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니키 리가 이야기하는 정체성과 본질 [미술/전시]

유태오의 부인 말고 아티스트 니키 리
글 입력 2021.01.3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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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10년의 학생’, 이언 핑클을 소개합니다!”

 

…(중략)…

 

“이 아이는 사기꾼이에요! 유치원에 다니던 그 아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처음에 이 말은 내가 다섯 살 이후에 많이 변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남자가 말하는 변화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지나서야 알았다. 그는 자리에서 나와 무대 쪽으로 걸어왔다.

 

“지금 너의 그 어느 것도 유치원 다닐 때와 똑같지 않아. 분명히 너는 그때의 이언 핑클이 아니야.”

 

“말도 안 돼요.”

 

나는 반박했다. 내가 사기꾼이라고? 어째서?

 

- 이언의 철학 여행, p. 77

 


이십 대 초반에는 이런 고민에 늘 휩싸였다. ‘어릴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며 경험하는 것들에 따라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나의 모습은 과거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A와 만났을 땐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고, B그룹에 속했을 땐 누구보다 말없는 사람이 되고, C와 있으면 한없이 진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분명 한 사람인데, 내 안에 자리한 수많은 정체성 중 어느 것이 진짜 나라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지금은 그 모든 모습이 다 나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당시에는 스스로가 거짓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대학교 현대미술 수업 시간에 니키 리의 Projects시리즈를 보았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티스트 니키 리의 시작, Projects


 

최근 배우 유태오의 부인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니키 리는 90년대 후반부터 주로 뉴욕에서 활동했던 아티스트다. 그의 본명은 이승희. 1994년에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러지(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공부하며 패션 사진가 데이비드 르샤펠(David Lechapell)의 조수로 일했다. 이때 좀더 부르기 쉬운 이름을 찾다가 보그(Vogue)잡지를 뒤적여 찾은 이름 ‘니키’가 그의 필명이 되었다.

 

패션학교에서의 경험으로 상업사진보다 개인 작업에 집중하고 싶어진 니키 리는 1999년에 뉴욕대 대학원 사진학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졸업 프로젝트를 위해 Projects 시리즈를 작업하게 된다. Projects 시리즈는 니키 리가 다양한 하위문화 집단 속에서 몇 주 또는 수 개월을 집단의 일원들과 함께 지낸 경험을 기록하며 정체성이 규정되는 방식을 다룬 작업이다. 해당 집단에 미리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한 뒤, 그 속에 완벽하게 동화되기 위해 살을 찌우거나 태닝을 하거나 옷과 헤어스타일, 화장을 달리 하며 펑크, 레즈비언, 히스패닉, 노인, 스트립 댄서, 여피족 등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모습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제 3자의 시선을 통해 포인트-앤-슛 카메라로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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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phop Project 1, Digital C- Print,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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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nior Project 26, Digital C- Print,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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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panic Project 1, Digital C- Print, 1998.

 

 

각 집단마다 두드러지는 사회적 디테일을 눈썰미있게 잡아내고, 그것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니키 리의 체험은 뉴욕 미술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당시 뉴욕에서 활발히 논의되던 다문화주의적 맥락과 맞아떨어지며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다. 졸업도 하기 전에 뉴욕의 유명 갤러리인 레슬리통크나우갤러리(Leslie Tokonow)에 전속 아티스트로 스카우트 될 정도였다.

 

수업에서 연달아 그의 작업을 보았을 때 사진 속에 모두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니키 리의 모습은 변화무쌍했다. 너무도 다른 각각의 공동체에 완벽하게 동화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수많은 정체성,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혼란스럽던 내게 그의 작업은 유동적인 정체성에 대한 명백한 증거였다. 그것이 내게 일종의 해답처럼 여겨져 작은 안도감과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Parts와 Layers로 확장되는 정체성의 관점


 

Projects 시리즈로 엄청난 주목과 극찬을 받으며 뉴욕미술계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니키 리는 꾸준히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이어갔다. 다음 작업인 Parts 시리즈와 Layers 시리즈 역시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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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s 12, Digital C-Print,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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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Digital C-Print,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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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4, Digital C-Print, 2002.

 

 

Parts 시리즈는 사귀고 있는 남자에 따라 달라지는 여자의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사진에서 관람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자, 즉 니키 리의 모습뿐이다. 남자의 모습은 사진의 귀퉁이에 손이나 팔, 다리 등 신체의 일부로만 보여진다.

 

여자의 표정, 행동, 여자를 대하는 남자의 손짓, 주변의 상황 같은 것을 통해 관람자는 잘려나간 남자, 사진에 오롯이 등장하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유추하며 그들의 관계를 상상하게 된다. 이 상상의 과정에서 관람자는 여자의 정체성을 상대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 완성한다. 이것은 곧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유지되는 개인의 정체성을 상기시키며, 크롭된 사진 속 니키 리의 모습은 작품의 제목인 Parts처럼 정체성의 일부로 불완전하게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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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s, New York 2, Digital C-print,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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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s, Paris 2, Digital C-print, 2007.


 

Projects 시리즈가 다양한 집단 속에서 변화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다루고 Parts 시리즈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유지되는 정체성을 이야기한다면, Layers 시리즈는 타인이 보는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니키 리는 작업을 위해 뉴욕, 파리, 마드리드, 방콕 등 14개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길거리 초상화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한다. 초상화는 각 도시마다 세 점씩 그려졌고 라이트 박스 위에 초상화들을 겹친 후 사진을 찍어 도시 별 초상화를 완성했다.

 

완성된 초상화들은 니키 리라는 동일한 한 사람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다. 뉴욕 초상화는 차갑고 도시적인 느낌을, 파리의 초상화는 로맨틱하고 부드럽다. 초상화 속 니키 리의 모습은 뉴욕에서는 뉴욕의 여인, 파리 초상화에선 파리의 여인, 방콕에서는 방콕의 여인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초상화가들, 즉 타인의 시선이 겹겹이 쌓여 서로 다른 정체성을 니키 리에게 부여한 것이다.

 

*

 

그의 작업 속 변화무쌍한 니키 리의 모습은 그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의 다른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그렇게 관람자는 니키 리의 작업을 보며 정체성은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유동적인 것이고 사회적 관계와 타인의 시선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들이 귀결되는 지점은 바로 ‘나’, 니키 리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른 성격들을 여러 집단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표현한 Projects, 사귀고 있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에서 시작된 Parts, 타인이 보는 니키 리의 정체성은 Layers를 통해 표현된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나의 최대 관심은 그냥 나예요."

 

 

니키 리는 항상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고민을 기반으로 작업을 했다. 대중들을 신경쓰거나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또는 시류에 맞게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자신의 최대 관심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가 가진 유쾌함과 장난스러움으로 풀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진정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렸고, 대중들의 관심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나'에서 비롯된 니키 리의 작업은 다양하게 변주되는 수많은 정체성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자기 자신,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개인의 정체성의 다양화가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킨다. 그 모든 페르소나들을 관통하는 본질은 '나'라는 것. 정체성의 다양화가 당연해진 지금의 시점에도 니키 리의 작업은 유효하다.

 

 

 

참고자료

SK(주) C&C 블로그, [SPECIAL INTERVIEW] 아이덴티티, 그 본질에 뛰어들다 <아티스트 니키 리>

신동엽, 아티스트 니키 리 치열한 장난스러움으로 나를 찾다 내 예술은 나 자신을 갖고 노는 것일 뿐!, DBR 155호 (2014년 6월 Issue 2).

이지은, 『정체성의 장소: 니키 리의 <프로젝트> 시리즈에 대한 재고(再考)』, 「미술사와 시각문화」제18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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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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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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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
    • 와 흥미로운 작업이에요 좋은 아티스트 알고 가네요 니키리 인스타 있나 검색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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