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세기, 가장 실험적인 몽타주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 지가 베르토프
글 입력 2021.02.0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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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가장 실험적인 영화를 단 한 편만 골라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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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저없이 지가 베르토프 감독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를 고를 것이다.

 

지가 베르토프는 러시아의 영화 감독으로, 기록 영화의 형식을 재창조하며 다큐멘터리 영화사 초기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소련 최초의 극영화 <시월혁명기념일(1919)>을 시작으로 그는 혁신적인 시각 효과의 작품들을 다수 제작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끊임없는 몽타주 기법으로 혁명적인 예술 영화의 대표작이 되었다.

 

"일상의 역동적 몽타주"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가장 큰 특징은 '역동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역동적인 화면 속에 담긴 사건들은 모두 지극히 일상적이다. 따분하고 반복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삶의 단편들을, 베르토프는 천진하게도 카메라로 담아내어 조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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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이후 거의 100년에 달하는 세월이 지났으니 작품이 투박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화 자체의 분위기는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강하다. 화면의 병치 방식에서도, 추후 삽입되었을 음악에서도 독특한 리듬감이 느껴진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면서 줄곧 몬드리안의 그림을 떠올렸다. 추상 미술의 거장 '피에트 몬드리안'은 강렬한 색채 대비와 격자형 배치를 통해 순수한 근본적 역동성을 부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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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토프 작품의 역동성은 몬드리안의 그것과 닮은 부분이 많다. 몬드리안의 작품이 수평과 수직으로 즐거운 에너지를 내뿜었듯이, 베르토프의 작품에서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요소들이 화면을 통해 교차하고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의 경쾌한 몽타주적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볼 수 있겠다.

 

 

베르토프의 화면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① 교차 그 자체를 담다 : 공장의 여성들이 실매듭을 지으며 실을 교차시킨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서로의 발자국을 교차하며 걷는다. 이렇게 객관적인 '교차'의 화면들이, '교차편집'이라는 감독의 주관적 선택에 의해 연결되면서, 또 다른 교차와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② 화면 속 일상이 교차하다 : 눈꺼풀이 열렸다 닫히고, 창문의 버티컬이 열렸다 닫히고, 카메라 렌즈가 열렸다 닫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닫힌다. 카메라 렌즈가 돌아가고, 열차의 바퀴가 돌아가고, 공장의 태엽 기계가 돌아가고, 가정집의 턴테이블이 돌아간다.

 

베르토프는 다양한 일상적 반복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병치하여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었다. 여기에, 박자감이 느껴지는 교차편집을 활용하여 유쾌한 몽타주를 만들어냈다.

 

한편으로 베르토프는, 상징적 의미가 극적으로 대비되는 순간들을 교차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삶과 죽음의 장면이 이어지고, 정적인 필름과 동적인 영상의 장면이 연결된다.

 

③ 화면 속 공간이 교차하다 : 다큐멘터리적으로 나열된 화면에서 갑자기 비현실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사람과 열차가 교차하던 길은 더 이상 그 구분이 무의미해지며, 길거리는 비현실적 공간으로 변한다. 열차가 화면의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달려오는 장면에서 관객은 절정에 가까운 영화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

 

④ 빛과 어둠이 교차하다 : (이 시기의 영화들은 전부 흑백영화이기는 했으나) 위에서 언급한 대비의 에너지와 맞물려, 흑백 대비로 더욱 독특한 미장센을 구현하는 작품이다.

 

*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텍스트적 사유가 아닌 이미지적 사유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그러한 시대 전환에 크게 기여한 예술이다.

 

문자로 쓰면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단어와 문장들이, 화면의 시각적 유사성을 통해 종합되며 독립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무심한 듯 투박하게 아카이빙 된 영상을 보며, 관객은 이미지적 사고를 스스로에게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마저 신선한 작품이기에, 영화 예술에 익숙하지 않았을 당시 대중들은 이 작품을 보며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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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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