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시대를 웃다, 유에민쥔 전시

글 입력 2021.02.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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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크게 벌리고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 분홍색 사람들.

 

유에민쥔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이다. 전시 초반에는 그들의 모습이 행복해보여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나의 광대뼈가 아팠다. 한참 웃고 나면 광대가 얼얼하게 아픈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웃음 속에는 뭔가가 숨겨져 있었다. 천진하다 못해 과장스럽게 웃고 있는 입 속은 검은색으로 칠해져있어 끝없는 어둠을 상징하는 듯 했고, 일렬로 빼곡히 자리잡은 이빨들은 오차가 하나도 없이 하얘서 라미네이트한 사람을 연상시켰다.


그 이유는 뭘까.

 

 

 

냉소적인 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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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중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공존을 고스란히 체험한 작가가 그려내는 현 세대들을 향한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비웃음이다.


1989년 이후 가속화된 세계화의 물결은 특히 중국에서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유토피아와 사유재산에 대한 욕망이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사회주의적 신자유주의'라는 기이한 과두 체제를 만들었다.


사회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자본의 제국이 들어섰지만, 통제와 감시는 더욱 내밀하게 이 둘 사이를 배회하며 좀비처럼 영생을 누리고 있다. 인간들은 그저 무한 노동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 가고. 지난 30여 년간 전 지구적 차원에서 구축된 세계화된 시대에서 정치적 자율성은 축소되고,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며, 지역의 문화적 특성들은 지속해서 쇠퇴해 왔다.


유에민쥔의 냉소는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한다. 유에민쥔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동일한 존재의 무수한 자기복제와,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몰개성적이고 획일화된 인간 군상들이 아무 생각없이 웃고 있을 뿐이다. 유에민쥔이 대표하는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냉소적 사실주의'는 마비된 이 시대에 비수를 꽂는다.

 

 

 

조각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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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걸음이 오래 머무른 곳은 4번째 코너인 <조각 광대>로 스테인리스강으로 된 대형 조각 광대들이 늘어선 공간이었다. 둥근 원을 이루고 선 조각들은 모두 유에민쥔의 시그니처인 웃는 사람들을 표방하고 있었고, 그들의 뒷통수에는 동물들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불독, 코뿔소, 고양이 등.

 

잠은 어떻게 잘까? 라는 생각을 하기 앞서 이 조각들은 한편의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특성을 갖고 있었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한 판의 코미디 연극을 말한다.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움 속에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녹아 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연극처럼 유에민쥔의 조각작품도 멀리서 보면 희극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이 두 작가가 그들의 자화상으로 만든 독보적인 캐릭터는 20세기와 21세기의 비극 속에서도 웃음으로 세상을 한없이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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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에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진들은 대부분 무표정이다. 분명 작품 속의 캐릭터들이 본인의 분신이라고 했었는데, 낯선 사람들이 찍는 사진은 어색해서 표정이 굳으신 걸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

 

유에민쥔이 중국 현대 미술의 거장이자 4대천왕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고 또한 광주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에도 초청받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작가이지만 카메라 울렁증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검색하다가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전부 그의 분신이지만 실제로 작가는 잘 웃지 않는다고 한다. 유에민쥔의 미소는 그의 캔버스에만 존재한다.

 

그는 그저 무기력하게 세상을 응시하고 자신을 표현할 뿐이다. 스스로를 그리는 시니컬 리얼리즘 작가. 한 시대와 사회에 대한 절망을 실소와 시니컬한 웃음으로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게 유에민쥔의 작품 그 자체인 것.

 

전시장을 나오며 나는 괜히 광대를 문질러 보았다. 얼얼하다고 생각했는데 만져보니 뭉친 근육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짜로 웃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되는 거 같다라고 생각하며 예술의 전당을 나섰다. 웃고 싶을 때만 웃어야지. 이런 다짐도 해보고.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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