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물음표와 느낌표, 어느 쪽이든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도서]

글 입력 2021.01.2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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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이제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흰 토끼를 따라 들어간 세계에서 전개되는 앨리스의 모험기는 상상의 연속이다. 눈앞으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과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인간이 얼마나 무한하게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뽐내는 것처럼 말이다. 나아가 사회 풍자적인 대목들과 현실 세계를 이루는 시공간의 개념이 완전히 뒤집힌 세계관에서 발견할 수 있듯, 이는 현실을 전복시키는 상상력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를 모험하는 동안, 많은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더불어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by 애나 본드_표지커버.jpg

 


앨리스는 모험 내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고자 한다. 왜냐하면 ‘어제로 돌아가서 이야기하는 건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앨리스의 겉모습은 마시고 먹는 행위에 따라 시시각각 예측할 수 없는 모양으로 변한다.

 

그리고 앨리스의 이상한 모험은 인간의 삶 자체와도 닮아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이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자주 수포로 돌아간다. 우리에겐 키가 25cm로 줄어들었다가도 금세 3m로 훌쩍 자라거나 어느 날은 내가 흘린 눈물에서 헤엄을 치는 일을 겪기도 하는 이상한 나날들이 지치지도 않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결국 진짜 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원래 크기로 돌아가는 거야.”

 

“무언가를 먹거나 마셔야 할 것 같지만, 그게 뭔지 모른다는 게 문제야.”

 


하지만 학습된 것인지 타고난 것인지, 우리는 정의하고 정리하고자 한다. 앨리스의 말을 빌리자면 ‘크기가 이렇게 자주 바뀌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염원하는 행위가 그러하다. 그래서 낯선 내 새로운 모습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방해함으로써 나를 혼란스럽게 할 뿐 그다지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나를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지만 어떤 설명으로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 그래서 결국 “저도 저를 설명할 수 없어요. 저는 지금 제가 아니거든요”라고 끝맺게 되는 것. 앨리스의 모험 곳곳에도 앨리스가 경험하는 갈등이 드러난다. 앨리스는 모험을 재밌게 즐기고자 하는 마음과 모험 따위는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혼란하게 오가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의 모험기가 그러하듯 모험을 떠난 주인공들은 마음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이상하게 새로운 에너지를 북돋아준다. 갈등이 해소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은 안다. 어떤 모양일지라도 앨리스는 앨리스라는 사실을. 앨리스를 통해 얻은 작은 믿음은, 알 수 없음으로 가득 찬 삶을 불안과 고통의 영역에서 짜릿한 모험의 영역으로 옮기도록 돕는다.

 

모든 인간을 고무줄 같이 쉽게 늘어나고 줄어들기도 하는 몸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소소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마음으로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어쩌면 조금 재미있는 것도 같아”라고 말하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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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앨리스라는 인물은 능동적으로 삶을 해석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하지만 ‘정신 나간 다과회’라는 제목으로 그려진 여러 동물과의 다과회 장면은, 어느새 앨리스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던 내 시선에 제동을 걸게 했다.

 

다과회에는 3월 토끼와 모자장이, 겨울잠쥐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앨리스는 혼란스러워한다. 이 세 인물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앨리스에게 동감한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이 다과회 장면은 어떤 해석도 가능할 것이라는 흥미가 돋았다.

 

앞서 앨리스의 답을 정의하고자 하는 욕망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다과회의 세 인물은 ‘정답 내리는 일은 집어치워’라고 말하는 듯 하다. 또 아무리 정답을 내리고 싶다 해도 너는 결코 하나의 정돈된 정답을 내릴 수 없을 거라 단언하듯 다음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니?” 우리는 답을 찾는다는 전제를 두고서 질문을 한다. 그러한 점에서 모자 장이가 당연한 것에 물음표를 찍고 되묻는 이 장면은 많은 생각거리를 건넨다.

 

다과회를 즐기는 이 세 인물은 앨리스에게 이렇게 묻는다. “수수께끼의 답은 찾았어?” 그리고 앨리스는 말한다. “아뇨. 포기할게요. 답이 뭔가요?” 모자장이는 말한다 “나도 몰라”. 3월 토끼도 덧붙인다. “나도”. 그리고 앨리스는 이 다과회를 정말 이상하다고 여기며 저렇게 바보 같은 다과회는 평생 처음 본다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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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책의 주인공도 루이스 캐럴이 들려주고자 한 대상도 또 아동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책은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이 쓰인 영국 빅토리아 시대뿐 아니라 현대의 아이들 또한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다.

 

가령 물에 젖은 몸을 말리는 동안의 동물들의 풍경은 학교 수업시간을 연상시킨다. 어른들은 ‘어려운’ 말로 알 수 없는 이론들을 늘어놓고 학생들은 창밖을 내다보며 그렇게 동문서답이 이어지는 풍경 말이다. 그리고 앨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 이야기는 나를 전혀 말려준 것 같지 않아.”

 

또 교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책이 쓰인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엔 교훈을 강조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앨리스가 말했듯 ‘사탕’처럼 맛있는 책들도 많았으면 좋으련만 대개는 보약이라는 이름으로 권해지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책들 가운데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이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우선이었다고 한다.

 

나아가 앨리스가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혹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들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사실 앨리스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 캐릭터는 아니다. 공작부인이나 여왕 또는 아저씨라고 칭하는 동물들의 말에 반박하는 앨리스의 주장들은 대개 독백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험의 끝자락에서 여왕에게 앨리스는 시원한 한 방을 날린다. “트럼프 카드일 뿐이잖아요”

 

또 “얘야! 이걸 교훈 삼아서 인내심을 좀 키우도록 해라!”라고 말하는 어미 게에게 새끼 게는 이렇게 대꾸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랑 같이 있으면 성인군자도 인내심이 흔들릴 거예요.” 어린이들의 속마음은 이런 게 아닐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참견하는 어른들에게 속으로 어쩌면 이런 말을 건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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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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