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글 입력 2021.02.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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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아일랜드는 한국과 상당히 비슷한 맥락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일랜드는 수백 년 동안 영국에게 침략당하고 이에 저항했으며, 피지배의 역사 속에서 원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사상적 차이로 인해 동족상잔의 비극도 겪었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내전의 발발 과정을 한 형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해나가는 영화다. 제목은 19세기의 아일랜드 문인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가 쓴 동명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이 시는 아일랜드를 수탈하는 영국에게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화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아일랜드인들은 이 시에 멜로디를 붙여 민요로 부르곤 했다. 영국군에게 맞아 죽은 미하일의 장례식에서 미하일의 할머니인 페기가 부른 노래도 바로 이 민요다. 페기가 사랑하는 손자를 위로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시점에서, 금빛 보리밭으로 표상되는 농업과 목축업의 나라 아일랜드를 흔드는 '산골짜기의 미풍'은 아일랜드를 침략한 외세인 잉글랜드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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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일랜드의 독립투사들은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을 위시한 영국에 맞서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립하고자 했다. 감옥에서 만난 데미언과 기차 기관사 댄은 ‘영국군을 몰아낸다 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며 영국은 지주와 자본가, 상권을 통해 아일랜드를 계속 지배할 것’이라는 아일랜드 노동당 수장 제임스 코널리의 연설을 암송하기도 한다.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생산한 농작물은 잉글랜드의 식민정책으로 인해 자국민을 먹여 살리는 대신 잉글랜드로 유출되기 일쑤였고, 아일랜드는 그 영향을 받아 18세기와 19세기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대기근에 대처하지 못한 채 수백만 명이 죽거나 나라를 떠나는 커다란 타격도 입었다. 영화에서는 이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 ‘런던의 자본가’로 거듭 묘사된다.

 

데미언과 그의 형 테디, 그리고 동지들은 런던의 자본가들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만, '영국-아일랜드 조약'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로 인해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독립투쟁세력 내부의 사상적 갈등이 영화에서 최초로 부각되는 지점은 바로 아일랜드 공화국 법정의 첫 재판 장면이다. 원금의 5배를 이자로 청구한 죄로 법정에 선 자본가에 대해 테디는 그가 IRA에 무기를 대주는 사람이므로 죄를 사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댄은 “겉엔 녹색을 칠해도 속은 영국 놈들과 똑같이 가자는 이야기냐, IRA가 지주들은 지지하면서 우리와 같이 땅과 가축을 되찾으려는 가난뱅이들은 짓밟았다”며 반박하지만, 테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후 테디는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찬성하는 세력을 이끌게 된다.


반면, 영화 초반에 자신에게 독립운동을 하자던 형 테디에게 ‘이름을 영어로 말하지 않아 개죽음을 당한 것이 순국이냐’며 비꼬았을 만큼 현실주의자였던 데미언은 현실에 타협하는 형에 맞서 완전한 독립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데미언의 가치관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유의미한 조국'.

 

데미언은 어릴 적부터 친밀하게 알고 지냈던 동네 친구 크리스를 밀고자 처단 원칙에 따라 처형하게 된다. 크리스에게 총구를 겨누기 전 데미언은 “이 아일랜드가 우리가 이렇게 투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길 바란다(I hope this Ireland we're fighting for is worth it.)”라고 말한다. 데미언의 '투쟁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에 대한 소망은, 자치권을 획득했어도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국민 4명 중 한 명이 실업자이며 여전히 영국 자본주의 권력가들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모습에 타협하지 않는 투쟁가로의 변화와 곧장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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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사로서 여러 환자를 진료하면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들을 목격한다. 형 테디가 급진주의 전단에 대해 질책하자 데미언은 자신이 본 굶주리는 아이들을 언급하며 “사람들이 예전처럼 뉴욕과 런던으로 떠나길 바라느냐”고 되묻는다.

 

데미언이 테디에게 “사람들이 또 굶어 죽기를 바라?”가 아닌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길 바라?”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가치 있는’ 조국에 대한 데미언의 염원을 시사한다. 먹고살기 위해 수많은 인구가 해외로 이주했던 대기근을 두 번이나 경험했던 아일랜드의 국민으로서, 그리고 IRA에 합류하기 전에는 일류 병원에서 근무하기 위해 영국의 런던으로 떠나고자 했던 노동자로서 바라본 빈곤은 그저 많은 사람의 죽음이나 국가의 쇠락이 아닌, ‘노동자가 떠나고 싶어 하는 나라’, 즉 ‘조국으로서의 의미가 없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 친우를 죽이면서까지 구하고자 하는 조국이 조국으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 모든 아픔과 상실은 의미가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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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형이 동생을 총살하기에 이르기까지, 오도노반 형제의 갈등으로 표상되는 아일랜드 내전 발발 과정은 계급적 맥락 속에서 감독에 의해 심판대 위에 오른다. 그들이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죽어야 했던' 이들은 그 나라를 누렸는가? 심지어 투쟁가들은 조약 이후에도 예전의 동지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제 손으로 옛 친구를 죽여야 했다. 자신들을 숨겨 주고 밥까지 지어 주었던 이웃 주민들을 포로처럼 세워놓고 위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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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크리스의 어머니가 데미언에게 했던 말인 “너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구나”라는 한 서린 대사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시네드가 테디에게 하는 말로 재등장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상처 입히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던 사람들이 역시 사랑하는 동족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정작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아일랜드 내전이 본격화되기 전에 영화가 끝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아름다운 녹색의 나라 아일랜드의 보리밭이 황금빛으로 여문 후 찾아온 부드러운 산골짜기의 바람은 과연 영국뿐이었을까? 영국군에게 맞아 죽은 손자를 추모하는 할머니의 입에서 불리는 이 민요를 들려주면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영국임을 명백하게 보여준 듯했던 영화는, 곧 아일랜드를 휩쓸고 지나갈 내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특유의 담백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마침표 없이 막을 내린다.

 

 

[송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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