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기합리화의 딜레마 - 박화영 [영화]

글 입력 2021.02.0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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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자기합리화하지 마”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충고는 아주 날카롭고 직설적인 충고이자 때로는 팩폭, 사이다로 여겨진다.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이 자기 합리화라는 단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합리화란 어떤 일을 하고 나서 죄책감 또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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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화영>의 주인공 박화영은 18살의 고등학생으로 자신의 집에서 또래의 가출 청소년들을 먹이고, 재우는 역할을 한다. 집도 제공해 주고 요리도 해주는 그녀는 가출팸 안에서 ‘엄마’로 통한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미정은 아이돌 연습생으로 가출팸의 우두머리 영재와 연애 중이다.

 

겉으로 보기엔 박화영은 가출팸에서 중요한 ‘엄마’이고 일진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가출팸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장난을 치다가도 친구들의 기분이 안 좋아지면 집단 폭행과 잔인한 고문을 당한다. 하루는 미정과 화영이 영재의 심기를 건드리자 영재는 미정의 몫 까지 화영을 때리는 것으로 미정에게 복수한다.

 

하지만 박화영은 집단 폭행을 당하고 나서도 ‘엄마’라는 말에 라면을 끓여와 밥을 만들고 아이들을 향해 쉴 새 없이 “너희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 말한다. 자신의 존재가 친구들에게 필수적이고 베스트 프렌드라며 합리화시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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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이렇게 친구들에게 모든 비위를 맞춰가면서 그들 옆에 남아있는 걸까?

 

영화에서 박화영의 어린 시절이 등장한다. 그녀는 어렸을 적 엄마와 관계가 단절되었고 엄마에게 버림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박화영이 자신의 엄마에게서 진정한 ‘엄마’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친구들에게 따뜻하고 희생하는 진정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애정결핍이라 생각했다. 화영은 겉으로만 친구인 일진들이지만 그들을 정말로 친구라 생각하고 의지한다. 화영에겐 의지할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만이 그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자신이 '엄마'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존재이길 바라는 심리다.

 

그런 와중에 다른 친구들과 달리 같이 여행도 가고 정말 친구처럼 대해주는 미정한테 화영은 정말 마음을 모두 줘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미정은 화영을 친구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계속 드러난다.

 

예를 들면, 영재가 화영과 미정 보고 둘이 싸워보라고 말하자 미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영을 때린다. 그 후에 영재가 자신의 몫까지 화영을 때리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일진 무리 앞에서 자신에게 쪽을 줬다면서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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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팸 아이들은 원조 교제 남성을 모텔로 유인하고 협박해서 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 미정은 원조 교제 남성을 모텔로 유인하지만, 영재를 비롯한 가출팸 아이들이 연락을 받지 않아 오히려 위험에 처한다. 화영은 미정을 구하러 모텔로 들어가고 다행히 미정을 대피시킨다. 하지만 오히려 원조교제남에게 붙잡혀 본인이 강간을 당한다.

 

이후 등장한 영재가 홧김에 남자를 때려서 죽이고 도망을 간다. 뒤늦게 모텔로 돌아온 미정은 화영 보고 “네가 엄마라 했잖아. 친구랬잖아. 엄마가 이런 거 해주는 거 아냐?”라고 말한 뒤 도망간다.

 

결국 화영은 살인죄까지 뒤집어쓴다.

 

*

 

시간이 지나 화영은 유명 아이돌이 된 미정과 재회한다. 화영은 묻는다.

 

 

“은미정. 근데 옛날 때... 니 옛날 때... 엄마. 야 어떻게 생각하냐?"

 

 

그러나 미정에게 화영은 별거 아닌 존재다. 미정은 자신을 구해준 화영에게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미정은 이미 모든 것을 잊었다.

 

 

"엄마? 무슨 엄마?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잘 계셔. 엄마는 무슨 엄마. 너야말로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

 

 

화영은 미정이 타고 가는 버스를 그저 바라만 본다. 하지만 화영은 계속해서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가출한 아이들을 집에서 재우고, 먹이며 그들에게 중요한 존재인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너희들은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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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마땅히 원망해야 할 사람을 원망하지 못하고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멀쩡한 사람들의 눈에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그 사람이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화영이 직면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화영은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었을까?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버림받은 자신의 모습을 회피하는 것보다 직면하는 것이 과연 나은 일일까?


때때로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나 괴로울 때 뇌 자체에서 사실을 망각해 버린다고 한다. 해리성 기억상실, 해리성 인격장애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 동생은 범인으로 형을 지목한다. 그러나 사실 형은 과도로 아버지를 살짝 찔렀을 뿐이고 어머니가 집에 불을 낸 진짜 범인이었다. 동생과 어머니 본인도 끔찍한 사건을 직면하자 사실 자체를 잊고, 과도로 아버지를 찌른 형이 범인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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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는 의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우울해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저는 왜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힘들까요? 저는 왜 매일 축축 처지고 우울한 걸까요? 제가 나약한 걸까요?”


의사는 쉽게 망각하는 사람도 있고 합리화하는 사람이 있듯이, 쉽게 망각하지 못하고 합리화하지 못하고 계속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 답했다. 그리고 그건 뇌의 차이이고 누가 나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며 나를 위로했다.


합리화란 사실을 피하고 거짓을 추구하는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으나 어쩔 때는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해 줄 비상탈출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비상탈출구가 없다면 도망칠 곳이 존재하지 않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난 그런 비상탈출구가, 자기합리화가 꼭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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