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망칠 곳이 있다는 건 [여행]

사시사철 늘푸른 고창
글 입력 2021.02.1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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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창은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대학 생활에서 얻게 된 하나의 도피처라고 할 수 있겠다. 고창을 처음 방문한 건 2019년 여름이었다. 풍물 동아리 부원이었던 나는 방학 중 필수 활동으로 고창에서 고창농악 전수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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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한 고창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면서도 고즈넉했다. 전수관이 생각보다 시내에서 훨씬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전수관 앞은 녹음과 자연으로 가득했다. 낯선 장소에서 일주일 간 전수를 받는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수업이 끝난 후 밖에서 맞는 선선한 여름 공기, 고개를 들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별들은 나를 감성에 젖게 했다.


일주일 간의 전수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때면, 그 평화로웠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함께 풍물을 배우던 사람들과 그새 정이 들었음을 느꼈고 어딘가 공허하면서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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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그리고 2020년 여름에도 어김없이 나는 고창을 찾았다. 학기 중에 겪었던 스트레스와 나도 모르게 조금씩 쌓여왔던 우울감, 그리고 도시에서 느끼는 외로움에서 도망치듯 그렇게 말이다. 언제 그렇게 낯설어했냐는듯, 전수관에 도착하자마자 내 집을 찾은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 시간에는 왠지 고창에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이번에도 고창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지만 여유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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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관에서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부지런하게 생활해야 했고, 악기를 배우느라 바빴다. 몸은 쉴 틈 없이 바빴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여유로웠다.

 

아침, 점심에는 그 날 배우는 악기에 몰두했고, 다른 것들은 떠올리지 않았다. 내 움직임과 동작에 온전히 몰입하고, 내 가락에만 귀를 기울였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평소에 안고 있던 고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나에겐 풍물과 고창이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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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후, 식사를 하고 우리는 고창의 자연을 만끽했다. 고창의 일몰, 푸른 자연, 높고 맑은 하늘, 수많은 별들을 보면 그 순간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되고, 행복한 지금의 우리를 사랑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덥잖은 이야기로 가득한 그 밤은,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고, 그 기억들은 오래도록 남아 그 계절을 장식한다.

 

 

 

여름 밤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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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에서는 고창농악 이수자 분들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우리에게 풍물을 전수해주시는 분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수자 분들이 땀 흘려가며 준비하신 공연을 볼 때면 '공연'이 정말로 가치 있는 것임을 다시금 느낀다. 땀과 눈물로 가득했을 그 시간들을 하나의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연희자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벅차오름을 느낀다. 공연을 할 때, 연희자들의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 시원섭섭해 보이는 표정을 볼 때면, 공연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 짐작이 된다. 고창에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노력과 연습, 그리고 열정이 모여 하나의 공연이 탄생한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다.

 

공연이 끝난 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왜 우냐는 반응이었지만, 이 눈물은 이수자분들의 열정, 그 분들의 노력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연희자와 관객이 하나됨을 느꼈기에 나온 눈물이었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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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에서 사람들과 악기를 치며, 눈을 마주칠 때 나는 '또 다른 나'를 마주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나는 풍물을 할 때면,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 순간에 집중하며, 나와 함께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나 또한 더 열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된다.


서울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들'에만 몰두하여, 옆을 보지 못했던 내가, 고창을 찾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마운 존재들'과 눈을 마주치고 귀를 기울인다. 쉼 없이 달리는 게 익숙한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 '잠시 멈추고 주위를 살피는 경험'을 고창에서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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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에는 무려 2주를 고창에서 보냈다. 그 2주동안 나는 원없이 별을 보았고, 사람을 만났고, 그 시간을 즐겼다. 이제는 공식적인 동아리 활동이 끝났지만만, 나는 어김없이 고창으로 도망칠 것이다.

 

나의 청춘을 즐기기 위해서, 나와 풍물과 고창에 오롯이 몰두하기 위해서.

 

 

[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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