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허구를 통해 삶을 배우기

소설은 허구지만 결코 거짓이 아니다
글 입력 2021.01.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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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허구지만 거짓이 아니다. 학창 시절 문학 수업 중 교수님께서 직접 하셨던 말씀이었다.

 

복수 전공으로 연극학과 한국어문학을 연계 수강하면서 부쩍이나 활자에 관심이 커진 나는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여러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느꼈던 건 소설엔 어디까지나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한 화자가 있다는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소설? 그거 다 거짓말이잖아.'라고 말하며 소설의 가치를 격하하기도 했는데, 나는 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소설은 허구지만 거짓은 결코 아니라고 말해줬던 기억이 난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 나는 소설을 탐독하는 과정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소설 속에 녹아들어 있는 시대의 모습들, 그 진실한 시대성을 담은 작품을 탐구하면서 내가 아닌 타인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기회들이 언젠가부터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된 대목 중 하나는 바로 인간 감정의 탐구이기도 했는데, 20대 초반이라는 나이를 거치면서 급격히 변하게 된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찰나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이 바로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낯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가슴께가 답답해지던 나는 대학교에 들어오고 진정으로 사춘기를 겪기 시작했는데, 그 사춘기를 적절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던 게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었다. 소설 속에서 모종의 이유로 상처 받고, 성장해나가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보며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나만 간직하고 있던 감정들을 대신 표현해주는 것에 감사했으며 나만 소외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소외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에 안도했다.

 

그런 점에서 한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식의 감정 묘사를 처음 접했다. 나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감정에 대해 낱낱이 뒤집어 까는 듯한 느낌. 나는 한때 짙은 우울감에 빠져 있을 무렵 그의 책 <노르웨이의 숲>을 꽤 감명 깊게 읽었는데, 하루키의 우울함에 대한 사유를 감상하면서 오히려 치유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별나서 느끼는 줄만 알았던 부정적 감정들에 마땅한 핑곗거리가 생겼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느끼지만 애써 숨기고 있었기에 서로 눈치채지 못했던 무수한 감정들을 말끔하게 풀어냈다는 생각을 가졌다.

 

상처 받은 자들의 곪아가는 감정, 완전한 치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게끔만 하는 일말의 희망. 어쩌면 내게 필요했던 건 무조건적인 위로가 아닌 나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되고 나는 인간이 갖는 입체적인 감정선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고찰한 작품들을 차례로 읽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읽었다. 제목 그대로 모순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고 선택해 나가는 주인공 안진진의 언행은 결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었으며,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인간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다. 최선보다는 차선을 선택하는 모순,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모순, 양말을 팔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활기 넘치는 안진진의 엄마와 대저택에 살면서도 끝없는 외로움을 느끼는 쌍둥이 이모의 극단적인 대립.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모순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이 책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어 자꾸만 움츠러든 내게 중대한 질문을 던졌다.

 

나의 모든 선택이 모순을 낳는다면 나의 최선도 차선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차선도 최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대차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어떤 용기. 그게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누구도 내게 던져주지 않았던 질문을 20년도 더 된 책을 통해 스스로 자문하게 됐다는 점이 놀라웠다.

 

요즘은 뭐랄까. 너무 많은 말을 삼키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뱉어내는 모든 말들이 우울 전시가 될 수도 있다는 무력감, 사색을 부정하고 유희만을 광적으로 쫓아가는 세태, 여유가 없는 일상. 내가 나에 대해서 모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매일같이 공부하고, 매일같이 일만 하는 세상에서 사색이라고 명명할 시간은 대체 얼마만큼 될까. 조언을 구할 곳도, 조언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현재는 참으로 어지럽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나는 부쩍 주변인들로부터 인간 관계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았는데, 멀어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신을 탓하게 되는 내 친구들을 보자니 마음이 많이 쓰였다. 어찌어찌 생각나는 말들로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지만,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그들만이 가진 긴긴 대인 관계의 역사를 하나하나 꿰뚫어 보는 일이야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요즘에서야 든 생각은, 소설을 통해서 나를 배우고 남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것.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우리와 비슷하니까. 말뿐인 위로가 아니라 첨예한 교훈과 조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는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 주변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소설을 통해 더 깊은 차원의 사색을 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에게 상처받아 문을 닫지만 결국 사람으로 회귀하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이 문구를 전해주고 싶다.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의 인간을 온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단순한 하나의 면이 아니라 보는 방향에 따라,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이 되는 입체이고,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과 위치가 끊임없이 변하는 유동체이며, 때로는 평행한 여러 가지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는 가능성들의 집합임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반드시 틀린 말이 될 거라고, 그것만이 분명한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우다영, <창모> 中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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