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족이라는 사람들 - 길버트 그레이프 [영화]

글 입력 2021.02.1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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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족이 있다. 하지만 가족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인생의 첫 순간부터 함께한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선택해 함께 하는 인연이 아니다. 서로 알 수는 있어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다가도 다투고, 미워하다가도 용서한다. 이렇듯 가족에 대한 감정은 굉장히 다양하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는 이러한 감정의 폭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길버트 포스터.jpg

 

 

1993년 개봉한 이 영화는 지금은 세계적인 배우가 된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공동으로 출연한 유일한 작품이다. 미국의 작은 마을 엔도라에서 길버트는 남들과 조금 다른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자살한 아빠와 그 충격으로 비만이 되어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엄마, 누나 에이미와 사춘기를 겪는 동생 엘렌, 그리고 눈을 뗄 수 없는 지적동애인 동생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의 가족이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와 걸핏하면 사고를 치는 어니, 초고도비만으로 마을의 놀림거리가 된 엄마는 길버트의 삶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가족을 벗어나고 싶지만 차마 떠날 수 없는 길버트는 그저 일하고 가족을 챙기며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막막한 삶의 유일한 탈출구는 유부녀와의 사랑이다.

 

한편, 마을을 지나가던 캠핑족 베키는 차가 망가져 일주일 동안 마을에 머무르게 된다. 어느 날 가스탱크에 올라간 어니를 살뜰히 챙기는 길버트를 우연히 보게 되며 베키는 길버트에 대한 호감을 느낀다. 답답한 일상에 지친 길버트도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녀에게 끌리게 된다.

 

 

 

1. 길버트와 어니


 

어니와 길버트.jpg

 

 

어니는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 사회적으로 부적절하거나 위험한 언행을 할 때 옆에서 주의를 시킬 사람이 필요하다. 같은 성별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유독 길버트의 말을 잘 따랐기 때문에 어니를 챙기는 역할은 주로 길버트가 맡는다. 가족이 타이르면 대부분 말을 듣지만, 유독 어니가 못 고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걸핏하면 집 앞마당에 있는 나무를 오르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가스탱크에 오른다. 특히 가스탱크는 떨어지면 목숨을 잃을 정도의 높이라 경찰과 구조대가 출동해 어니를 내려보낸다. 사고는 어니가 치지만 뒷수습은 길버트의 몫이다. 경찰에게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한눈을 판 사이 없어진 어니를 찾으러 사방팔방을 뛰어다닌다.


길버트의 삶은 어니를 보조하는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 어니가 껴있고, 일할 때도 어니와 함께 한다. 친구들과 일터의 사람들은 길버트 옆에 어니가 있는 것이 익숙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길버트의 시선은 항상 그에게 향한다. 하지만 언제나 어니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는 없다. 배달을 나가거나 누군가와 대화하는, 그런 찰나의 순간에 어니는 종종 사고를 친다.


가족은 길버트만을 나무란다. 아픈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하지 않겠느냐며 길버트를 매섭게 몰아붙인다. 억울하지만 어니를 탓할 수도 없는 길버트. 말할 수 없는 울분만 가슴 속에 쌓이고 있다. 길버트의 삶은 자신이 아닌 어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하는 삶이라니. 영화 초반 길버트는 어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어니에 대한 그의 심정이 잘 표현된 말이다.


“의사는 어니가 10살을 못 넘긴다고 했지만, 막상 10살이 되자 이제 의사들은...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가 살아남길 바라다가도, 어떨 땐 그 반대였으면 한다."


답답함이 쌓여가던 어느 날, 결국 길버트의 화가 폭발하고 만다. 어니의 18번째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니는 온종일 길버트의 화를 돋운다. 에이미가 열심히 만든 케이크를 엎고, 대신 사온 비싼 케이크마저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게다가 일하던 가게의 사장과 어색한 사이가 되었으며, 샤워하라는 말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집안을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결국, 지금까지의 분노가 쌓인 길버트는 어니를 때리고 집을 뛰쳐나간다.


무작정 차에 올라 마을을 벗어난 길버트. 차분히 머리를 식힌다. 어니에게 미안하면서도 바로 돌아가기는 망설여진다. 지금껏 자신이 되고자 했던 ‘착한 사람’으로 행동하지 못한 자책감과 함께, 돌아가는 순간 반복될 현실의 무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그토록 바라던 탈출의 기회이지 않을까. 망설이던 길버트는 우선 베키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속상한 어니를 달래는 베키를 보고는 멀리서 그들을 바라본다.

 


호수.PNG

 

 

베키는 어니를 데리고 집 근처의 물가로 향한다. 물을 무서워하는 어니를 향해 들어오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말하는 베키. 처음에는 격렬하게 반대하던 어니였지만, 시간을 가지고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베키 덕분에 용기를 내리고 물가로 뛰어내린다.

 

이 모습을 보고 길버트는 잔잔한 충격을 받는다. 절대로 달라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어니가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물에 빠지다니. 지금껏 어니를 너무 어리다고 생각한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결국, 길버트는 어니의 생일날 그에게 찾아가 사과를 건네고 둘은 화해를 한다.


화해했다고 해서 둘 사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어니는 사고를 칠 테고, 길버트는 어니를 살피겠지. 그렇지만 길버트에게 있어 어니의 의미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헌신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에서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증명해 보인 어니. 지금까지 해온 노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조금은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된다는 여유를 준 어니의 변화는 분명 길버트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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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의 관계를 보면서 드라마 ‘싸이코지만 괜찮아’의 주인공 문강태(김수현)와 문상태(오정세) 형제가 겹쳐 보였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형 상태를 챙기기 위해 동생 강태 역시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산다. 끝없어 보이는 희생에 지친 강태에게 상태는 외친다. 상태의 삶은 상태의 거라고. 자신은 네가 보살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전한다. 강태 역시 형을 의지하고 있던 자신을 깨닫고 둘은 각자의 길을 응원하게 된다.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된 관계는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다. 길버트와 어니 역시 그것을 깨닫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 것은 아닐까.

 

 


2. 길버트와 엄마


 

길버트의 기억 속에는 쾌활한 미인이었던 엄마의 모습이 선명히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비만 때문에 지팡이 없이는 한 발자국 떼기도 힘든 몸이 되었다. 그러던 엄마가 스스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게 된다. 어김없이 가스탱크에 올라갔다가 경찰서에 구금된 어니를 빼내기 위해서다. 1층 소파에서 2층 침대로 이동하는 것마저 지칠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엄마는 경찰서에서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어니를 찾는다. 그 위용에 놀란 경찰서장은 별말 없이 어니를 그들에게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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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를 챙겨서 차에 타려는데 마을 사람들이 차 앞에 웅성대며 모여 있다. 소문으로만 듣던 엄마의 모습을 직접 보고 조롱하기 위해서다. 어니를 돌려달라며 크게 외치던 박력은 증발한 듯이 엄마는 다시 위축되고 만다. 그저 고개를 떨군 채 차에 탈 뿐이다. 몸이 망가지고 난 뒤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은 엄마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결국, 며칠 뒤에 열린 어니의 생일파티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이 모습을 본 길버트의 마음 역시 착잡해진다. 사실 길버트는 엄마가 마을의 놀림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엄마를 훔쳐보러 집 근처를 맴도는 동네 꼬마들을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편하게 구경시켜 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에게 바뀌길 바란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아빠가 자살로 충격을 받은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가정을 챙기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 예전의 밝고 당당했던 엄마가 그리운 마음이 합쳐져 애증이라는 감정을 안고 있었을지 모른다.

 

어느새 짐이 되어버린 엄마에 대한 조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답답함을 없애려던 게 아니었을까.

 


길버트와 엄마.jpg

 

 

그토록 바라던 어니의 18번째 생일이 끝나자 엄마는 잘 쓰지 않던 2층의 침대로 향한다. 비록 늦은 속도로 올랐더라도 그녀의 이마엔 땀이 가득하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도 엄마는 마음을 먹어야 하는 힘든 일이다. 다른 가족의 격려를 받으며 무사히 침대에 누운 그녀는 길버트에게 말을 건넨다. 지금껏 너희의 고생을 미처 몰랐다며 네가 날 부끄러워하는 건 알고 있다고. 자신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서 놀림감이 되고 싶진 않았다며 사과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엄마는 다음의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잠을 자는 것처럼 말이다.


“넌 나의 갑옷 입은 기사님이야. 희미하게 반짝이면서 타오르는.”


무심한 척했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입었던 엄마, 그리고 가족을 위해 힘든 발걸음을 뗀 엄마의 진심을 듣고 길버트는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게 그렇다. 별거 아닌 행동에 서운하다가도 말 몇 마디에 속상함이 풀리고는 하는.


이윽고 장례식을 위해 시체를 나르려는데, 마을 사람들은 방위군 정도는 와야 하지 않느냐며 여전히 그들을 조롱한다. 엄마를 조롱거리로 보낼 수 없다며 결의한 그들은 필요한 가구를 밖으로 빼낸 채 집에 불을 붙인다. 엄마와 함께 타오르는 그들의 집. 그토록 나가고 싶었던 집을 엄마와 함께 태우는 그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후련했을까 아니면 미련이 남았을까.

 

 

 

3. 길버트와 베키


 

길버트와 베키.jpg

 

 

What's Eating Gilbert Grape, 이 영화의 원제다. 누가 길버트 그레이프를 초조하게 하는가. 어니와 엄마가 길버트로 하여금 자신을 잃어가게 했다면 베키는 그 반대다. 시든 꽃에 물을 주면 활짝 피어나는 것처럼 메말라가던 길버트의 자아를 생기 있게 살려낸다.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크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인 하늘의 광활함, 노을 진 하늘의 다채로운 색깔, 자신만을 위한 소원, 그리고 전부인 것만 같았던 집과 가족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 말이다.

 

“집 안에 있었을 땐 커 보였는데 여기서 보니까 엄청 작아 보여.”


그녀를 통해 길버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갈 용기를 얻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집이 불타오르자, 길버트는 어니와 함께 베키의 캠핑카에 오른다. 집과 가족, 조그만 마을을 벗어나 드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길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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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가 베키를 만나서 다행인 동시에, 만약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길버트는 마을을 떠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길버트는 자신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묵묵히 희생을 감내해왔던 사람이다. 베키는 그에게 너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도록 한다.

 

사실 베키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인물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격려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현실에도 수많은 길버트가 살고 있을 텐데 그들 옆에 그녀 같은 사람이 없다면. 과연 그들은 제 가족과 마을을 떠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을 위한 소모품 정도로 여기며 자조적인 자세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어느 인터뷰에서 ‘가족은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가족만큼 신기한 인연이 또 없다. 서로 뜻이 맞아 친해지는 친구나 지인과 다르게 가족은 선택권이 없다. 그저 태어나보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사람이 묶여 인연을 지속한다. 가족은 복불복이다. 나와 맞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그래서 당연히 다툼도 일어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강제적인 인연은 애정과 원망이 공존하는 기묘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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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한 공동체가 가진 강제성은 구성원에게 괴로움과 동시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지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이름을 알고, 삶을 공유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 기적 같은 확률로 만난 몇 명의 선원이 함께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일은 꽤 낭만적이다.

 

배는 한 번 출항하면 출발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 오직 앞만 보고 움직인다. 어디가 끝일지 도착한 곳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같이 나아갈 뿐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같은 배에 타 지금껏 보아온 것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족은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바다에 비친 윤슬의 아름다움과 거친 파도의 공포, 잔잔한 바다의 정취에 대해.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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