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청소하는 예술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미술/전시]

가사노동과 청소 노동, 그리고 예술의 관계
글 입력 2021.02.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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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무료한 이유


 

요즘 집에서 주로 지내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더러워진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설거지를 할 때마다 이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식기세척기를 쓰지 않는 우리 가족은 물컵을 하루에 한 개씩만 쓰거나, 깨끗하게 쓴 접시는 간단하게 헹군 뒤 다시 사용하는 등 설거짓거리 줄이기에 언제나 열심이다. 그런데도 야속하게 쌓여버린 설거짓거리를 보면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느껴지곤 한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나름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애를 쓰는데도 꾸준히 더러워진다. 청소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물인데, 화장실에선 바로 그 물 때문에 물때가 낀다. 여러모로 성가신 화장실 청소지만, 전후 차이만큼은 확실해 보람은 제대로 느껴진다. 반면 방 청소는 현상 유지처럼 느껴져 뿌듯함이 덜하다. 정리정돈의 본질인 ‘제자리에 두기’가 메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현상 유지’가 가사노동을 지루하게 만드는 주범은 아닐까? 가사노동의 목적은 집을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 오직 하나다. 집안 곳곳을 깨끗하게 쓸고 닦는 것, 식단을 구성해 장을 보고 요리를 한 뒤 설거지를 하는 것, 빨래를 하고 개어 제자리에 두는 것.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사노동에는 별다른 보수도, 사회적 인정도 없으며 새로운 비전이나 원대한 목적이 있다고도 보기 힘들다.

  

물리적으로 보통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가정 내에서만 저평가되지 않는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청소라는 업무는 여전히 낮은 임금과 부족한 사회적 인정 등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청소라는 행위에 대한 저평가가 가사노동의 저평가로 이어진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모호하나 이들의 노력, 나아가 가치까지 과소평가되는 현실은 부조리하기 그지없다.

 

 

 

청소하는 예술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오늘날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어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1939년 미국에서 태어나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예술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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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erle Laderman Ukeles, Maintenance Art Tasks performances at the Wadsworth Atheneum, July 20, 1973

 

 

1973년 7월 22일, 유켈리스는 물이 담긴 양동이와 청소도구를 든 채 코네티컷에 위치한 워즈워스 학당 미술관의 입구로 향했다. 그러고는 쪼그려 앉아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입구와 계단을 청소하던 그는 미술관 실내로 들어가 걸레질을 계속했다. 이때 그가 동원한 것은 일반적인 걸레, 손, 심지어는 기저귀 등이었다. 이 퍼포먼스는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인 약 8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건물의 내외부를 깨끗이 닦는 것은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지만 그 행위의 주체가 예술가라는 사실은 이례적이었다.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퍼포먼스로부터 4년 전인 1969년에 유켈리스가 발표한 ‘유지예술 선언’의 일부를 살펴보자.

 

 

Manifesto For Maintenance Art 1969!

 

B. Two basic systems: Development and Maintenance.
The sourball of every revolution: after the revolution, who’s going to pick up the garbage on Monday morning? (...)

B. 두 가지 기본 시스템: 개발과 유지 관리.
모든 혁명의 씁쓸한 맛: 혁명이 일어난 뒤 누가 월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치우겠는가? (...)

 

C. Maintenance is a drag; it takes all the fucking time (lit.)
The mind boggles and chafes at the boredom.
The culture confers lousy status on maintenance jobs = minimum wages,
housewives = no pay.

C. 유지는 귀찮은 일이다. 빌어먹을 시간 전부를 잡아먹는다.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하다.
이 문화는 유지 작업에 대한 대가로 형편없는 지위와 최저 임금을 지급한다.
주부 = 임금 없음.

 

D. Art: Everything I say is Art is Art. Everything I do is Art is Art. “We have no Art, we try to do everything well.” (Balinese saying). (...)

예술: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예술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예술이다. “우리에겐 예술이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잘 해내려고 한다.”(...)

 

I am an artist. I am a woman. I am a wife. I am a mother. (Random order).
I do a hell of a lot of washing, cleaning, cooking, renewing, supporting, preserving, etc. Also, (up to now separately I “do” Art. (...)

나는 예술가다. 나는 여성이다. 나는 아내다. 나는 어머니다. (순서는 무작위)

나는 빨래, 청소, 요리, 보충, 부양, 보존 등을 더럽게 많이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따로 예술을 했다’. (...)

 

Now, I will simply do these maintenance everyday things, and flush them up to consciousness, exhibit them, as Art. (...) and do all these things as public Art activities: I will sweep and wax the floors, dust everything, wash the walls (...)

이제 난 이러한 매일의 유지 활동을 의식에 쏟아붓고 예술로서 전시할 것이다. (...)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공공미술 활동으로 할 것이다: 바닥을 쓸고 왁스칠을 하고, 모든 것을 털고, 벽을 닦고, (...)

 

 

이렇듯 유켈리스는 여성이자 아내, 어머니로서 가정 내에서 수행해야 했던 가사노동을 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그 시작은 유켈리스의 임신이었는데,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수학 중이던 그는 한 교수로부터 더 이상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물론 출산의 과정은 자유로운 신체 활동을 억압하기에 그 과정 동안 일반적인 커리어를 지속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출산한 여성의 책무를 가사노동에 한정 지으려는 뿌리 깊은 편견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이 그의 작업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이후로 유켈리스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미술의 창작 행위나 제도권 미술, 청소 노동과 연결 지어 여러 작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1969년의 선언문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가사노동을 하는 노동자'와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라는 자신의 두 가지 정체성을 분리하지 않으려 했다. 그 배경에는 여성 예술가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한계, 즉 가사노동이라는 과업에 작품활동을 희생시켜야 하는 일반적인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반 세기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가 많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충격적이다. 그래서 여성의 가사노동 문제를 1973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미술계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 작업은 미술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만하다.

 

 

 

가사노동에서 청소 노동까지


 

그런데 그 밖에도 유켈리스의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여성의 가사노동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격상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청소와 요리, 빨래가 결여된 가정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에 가사노동은 극도로 필수적이다. 이때 ‘매우 필수적’이라는 특징은 ‘아주 중요함’으로 번역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가사노동의 존재는 언제나 필연적인 것처럼 전제되고, 결과적으로는 당연한 것처럼 인식된다. 지나치게 필수적인 나머지 누군가가 그 몫을 언제나 묵묵히 다해 오면서 그러한 노동력의 존재 가치는 망각되어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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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erle Laderman Ukeles, Touch Sanatation Performance: "Hand Shake Ritual" with workers of New York City Department of Sanitation, 1977-1980

 

 

그리고 유켈리스는 여성의 가사노동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를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청소 노동에까지 주목하며 유지보수의 가치를 되살리고자 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Touch Sanitation'이라고 이름 붙인 퍼포먼스에서 8,500명의 청소노동자를 만나 악수하고 "뉴욕시를 살아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동 경로를 지도에 표시했으며 사회적으로 사용되는 부정적인 단어들을 바꾸고자 그들과의 대화를 기록했다.

 

이러한 그의 접근 방식은 미국의 철학자 낸시 하트삭을 떠올리게 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세계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반의 저서에서 하트삭은 자본주의가 가부장적 질서로 유지되어 왔고 그러한 역사 속에서 여성은 가사노동에 얽매여 있었다고 보았다. 이때 하트삭의 시각에 따르면,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구조는 남성들이 주로 경험했던 자유 경쟁 시장에서의 교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여성들은 교환 위주로 구축된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들이 경험해 왔던 것은 교환이 아닌 생산과 재생산인데, 이 두 가지는 각각 가사노동(즉각적인 사용을 위한 생산)과 출산(노동력의 재생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트삭은 가사노동을 부수적인 것 혹은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여성의 경험은 남성의 경험과는 달리 보살핌이라는 방식과 깊숙이 연계된다. 따라서 여성의 가사노동은 직접적으로 삶에 필요한 반면 남성의 노동은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에서 단절되고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트삭은 세계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관점에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

 

물론 시대가 바뀐 지금, 이러한 주장이 현재의 상황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다. 여성의 경험과 남성의 경험 사이의 괴리감은 당시처럼 극심하지 않으며, 둘 사이의 차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시도 역시 지금의 시각에서는 고리타분하다. 자본주의 산업 구조에 여성이 동참하는 것도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하트삭과 유켈리스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격상시키려 했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가사노동은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요소이기에, 가사노동의 고귀함을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설득력을 잃기 쉽다.

 

그럼에도 이들의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유효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여전히 가사노동은 대부분의 경우 여성의 몫이며 그 가치 또한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노동으로서의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 배우자의 수입에 의존해 생활하는 가정주부가 가사노동의 고충을 토로하면 '집에서 놀고 먹으면서 불평이 많다'는 식의 비난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직장생활과 마찬가지로 가사노동 역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꼭 해야 할 일이기에, 가사노동의 가치는 더 이상 등한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자신의 문제의식을 여성의 가사노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청소노동까지 확장했다는 점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여성을 옭아매는 의무적인 가사노동을 작업 주제로 삼았지만, 가사노동을 향한 부정적 인식의 시작점을 파헤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냥 지나칠 법한 일상적인 주제에 천착해 사회의 병리를 짚어낼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작은 불편함을 쉽게 지나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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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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