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어렵지 않은 논문 읽기, '하위대중의 형이상학' [문학]

심청전은 그저 어린이를 위한 동화일 뿐일까?
글 입력 2021.02.17 04: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논문은 어렵게 느껴진다. 가볍게 펼쳐볼 수 있는 책과 달리, 일반적으로는 시도조차 두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학생이라면, 혹은 논문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해주고 싶은 논문이 있다. 바로, '「구소설의 서사가 근대의 시간을 만날 때 - 하위대중의 형이상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얼핏 제목만 들어서는 어렵게 느껴지나 논문은 생각보다는 쉽게 읽히고, 상당히 재밌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소설, 그 중 심청전은 단순히 하층민을 위한 동화일 뿐일까? 혹은, 그보다 더 깊은 형이상학적인 뜻을 담고 있을까?


이 밑으로는 논문을 읽은 후의 감상이 이어질 예정이니, 혹시라도 논문을 읽어볼 예정인 사람들은 논문을 먼저 읽고 다음을 읽어봐도 좋겠다.

 

*


논문은 분명히 대중의 독서를 주도했음에도, 학계에서 제대로 검토되지 못했던 구소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분명 독물(讀物)을 배제시키지 말라고 배웠지만, 그것을 논문으로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심청전』과 『춘향전』이 『무정』과 『만세전』과 같은 시대의 소설이라니, 새삼 낯설어진다. 심청전과 춘향전은 그저 동화책으로 읽었고, 무정과 만세전은 교과서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그 중에서도 특히 자살은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분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형법에는 자살방조죄를 엄연한 범죄행위로 규제하고 있다. 자발적 안락사의 허용여부는 아직도 나오는 토론의 단골 주제이며, 윤리 교과서에서는 헤겔이 자살에 찬성하는 부분을 제외하기도 했다. 이렇듯 현재에도 자살에 관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하물며 과거에는 어땠을까?


물론 난 알 수가 없다. 그 시절에 살아본 것도 아니고, 자료도 없고, 배경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심청전의 폭발적인 인기를 봤을 때, 또 심청의 죽음을 여타의 것과는 다른 ‘목적화된 죽음’이자 ‘죽음을 통해 가능한 것을 찾는 것’ 이자, ‘죽음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자살로 여기는 이러한 논문을 봤을 때, 적어도 그때는 지금처럼 자살을 터부시하진 않았겠거니, 짐작해본다.


나에게 심청은 기껏해야 착하게 살다 결국엔 신분상승한 수 많은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심청이 효녀인지 아닌지 토론하고, 중·고등학교때는 불교, 무속, 신화, 전설이 복합적으로 담겨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이제 와서, 심청의 죽음을 다각도로 바라보며 그 의미를 찾고, 근대소설과 비교한다고? 흥미롭고 재밌다. 이제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같은 소설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넘어 전혀 다른 상반된 해석이 나오는 것을, 누군가는 이현령비현령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여러 의견을 통해 새로운 시각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더군다나 형이상학은, 『도덕 형이상학 정초』에서나 나올법한, 철학적이고 사변적이며 서구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하위소설이라 무시 받던 구소설-심청전-과 엮어냈다는 게 신기했다. 수업시간에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방의 것을 자처해야했다고 배웠다. 논문은, 구소설은 전통소설의 형식을 빌려왔는데, 근대성이나 모더니티를 연구자들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문학의 생존은 단순히 작품성에 달려있는 것도, 독자들의 선택 -자본주의- 에 달려있는 것도 아님을 배운다. 이제껏 운 좋게 살아남은 작품들만 읽은 건지, 사람들에게 읽힌 작품들이 살아남은 건지, 선후관계나 인과관계가 헷갈리게 됐다.


무언가를 배움으로써 새로운 지식체계가 기존의 지식체계와 합쳐지며 굳건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마저 흐트러트린다면, 규범적 지식으로써 그건 제 할 일을 했다고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의 해체과정은 또 다른 지식을 건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가진 지식이란게 너무 보잘 것 없던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물론 논문은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나와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예 도외시 해야할 것은 아니다. 심청전은 누구나가 다 아는 소설이다. 언젠가 논문을 한 번 읽어보려고 했다면, 논문을 읽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면, 지금 이 논문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참고문헌: 한기형, 「구소설의 서사가 근대의 시간을 만날 때 - 하위대중의 형이상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족문학사연구』67, 2018


 

에디터 안우빈.jpg

 

 

[안우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