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과 삶 그 경계선 사이에서 [도서]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삶을 생각하는 일이다” -조수경 작가-
글 입력 2021.02.1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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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책을 고르는 기준은 매우 관대하다. 이전에 재밌게 읽었던 작가의 책, 표지가 예쁜 책, 유명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 또는 누군가가 추천하는 책. 정말이지 책을 고름에 있어서는 크게 편식한 적이 없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익명의 누군가가 추천해준 책을 우연한 기회로 읽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우연이 내가 죽음에 대해 고찰해 볼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죽음. 단어만 봐도 괜히 음침하고 우울한 느낌이 든다. 좋은 것만 봐도 모자란 인생에 굳이 부정적인 단어까지 우리가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 할까. 굳이 네/아니오 로 대답을 해야 한다면 나의 대답은 언제나 ‘네’이다.

 

실제로 조수경 작가는 매년 유서를 업데이트 한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로써는 생각도 못 할, 아니 그런 짓은 부정 탄다며 엄두도 못 낼 행동을 해오며 꾸준히 죽음과 삶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왔다. 나 역시 이 사실에 대해 꽤나 놀란 편이다. 작가는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았느냐'에 초점을 두고, 매년 유서를 통해 죽음에 대해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 만큼 책에서도 죽음에 대한 다방면의 생각들이 표출되었다.

 

뒤에 나오는 글들을 읽기에 앞서, 미리 한 가지 이 의견을 피력하고 싶다. 죽음과 관련된 몇몇 다른 책들도 읽어봤지만, 정말이지 난 아직도 명쾌한 정답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러니까, 죽는 것만이 최고의 처방이 되는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정말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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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서는 한국에 존엄사가 인정되면서 인간의 안락사를 도와주는 센터가 전국 각지에 들어선다. 주인공 서우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말 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 아이로, 서우가 센터에 입소하게 되면서 몇 개월간 일어나는 변화와 성장을 다룬 이야기이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서우의 현재 상황, 2부에서는 서우가 센터에 입소하는 순간부터 자신도 잊어버린 우울증의 계기를 발견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3부에서는 죽음과 삶에 대한 서우의 급격한 감정 변화를 다뤘고, 마지막 4부에서는 서우의 최종선택과 죽음과 삶의 관계가 나온다.

 


'고통의 정도에는 표준이라는 게 없는 거야. 타인의 고통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고.' -29p
 

 

고통의 정도에는 표준이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한 채 타인의 고통에 대해 자신만의 진단을 내리곤 한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힘들어’, ‘넌 너무 예민해서 탈이야', '긍정적인 생각을 좀 해봐'. 이것들 모두 너무나도 익숙한 말들이 아닌가.

 

마음의 고통도 외상처럼 눈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없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점수를 매기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그냥 각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정도를 뇌가 알아서 수치로 표시해주는 기술이 발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생긴다.

 

계단에서 굴러 무릎에 피가 철철 나는 아이와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동시에 자신의 고통을 드러낸다면, 아마 사람들은 모두 전자의 손에 연고를 쥐어줄 것이다. 아, 물론 후자에게도 무언가를 주기는 한다. 죄인이라는 이름. 동정어린 시선. 한심한 눈빛. 차라리 마음의 고통도 겉으로 드러났더라면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에게 조금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을까.

 

 
‘죄가 아니다. 아무 잘못 없다. 그저 마음이 아픈 것뿐이다.’ -103p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마음의 병도 흔해 빠진 감기처럼 단순히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질병으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 마음이 아픈 것을 내색하는 것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것도, 주변 사람에게서 해답을 찾는 것도 전부 자연스러운 행동에 그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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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신이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더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을까? 힘들게 버티고 버티다가 포기한 사람들을 지옥 불에 떨어트리는 신은 이 세상에 없을 거다.’ -104p
 

 

저마다 삶의 무게는 다르다. 본인이 느끼는 삶의 무게를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 내 위에 얹어진 무게로 인해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때, 그때 우리는 간신히 쥐고 있던 삶의 끈을 놓으려 한다. 그러니까, 내가 버틴다고 버텼는데 달라지는 게 없어서, 더 나아지려고 노력 하는데 그게 더 힘들어서, 우울이 나를 갉아 먹어 온전한 내가 더는 존재하지가 않아서. 그래서 포기를 하려는 것뿐이다.

 

아직까지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이 알 수 없는 끈을 놓으려 한 적도, 놓을 뻔 했던 적도 없다. 그래서 책 속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를 완벽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너의 의견을 존중 한다’이다.

 

앞서 말했듯, 책을 읽고 나서 여러 상념들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결론은 ‘모르겠다’이다. 그러니 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오랜 고심 끝에 명확한 결론이 지어져 확신에 찬 행동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 난 정말로 모르겠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고 오로지 너의 선택을 존중하겠다. 그러나 한낱 이기적인 인간인지라 나를 좀 더 우선시에 두고 싶다. 누군가 내 앞에서 떠나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나는 꽤 오랫동안 고통스러울 것 같다. 그러니 이것은 철저히 나를 위한 행동이라 치부하고 나에게 질책을 해도 좋으니, 난 나를 위해서라도 삶의 끈을 놓으려는 자의 손을 조용히 다시 한 번 꽉 붙잡고 싶다.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달라고.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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