯 사회로 나왔다. 척박한 변방 지역 우체부로 발령 난 제스퍼가 처음 마주한 낯선 세상은 뭔가 허름하고 우중충한 분위기와, 주민들끼리 서로 편을 나눠 물고 뜯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있었다. 그런 '이상한' 사람들 속에서 처음으로 비교적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인 학교 선생님 '엘바'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엘바 또한 아이들이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학교에 발령받아, 본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하루빨리 이 시궁창 같은 곳을 떠날 거야'라며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특성상 과장되어 표현되었지만, 이 일련의 과정들은 어쩌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회초년생의 현실에서 고스란히 일어나는 일들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근황 올림픽'이라는 채널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떤 꿈을 갖고 그 꿈을 좇으려 할 때, 항상 성공한 '일부' 사람들의 사례만 보고 쫓아간다. 사람들은 성공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진다. 평균을 뛰어넘는 노력은 물론이고 운도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실패를 겪지 않고 하루아침에 뚝딱 성공하게 된 것도 아닌데, 남의 이야기로 들을 때는 성공이 마냥 쉬워 보인다. 그런데 그 길을 시작한 100%의 사람들이 모두 그 결말로의 성공만 맺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처음 출발선과 똑같은 결승선에 다다르진 못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공한 사람들과 같이 걷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그 사라진 사람들의 인생이 전부 실패한 것도 아닌데.


이걸 이 영화의 결말과 연결 지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엘바와 제스퍼는 둘 다 본인들이 처음에 의도치 않았던 상황에 내던져져 내가 돈만 모으면, 내가 조금만 버티면 여기서 어떻게든 탈출할 거란 계획만 세우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결말을 보고 그들이 모은 돈을 모두 다른 일에 써 버리고 그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목표를 이루지 못한 실패자라고 과연 할 수 있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흔히 성공했다고 칭하는 많은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 목표를 가지고 달린 사람은 극히 일부인 듯하다. 잘 살펴보면 친구 따라 오디션에 갔는데 어쩌다 뽑혀서, 돈 벌려고 일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좀 쉬고 싶어서 다른 시도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 더 많다.


인생은 실은 '우연히 일어난 일로 흘러오다 보니 어쩌다'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서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사실 그렇게 사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그리고 뒤돌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우연들은 공연히 생긴 일이 아니라, 실은 자신이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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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행동은 또 다른 선한 행동을 낳지,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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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대표적인 명대사가 '선한 행동은 또 다른 선한 행동을 낳는 법'이라지만, 나는 그 선한 행동들이 온전히 선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제스퍼를 외딴섬에 보낸 이유는 그 섬의 우편 업무 증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 철이 들었으면 해서다. 제스퍼가 클라우스에게 공방을 만들어주고 클라우스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게 된 일은 제스퍼가 클라우스나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서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실적을 쌓아 이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클라우스가 새집을 만드는 이유도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내를 추억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이 착한 일을 하기 시작한 이유도 선물을 받기 위함이었고, '우연히' 시작된 이 행위들은 결국에는 갈등을 빚던 마을이 제대로 돌아가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계기가 된다.


이렇듯 선한 행동을 낳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대단한 의지나 고매한 성품 등이 필수인 것은 아니다. 다 나름의 현실적인 이유에서 내 한 몸 잘 살고자 흘러가다 보면, 철저히 '사익'을 위한 행동들이 '어쩌다' 결국에는 선순환을 만들어냄을 그려낸 점이 좋았다. 단순히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니까, 착하게 살아야 하니까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뻔한 교훈 부여가 아니라.


그리고 줄거리 자체는 '산타클로스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설화에 어느 정도 현실적인 면을 대입해 설화와 현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며 결말까지 아주 깔끔하게 연출이 이어진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결국 설화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이야기에서 각색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작가가 '설화의 이런 부분은 현실의 이런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 아닐까?' 상상하며 진행시켜 나가는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역으로 생각하면 현실의 다른 상황들을 상상하다 보면 또 다른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올 듯하다.

 

 

 

마을 사람들의 대립


 

외딴 지역인 스미어렌스버그에서는 오랫동안 크럼 가문과 엘링보 가문의 대립 구도가 이어져왔다. 어른들은 상대 가문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일과이자 일상이고, 아이들도 이를 보고 자라 마찬가지이다. 마을의 장로들은 아이들에게 절대 상대 가문의 사람과 어울려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아이가 '왜요?'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자, 그들은 가문 간의 유구한 싸움의 역사를 소개한다. 그러나 과연 저 장로들은 단순히 서로의 혐오 관계가 예전부터 이어져왔다는 '관습' 말고는 서로 지금까지 왜 미워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무차별적으로 욕하고 싸우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주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과연 자신들이 싸우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싸우는 걸까?


이러한 문제는 사람들을 개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보기 때문에 비롯된다. 엘링보 가문 vs. 크럼 가문이라는 대결구도에서는 각각 가문 안에 속해 있는 'A'라는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한 개인 안에도 이 모습 저 모습이 다 섞여있는데, 상대 집단 'B'라는 사람의 눈에는 'A'의 개인 고유의 특성들이 모두 지워지고 'A는 크럼 가문이다'라는 정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밖에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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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웃긴 점은, 이러한 절대적인 적대 관계가 '공통의 적'이 생기면 곧바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된다는 것이다. 클라우스와 제스퍼가 장난감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로 인해 마을 아이들이 가문을 가리지 않고 같이 어울려 놀기 시작하자, 각 가문의 장로들은 이를 막기 위해 잠시 동안 힘을 합치자고 한다.

 

 

 

상처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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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않던 제스퍼가 유독 마르구한테만은 혼잣말 격으로 자신의 걱정을 주절주절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마르구에게 '너 얘기를 참 잘 들어주는구나'라고 하는데, 그 이후의 장면을 보면 사실 제스퍼는 마르구가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무언가를 털어놓는 사람의 심리는 그에 적합한 대답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원래 사람들은 남이 죽어라 얘기해도 잘 듣질 않는다. '답정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본인이 그 답을 알고 있고,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 남에게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자꾸만 이 문제들을 타인으로 하여금 들춰보게 하는 데에는 또 이유가 있다. 제스퍼가 클라우스에게 공방에서 장난감을 만들어 나눌 계획을 얘기하다, 실수로 클라우스가 나무를 가려놓은 천막을 들춰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누군가가 먼저 들춰보고 네 상처가 뭐냐고 물어봐야 당사자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치료하려 들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문제를 숨겨놓고 묻어두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성장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성장물 특유의 '상처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도 이런 장면들로 녹여내는 부분이 좋았다.


 

 

영화를 보고 떠올랐던 노래 한 곡


 

 

차라리 도망가는 게 좋겠어

멀리 떠나버리는 게 낫겠다

너를 이루고 있는 그 조각들이

지금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면 야


다들 그래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솔직히 말해

다들 그냥 다


몸이 사라질 것처럼 춤을 추자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아서

고릴라가 된 것처럼 같이 뛰자

네가 모르는 네 모습들로

이 자리를 채우자


어쩌다가 어깰 툭 친 어떤 이의

어쭙잖은 어디서나 어김없이

어리숙한 어리굴젓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어떻게든 되겠지

 

♪ 최예근 - 고릴라 中

 

 

최근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재밌게 봤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덕분에 새로운 가수들을 많이 알게 됐고, 플레이리스트에 많은 곡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top 10 방송에서 최예근 가수님의 곡인 '자각몽'을 듣고 완전히 반해버렸고, 그렇게 모든 앨범 모든 수록곡이 플레이리스트에 담겼다. (한 번 꽂히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전 곡을 다 듣는 편이다.) 그중 '까만 얘기', '알아', '내가 서있는 곳', '고릴라'의 노래 가사에 너무 공감이 가 정말 이입되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고릴라'라는 노래의 가사가 내가 해석한 '클라우스'의 메시지와 같은 맥락으로 들렸다. 결국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스미어렌스버그 사람들의 대립, 그리고 클라우스•제스퍼•엘바가 간직하던 상처와 고난들은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나아가고자 한 행동들이 모여 '어쩌다가' 해소되었다. 원래 의도했던 방향과는 조금은 다르게, 그리고 더 좋게 말이다. 그리고 이걸 잘 다듬으면 하나의 완전한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나는 어떻게 보면 지금껏 제스퍼 같은 삶을 살았다. 내가 지금까지 살던 방식대로 계속 살 줄 알았고, 내가 계획한 최종 목표를 향해 당연히 골인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려던 게 어긋나자 나는 한동안 실패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도망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도망쳤다. 상황을 회피하고 멀리 떠나버리고 싶었다. '지금 원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 영화를 접하게 됐고, 그 당시의 나에게는 아무래도 영화가 '우연히 살다 보면 우리는 어떻게든 어딘가로 향해간다'라는 메시지로 와닿았다. 그리고 저 가사와 비슷한 생각들이 들었다. 그래, 그냥 내키는 대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의미와 노력들을 담아서, 그렇게 고릴라가 된 것처럼 멋대로 춤추고 내가 모르던 내 모습들로 나를 채우다 보면, 어느샌가 나도 어딘가에 이르러 있겠지. 아니, 딱히 어딘가에 다다르지 않아도 된다. 삶은 지금 흘러가는 이 순간순간들 그 자체이므로. '어떻게든 되겠지!'

 

 

[이채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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