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벌새' - 은희는 정말 감자전을 좋아했을까 [영화]

<벌새(2019)>, 김보라 감독
글 입력 2021.02.1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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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겁지겁 감자전을 먹어 치우던 은희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은희야, 차 마시면서 천천히 먹자. 과정을 음미하는 법을 알아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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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는 항상 불안해하며,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좋아하는 감자전을 먹을 때를 때마저, 그렇게 어떤 시간도 음미하지 못하는 은희가 안타까웠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해줄 유일한 존재 '영지'는 이미 은희 곁에 없다. 나는 영지 선생님이 되어 은희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우롱차를 한 잔 따라주고 싶었다. 체하지 않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처음으로 <벌새(2019)>를 보았을 때, '감자전' 장면이 왜 들어갔는지에 대해 몹시 궁금했다. 극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되는 씬은 분명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은희가 홀로 감자전을 급하게 뜯어먹는 이 단순한 장면이 내게 짙은 잔상으로 남았다. 그러나 반 년쯤 지나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이 작품에서 '감자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은희에 대한 가족의 태도



보통 '집밥'은 가족의 사랑을 의미하는 소재로 쓰인다. 갓 지은 따스한 밥, 보글보글 끓어 오르는 찌개의 구수한 냄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선구이. 본래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우리 한국인들은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따뜻한 음식으로부터 온정을 느낀다.

 

그러나 은희가 홀로 감자전을 먹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이 위안을 얻거나 흐뭇한 미소를 짓지는 않는다. 어머니께서 직접 요리하신 부침개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인데도, 이 장면은 '집밥'의 다정한 의미로서 다가오지 않는다. 다 식어버린 감자전은 사랑이 느껴지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 감자전은 은희의 허기를 온전히 채워주지 못한다. 편의점의 즉석식품처럼, 맛은 좋을지 몰라도 포만감이 없다. 그저 '어느 정도' 맛있기에, 익숙하기에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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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에게 있어서 가족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은희의 식구들은 전반적으로 그녀에게 무심하다. 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 폭력을 일삼는 오빠 때문에 은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불안정하다. 가족이기에 서로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매일 상처를 주고받는 일상에 더 익숙하다.

 

(은희 부모님의 부부 싸움 다음 날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몸을 다치게 했을 정도로 큰 부부 싸움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부모님은 아무렇지 않게 TV를 보며 함께 웃는다. 은희는 당황하면서도 곧 이를 받아들인다. '가족이니까'라는 떨떠름한 이유에서 말이다.)

 

 

 

두 번째, 관계에 대한 은희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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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는 감자전을 먹을 때에 있어서도, 소중한 관계를 대할 때에 있어서도 성급한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허겁지겁 나아가려고만 한다. 그렇게 지탱할 수 있는 관계를 좇던 은희의 '헌신적인 노력'은 남자친구의 바람으로, 그리고 자신을 동경한다던 소녀의 변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특히 후배 '유리'가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라고 말하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가뜩이나 위태롭던 은희가 느꼈을 상실감을, 관객이 효과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대사이다.

 

*

 

구조적으로 볼 때, <벌새>는 오롯이 '은희'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영화이다. 인물들의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간에) 은희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관객은 은희의 입장에서 영화 속 현실을 마주한다. 보통 이런 시점의 영화들은 그 주인공에게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며, 이를 통해 주인공의 행위에 설득력이 부연된다.

 

그러나 <벌새>는 조금 특별하다. 이 영화는 은희의 시점에서 성장 과정을 다루면서도 때로는 미성숙함을 부각하며, 위태로운 은희의 상태를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상기시켜준다. 저항의 의미도 모른 채 부딪히는 은희의 처연한 날갯짓을 보고만 있으라는 듯,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에서 한 발짝 벗어나 은희의 정서를 지켜보도록 만든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은희를 드러내는 씬이 '극적인 상황'에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김보라 감독은 주요 사건의 사이사이, 관객들이 잠시 숨을 돌리는 틈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은희를 연출했다. 어른 흉내를 내듯 친구와 후배들 앞에서 담배를 물어 보는 장면, 친구 '수희'와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 특히, 앞에서 길게 언급한 '감자전 장면'을 통해서는 은희의 세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은희의 세상은 폭력, 억압,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을 결코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대 모든 '은희들'의 아픔을 담담하게 관조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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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은희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 때문일까? 영화가 끝나고 나니 '영지'의 입장에서 '은희'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영지라는 인물은 신비주의적일 정도로 배경 설명이 친절하지 않아서, 관객들이 쉽게 동화되기 힘든 인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리고 영화를 본 주위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영지 선생님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벌새>가 은희를 담아내는 애정 어린 방식이 그대로 투영된 인물이 영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아,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 '영지'의 대사

 

 

영화 속 '영지'라는 인물만이 은희의 성장통을 보듬어 주며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까지 진정된다. 괴로워하는 은희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관객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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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감독은 "모두가 자기 안에 '이상하고 예민한 은희들'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문득 '모두가 자기 안에 '영지'를 갖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희'라는 미성숙한 자아가 우리 안에 존재하기에, 우리는 더더욱 '영지'가 되고 싶었던 것일 테다. 우리 안의 영지를 꺼내어 우리 안의 은희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일 테다.


그제서야 영화 <벌새>가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지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 영화는 영지가 은희를 위로하던 그 방식으로, 우리의 내면이 스스로를 보듬을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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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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