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은 한가지 색이 아니야 [영화]

영화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과 ‘소울(Soul)’ 로 본 삶의 다채로움
글 입력 2021.02.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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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과 ‘소울(Soul)’ 로 본 삶의 다채로움

 

 

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밑도 끝도 없는 삶과 세계에 대한 낙천적인 태도와 원대한 목표를 향한 히어로적 주인공의 좌충우돌 민폐가 가득한 모험 이야기, 악당과 영웅 악과 선을 정확히 나누는 이야기의 진부성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 물들지 않았던 아이 시절엔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았다. 하지만 세상은 절대 단순하지 않고, 사람들을 어떤 전형으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런 기준을 공고히 만드는 애니메이션들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극장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드나들던 때가 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의 극장은 관람객들이 많지 않았고, 또 학생 할인을 해줬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와 함께 픽사에서 제작한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이란 영화를 예매했고, 그 당시 학생가 6,000원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어두컴컴한 극장 관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한창 인기를 끌었던, ‘겨울왕국’ 에도 나는 시큰둥했기 때문에 ‘인사이드 아웃’ 도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 아무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시점에서 나는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극장가에 개봉한 영화 ‘소울(Soul)’은 같은 이유에서 나에게 또 다른 픽사식 감동을 주었다. 픽사의 영화가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다르게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뭘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나를 감동케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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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과 ‘소울’은 세계관의 세팅에서 비슷한 양상을 취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세계 외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을 현현 시킨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감정 컨트롤 본부를 만들었다. 그 안의 자의식을 가진 여러 감정 캐릭터들이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감정본부에서 감정의 신호를 보내서 우리 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조종한다는 것이 이 세계의 설정이다. 이를테면 갑자기 화를 낸다면 그것은 버럭 이의 소행이다. 반면 ‘소울’은 개인에서 지구적으로 그 세계를 확장했다. 우리가 머무는 물질세계를 넘어서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머무는 세계’, 그리고 ‘죽은 후에 가게 되는 세계’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어나기 전의 세계’ 이다. 이 장소에서 개인들은 세계에 던져지기 이전에 성격적 특성을 부여받고 지구로 가야 할 준비가 되었다는 표식인 지구 통행증을 완성하면 그것을 달고 지구의 아이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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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서사적인 측면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대게 이런 환상의 세계의 룰을 뒤집고 뒤흔드는 거대한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과 주인공 일당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을 방해하는 빌런들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엔 우리가 예상하는 결말을 뒤집는, 생각의 확장을 일으키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 두 개의 애니메이션이 주는 교훈의 공통점은 기존의 애니메이션들이 주는 흑백논리의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 아닌, 그것들을 통합해주는 혹은 넘어서는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라는 소녀의 성격, 기분 등을 관장하는 주요 본부 ‘감정 컨트롤 본부’가 있다. 일의 발단은 핵심기억을 슬픔이가 건드림으로써 파란색 구슬로 만들고, 핵심기억은 즐거움, 노란색이어야만 한다는 기쁨에 의해 둘은 갈등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그 둘이 핵심기억 구슬과 함께 본부에서 튕겨 나가면서 시작한다. 기쁨과 슬픔은 라일리의 성격섬이 붕괴하는 것을 막고 핵심기억을 다시 넣기 위해 기억 본부로 되돌아가는 여정에 오른다. 그 과정에서 기쁨의 입장에서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슬픔은 라일리의 상상의 친구인 ‘빙봉’을 위로하면서 울음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고, 라일리의 행복한 기억은 단순 기쁨이 아닌 슬픔을 공유함으로써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슬픔과 기쁨의 유대가 시작된다. 부정적으로 여겼던 슬픔과 우울이라는 감정이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조화로운 인생에 대한 알록달록한 픽사의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악취가 있기에 아름다운 향수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울, 슬픔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은 더욱더 다채로워진다. 우리의 추억은 단지 한 가지의 색이 아니다.

 

‘소울’은 재즈 피아니스트인 ‘조 가드너’가 우연히 맨홀에 떨어지면서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서 자신의 일생일대 기회인 재즈 무대에 서기 위해 조는 고군분투한다. ‘태어나기 전 세상’ 에서는 시니어들이 ‘태어나기 전 영혼들’의 관심사를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그렇게 채워진 통행증으로 영혼들은 지구에 태어난다. 조는 지구에 태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까칠한 ‘영혼 22’를 배당 받게 되고, ’영혼 22’의 관심사를 찾아주는 대신, 지구로 가는 통행증은 조가 받기로 둘은 거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건으로 현실 ‘조 가드너’의 몸에 들어가게 된 ‘영혼 22’는 조의 부탁으로 재즈 무대에 서기 위해 지구에서의 여러 일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면서 지구 통행증을 완성할 ‘관심사’를 찾게 된다. 하지만 조는 피자를 먹고 걷는 것은 관심사가 될 수 없다고 하고 지구 통행증을 가지고 자신의 본래 몸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오른 후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고 다시 ‘영혼 22’ 에게 지구 통행증을 전달하기 위해 ‘태어나기 전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이 여정이 주요한 두 번째 갈등의 해소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생에서의 목적을 찾고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생에서의 원대한 목표, 꿈을 가질 것을 권고하는 미디어의 강연들을 더욱 우리에게 위대해질 의지를 가질 것을 독려한다. 개인의 의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주한다면 그건 실패자의 삶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소울’ 은 생각하게 한다. ‘실패한 인생’ 이란 것, 혹은 ‘성공한 인생’ 이란 것은 결국 허상이 아닌가, 뭔가에 대한 ‘성공’이라는 말은 그것을 쟁취할 목표가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존재일까. 목적이 없어도, 그냥 살아가는 것은 안 되는 걸까.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고, 과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수녀로서 많은 사람을 돕는 것은 숭고하고 원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위인들이 되지 못해도 괜찮다. 꼭 원대한 목표가 있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목적 없이 세계에 피투된 존재들이고,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에서 통행증을 완성하는 마지막 업적 또한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 목적’이 아니라, 단지 인생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이다. 그 준비는 ‘나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에 복무할 각오’일 수도 있고, 일상에서 느끼는, 살아있어서 단지 ‘삶’에서 오는 ‘일상성에서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일 수도 있다고 이 영화는 제안한다. 이런 따듯한 제안이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울리는 이유는 항상 뭔가가 돼야 한다고 혹은 위대해질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우리 자체가 이미 살아갈 자격을 갖추고 나온 존재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박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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