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웃음의 패러독스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글 입력 2021.02.1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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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그냥 웃어버리자, 한번 웃고 털어버리자. 어떤 일에 대해 초연해지고 더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가 하면 행복하고 기쁜 웃음도 있다. 웃음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음이 새삼 느껴진다. 나는 요즘 어떤 때에 웃고 울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기쁘고 행복하지 않아도 여러 웃음을 내비치고 삼켰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울음보다는 웃음이 더 건강하고, 힘이 있으며 긍정적이다. 감정을 털어내기 위한 건강한 울음도 있지만 좋지 않은 일을 웃어넘기고, 기쁜 일에 웃을 줄 아는 것은 한층 더 여유롭고 성숙한 감성을 가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 웃을 수는 없어도, 웃음이 생각보다 고차원의 감정표현임을 알고 나면 일상과 나 사이에 성찰할 수 있는 거리가 벌어지고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날 것이다.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 5, 6관에서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전이 열린다.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유에민쥔의 대표작부터 최신작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의 기획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총감독 및 부산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낸 윤재갑 상하이 하우 아트 뮤지엄(HOW Art Museum) 관장이 맡았다.

 

유에민쥔은 자신을 모델로 삼아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한 채 실없이 웃는 얼굴의 인물을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활짝 벌리며 웃지만, 이것은 작가의 자조적 웃음이자 절망적인 사회를 허무와 풍자로 표현한 역설적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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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규모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전시는 시그니처 얼굴을 담는 유화작품부터 대규모 조형작품, 최근 선보이고 있는 꽃 형상의 얼굴을 그리는 작품까지, 유에민쥔의 예술세계 전반을 아우른다.

 

또, 도예가/숙명여대 도예과 교수 최지만과 백자 콜라보레이션을, 판화 공방 P.K Studio와 전통 판화기법으로 제작한 판화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여 전시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웃음의 패러독스: 슬픈 웃음


 

슬픈 웃음이라면 필자는 먼저 자조적인 웃음이 떠오른다. 분노하고 슬퍼해야 할 일에 아무런 힘이 없어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포기와 해탈로 웃음 짓는 사람.

 

작가는 이 웃음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표정과 몸짓을 과장하여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낸다. 찡그린 미간에 온 세상의 감정을 담은 듯해서, 전시장을 들어서서 마주친 첫 조각작품에 시선이 멈추었다.

 

실제로 작품을 마주하자 도판으로 봤을 때보다 감정이 훨씬 더 풍부하게 느껴졌다.

 

 

__EXPRESSION__ in Eyes, Oil on Canvas 240x200cm 2013 ⓒYue Minjun 2020.jpg

__EXPRESSION__ in Eyes, Oil on Canvas 240x200cm 2013 ⓒYue Minjun 2020

 

 

화면이나 책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 때문인지, 내가 좀 더 감상적이었던 때문인지 이전보다 작가가 말하는 웃음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과장된 어색한 웃음이 아니라, 같은 표정 안에 담은 시대상과 분노와 슬픔, 자유를 향한 의지가 뚜렷하게 보였다.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직역하여 표현한 것보다 강한 이끌림이 있었다.


 

 

한 시대를 웃다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나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 유에민쥔

 

 

중국의 사회주의 속에 자본주의가 스며들면서 정치, 사회, 문화적 혼란이 크게 찾아왔다.

 

사회주의가 정치적으로 가장 완전하다 하지만 부국이 되기를 꿈꾸었고 자유를 열망하던 이들에게 중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세계화가 찾아오고 중국이 경제를 개방하며 자본주의 경제부국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그곳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투표를 하지 않는 부자유의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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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주의로 사람들은 획일화되고 세계화 속에서 자신이 가진 자본으로 사회는 계급화된다. 개개인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사람인지 점차 잃어가며 작가의 말에 의하면 ‘타자에 의지하여서만 주체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굉장히 두렵고 염려되는 일이다. 전시장에서 작가의 이 글을 읽자 언젠가 보았던 sf 영화에서 감정이 지워진 사람들로 가득한 미래사회를 본 것 같은 기시감마저 들었다. 스스로 주체임을 인식하지 못하며 타자를 보고 자신의 생각과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은 혼자 힘으로는 사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명령으로만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게 되는 미래란 결코 긍정적이지 않으며, 비판의 대상이다. 작가는 그 비판의 매개로 또 한 번 ‘웃음’을 선택했다.


 

 

사의 찬미, 그리고 일소개춘



또 다른 의미는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니 지금을 마음껏 즐기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이는 노장사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 순환하는 곳, 꿈고 환상이 가득하며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곳을 꿈꾸기에 세상 모든 것들은 웃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슬픔도 영원한 슬픔이 아니고, 아픔도 아픔으로만 남지 않는다. 현실이 환상이고 환상이 현실이니 한 번 웃으면 그만이다.

 

 

Gaze, Oil on Canvas 200x240cm 2012 ⓒYue Minjun 2020.jpg

Gaze, Oil on Canvas 200x240cm 2012 ⓒYue Minjun 2020

 

 

그러나 삶을 아무런 의지 없이 그저 웃고만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행복하게 웃으며 살되 나는 나로 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주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의 웃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 깨우쳐야 삶도 죽음도 의미가 있다.

 

자기복제를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니냐는 작가에 대한 비판에 어느 정도 수긍했던 나였지만 깨닫는 바가 많은 전시였다. 과장과 반복된 웃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 또 그의 작품을 보게 된다면 이번보다는 더 다각도로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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