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시대에 시를 읽을 당신을 위한 지침서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2.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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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근 우리나라 문단에서 발표되고 있는 시들을 다뤄보려고 한다. 최근 발표된 한국 단편소설을 주로 소개해왔던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나는 소설만큼 시를 좋아하고 자주 접하는데, 시는 소설만큼 타인에게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소설을 누구에게 추천한다고 하면 아마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어떤 장르에 속하고 어떠한 지배적인 분위기가 있는지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뚜렷한 내용이나 줄거리가 없다. 하나의 시 속에서 각각의 소재가 살아 움직일 뿐이지 완결된 내용으로 시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런가 하면 시에 세부적인 장르가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 평론가들은 발표된 시들을 유형화하는 작업을 하여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이 역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일 때가 많다. 결국 시를 완성하는 것은 하나의 분위기, ‘콘셉트’이고, 설명하기 모호한 그 감각을 글에서 찾을 때 시를 읽는 즐거움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 글에서는 나의 주관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오늘날 발표되고 있는 시들의 분위기나 콘셉트를 가볍게나마 설명하고자 한다.


이 글을 쓰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시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안내하기 위해서이다. 시에 새롭게 입문하고 싶어 하는 뉴비들에게 시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가장 단순하게는 서점의 시집 코너에 비치된 시집들을 읽어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시를 찾아보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 그 방법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내가 활용하고 있는 방법은 웹진이나 문예지를 통해 여러 시인들이 발표한 한두 개의 작품을 읽어보는 방식인데, 이 방식을 소개하여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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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문예지와 웹진으로 시를 읽는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그 이후에 주목할 만한 시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예지는 문학 출판사에서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잡지이고, 이곳에는 시집이나 소설책으로 문학작품이 출판되기 이전에 한국 문단의 최신작들이 최초로 발표되는 장소이다.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소수의 중견 작가들은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신작을 바로 출판물로 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문예지에서 자신의 작품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다. 문예지로 시를 읽는 것의 장점은 다양한 시인들의 작품들 한두 편씩을 몰아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시인들은 서로 다른 스타일의 시를 선보인다. 이중에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여 해당 시인들의 다른 작품을 서점이나 다른 문예지에서 찾아서 보는 방식으로 시작품을 골라 읽을 수 있다. 계간지로는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 《자음과모음》, 《실천문학》 등이 있고 월간지로는 《문학사상》, 《현대문학》, 격월간지로는 《릿터》가 있다.


웹진은 지면으로 된 문예지들을 읽는 것보다 조금 더 접근성이 좋은 방법이다. 문예지들을 실물로 보려면 구독을 해서 받아서 보거나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이 번거롭다면 인터넷으로 발표되는 문예지인 웹진을 통해서 최근 발표되는 시들을 읽을 수 있다. 정부 혹은 지자체 산하의 문화예술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개설된 이들 웹진들은 무료로 접근할 수 있으며 매달 새로운 시와 소설, 문학평론들을 발표한다. 《웹진비유》와 《문장웹진》이 대표적이므로 이들을 활용할 수 있다. 한편 일부 문예지들은 내용의 일부를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공개하기도 한다. 창비에서 간행하는 《문학3》이 그러한 경우이다. 이들 매체를 잘 활용하여 서점에서 직접 시집을 일일이 찾아보지 않고도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예지와 웹진은 시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나는 이들을 통해 자신의 시 취향을 알아가고 자신의 좋아하는 시인의 작품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최근 한국 문단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작가와 출판사, 독자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활동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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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작가들의 시집을 추천해보려 한다. 시를 추천하는 것은 역시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취향이 다르고 특히 시에 있어서는 독자들의 취향이 쉽게 유형화되지 않는 것 같다. 본 글에서는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시집들을 소개해보려고 하는데, 아마 내 취향의 시들에서는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비슷한 분위기가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분위기의 시들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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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주,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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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주 작가는 일상적인 감각과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조해주 작가가 그려내는 장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아주 일상적인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표현 속에서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그의 작업은 언어를 섬세하게 선택하여 장면을 완성시키는 데에 있지, 작가의 감정에 독자를 동조시키는 데에 있지 않다.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가 훌륭한 이유는 아주 일상적이고 건조한 언어를 쓰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깊은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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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강,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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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강 작가의 작품은 일상에서 출발하여 상상력의 공간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들은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다. 연기를 뿜는 소독차를 쫓아간 기억이라든가, 포도를 씻어 먹는 기억이라든가 하는 것들. 그런데 그녀의 표현 속에서 이러한 경험들이 아주 이질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의 공간에서 발견한 작은 감각을 낯설게 만들고 상상력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느낌 때문에 책장을 덮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다. 한편 숨겨진 운율들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 리듬감이 웅웅 울리는 것만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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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사랑을 위한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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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작가는 2010년대의 최고의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문단에서 핫한 작가다. 오늘날의 시에 입문한다고 한다면 황인찬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다양한 분위기들이 시에 담겨 있는데, 웅장하고 숭고한 것들도 있고, 사소한 장난처럼 느껴지는 가벼운 시들도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시인인 것 같다. 다양한 비유나 수사법도 쓰지만 시 자체는 엄청 간결해서 “시는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다른 시집들인 『구관조 씻기기』와 『희지의 세계』를 읽어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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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글을 지금 써야만 하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면, 당분간 시에 대해 성의 있게 소개하는 글을 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바빠질 예정이라, 아무래도 좋은 시들을 발굴하는 데에는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어 질 것이다. 공대생으로 살면서 시 창작 수업도 듣고 현대 시 이론도 공부하는 일탈을 범하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시간들이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더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시 평론들도 읽어서 다양한 시들을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할 기반을 닦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새로운 공부를 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 당장의 생각이다.


반드시 한국의 독자들, 한국의 대중문화 소비자들이 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양질의 영상 작품들에 접근하기 쉬운 환경에서 활자를 읽어 내려가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고,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취미를 향유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교육과정의 문학에서 다루는 것과 달리 오늘날의 시는 아주 마니악한 예술 장르일 수밖에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시를 통해 자신의 숨겨진 취향을 발견하고 새로운 감각과 감성을 접하며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 읽기의 새로운 매력을 경험하고픈 뉴비들을 위해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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