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존이 문제가 되는 타임 슬립 [도서/문학]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1979)
글 입력 2021.02.03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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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한 번 뿐이기에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본다. 직접 살아볼 수 없는 삶을 상상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재미가 있을뿐더러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한다. 서사 속의 사건과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시대, 다른 지역, 다른 성 등 나와는 다른 타인의 존재와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특히 SF는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더 많은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성찰로 이어진다.

 

미국의 대표적인 SF 작가인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은 1976년에서 갑작스레 1815년으로 타임 슬립을 하게 된 미국의 흑인 여성 ‘다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지금껏 경험한 타임슬립물은 주인공이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의 혼란한 감정을 주로 다뤘다. 그 인물이 어떻게 그 시대의 제도나 시스템에 적응하고 편입될 수 있었는지는 생략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킨』에서는 시공간을 뛰어넘은 인물의 혼란한 감정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된다. 흑인 여성인 다나에게 1815년의 메릴랜드 주는 노예 제도로 인한 직접적인 생존의 위협이 도사리는 곳이었다. 다나는 시공간을 뛰어넘었다는 충격을 채 느끼기도 전에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다나는 루퍼스라는 백인 소년이 죽을 위험에 처할 때마다 1815년으로 가게 된다. 첫 번째 타임 슬립에서 다나는 강에 빠져 허우적대는 루퍼스를 구한다. 그러나 루퍼스의 아버지는 갑자기 나타난 다나에게 총을 겨누고, 반대로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하자 다시 1976년 집으로 돌아온다. 그 후로 루퍼스가 성장하며 겪는 죽음의 순간마다 다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임 슬립을 하게 되고 매번 루퍼스를 구한다.

 

자신이 왜 1815년으로 오게 되는지, 왜 루퍼스를 구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던 다나는 루퍼스가 자신의 먼 조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루퍼스가 죽으면 자신과 자신의 친척들이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나는 루퍼스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1815년은 다나에게 루퍼스를 구하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곳이다.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 (p.124)

 

 

세 번째 타임 슬립에서 다나는 남편인 케빈과 함께 과거로 향하게 된다. 다나와 달리 케빈은 백인 남성이기 때문에 비교적 그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여긴 굉장히 살기 좋은 시대일 수도 있어. 여기에 머무는 게 얼마나 큰 경험일지 계속 생각하게 돼. 서부로 가서 이 나라의 건설을 지켜보고, 옛 서부 신화가 어느 정도나 사실인지도 보고 말이야.”(p.183)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나 역시 자신은 그 시대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찰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시대에 수월하게 끼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케빈과 달리 다나는 루퍼스의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곳에 적응하는 자신의 모습에 꺼림칙한 감정을 느낀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나는 흑인 노예로서 그곳의 삶에 완전히 순응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 아이들이나……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전에는 몰랐어.”(p.191)라고 고백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때까지 맞거나 강간을 당하고 팔려 가는 그 처절한 광경을 모두 목격한 다나는 그 제도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간접적으로 듣거나 보는 노예 생활이 아닌 생생한 채찍질로, 자신의 몸에서 솟구쳐 오르는 피와 함께 다나는 흑인 노예 사회를 온몸으로 겪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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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는 그 생생한 폭력의 순간들과 다나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욕망과 애증의 감정을 아주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우리는 20세기 후반과 19세기를 오가는 다나의 삶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인종 문제, 젠더 문제, 계급 문제, 세대 간의 문제를 자연스레 성찰하게 된다.

 

무엇보다 『킨』은 재미있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사람들은 나를 ‘SF 작가’라고, 내 소설은 당연히 SF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일 뿐이다. 내가 좋은 이야기를 썼는지 아닌지만 판단받기를 원하는.”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킨』은 독자들을 소설의 세계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하는 ‘좋은 이야기’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담고 있어도 읽히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번 펼치면 도저히 책을 덮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 속에 스며든 버틀러만의 윤리적 상상력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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