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계선 안팎의 존재들에 대한 질문 - 경계선 [영화]

조금 이상하고 섬뜩한 오드 판타지
글 입력 2021.02.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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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신비감과 모호함에 이끌려서 보게 된 스웨덴 영화 <경계선>. 이 영화는 독특하고, 또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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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릴러 영화 <경계선> 속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트롤’이다. 트롤은 북유럽 신화와 스칸디나비아, 스코틀랜드 전설 속에 등장하는 상상 속 괴물이다.

 

트롤에 해당하는 주인공 티나는 보통의 인간과는 조금 다른 외모를 가진 탓에 타인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못생기거나 추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몇몇 사람들은 사회가 규정한 미의 기준과 거리가 먼 그녀의 생김새에 조롱 섞인 시선을 보낸다. 또 그녀는 생식기에 문제가 있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을 가졌다.

 

그녀의 기형적 외모는 그녀가 인간이 아닌 트롤이라는 이유에서 연원한다. 어느 날 그녀 앞에 나타난 보레라는 남성 역시 트롤이다. 비슷한 외모와 특성을 가진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지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에 있어서 둘은 꽤 많은 차이를 보인다. 티나는 출입국 세관 직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도 있다. 그녀는 동거인인지 남편인지 불분명하지만 남자와 함께 본인 소유의 집에서 거주하고, 병원에 있는 아빠와 연락하며 지낸다. 인간과 다름없는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성장 과정에서 자신을 남들과 조금 다르지만, 그저 염색체에 결함이 있는 못난 인간이라고 정의해왔다. 스스로 트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보레가 이야기해주고 나서다. 또한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사회적이거나 고립되어 지내는 인물은 아니다.

 

보레도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지만, 이웃집에 방문해 집주인의 아이를 보며 귀여워하고 인간들과 별 문제 없이 어울려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구분되는 트롤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지녔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를 적대시한다. 두 사람이 숲에서 누워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그는 티나에게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인간사회에 대한 혐오감을 고백한다. 인간은 자신의 부모님을 정신병원에 가뒀으며, 그들은 기생충처럼 자기가 즐거운 것이면 무엇이든지 써버린다고 말한다.

 

자신이 낳은 히시트라는 아기와 인간이 낳은 아기를 바꿔치기 하고, 바꿔치기한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 역시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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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는 보레와 깊이 교류하며 트롤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를 따라 먹지 않던 벌레를 먹고, 자신의 신체적 독특함이 결점이 아님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나무로 가득한 숲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사랑을 나눈다. 스웨덴 숲속을 신나게 뛰어다니거나 호수 속에서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에서 그들 본연의 모습이 가림없이 표출된다.

 

등장인물이 트롤이라는 이 영화만의 설정은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동시에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인간과 분명히 구분되는 티나와 보레 두 사람의 외모와, 벌레를 먹거나 분노를 표출할 때 흡사 짐승과 같은 소리를 내고 후각으로 감정을 읽는 등의 독특한 모습들은 이질감을 주며 그들의 시선에서 그들과 같은 입장으로 화면에 이입하기 힘들게 한다.

 

그렇지만 <경계선>에서 트롤 인물들은 인간과 짐승 사이의 경계에서,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인간임에도 한 명의 인간으로 인정받기 힘든 다양한 소수자들을 은유하며 단순히 신선함을 주는 것을 넘어서는 역할을 한다. 또한 예민한 후각을 이용해 죄책감, 분노와 같은 사람들의 감정을 읽고, 인간의 거짓말과 위선을 간파하고 범죄자를 잡는 티나는 트롤임에도 누구보다 ‘인간다운’ 인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선을 되돌아보게 하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티나는 보레와 숲 속에서 누워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를 바라보며 “예전처럼 살기 싫다”고 말한다. 이는 그녀가 보레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었으며 그와 함께하고 싶어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레가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이를 팔아넘기고 있음을 알게 된 이후 티나는 그와 함께 떠나는 것을 단념한다. 여객선 위에서 악마가 되기 싫다는 티나의 말에 보레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지 묻는다. 티나는 “누구도 해치기 싫어요. 이렇게 말하면 인간인가요?”라고 다시 묻는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종족이 모여 사는 핀란드에 가지 않고, 스웨덴에 남아 인간의 삶을 택한다.

 

누구도 해치기 싫다는 그녀의 대사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트롤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뒤에도 그녀가 원하는 것은 종족을 이어가거나 부모를 정신병원에 가두며 자신들을 박해한 인간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인간과 괴물을 구분해온 경계선이 마침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보레와 헤어지고 자신을 속여온 가족과도 떨어져 홀로 지내는 티나에게 어느 날 택배가 온다. 택배 안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이와 “핀란드에 잘 오셨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엽서가 들어있다. 티나가 풀 위를 기어가는 벌레를 집어 아기에게 먹이자 아기가 울음을 그치고 해맑게 웃는다. 아기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티나의 표정을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보는 내내 이질감과 기괴함이 느껴지는 <경계선>은 온전히 집중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그렇지만 그 낯선 느낌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트롤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자신다움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경계선 안에서 혹은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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