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달리기 [사람]

달리기가 내게 남긴 것
글 입력 2021.01.2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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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건 4년 전이었다. 당시에 어떤 교육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는데 거기서 이런 얘길 들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한 학생이 있었는데 스펙도 경험도 모자란 것이 없는데도 면접에서 늘 고배를 마셨다고 했다. 그런 그 학생에게 강사는 30일 간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을 권했다. 갑자기 달리기라니. 취업 준비와는 하등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달리기를 그 학생은 속는 셈치고 정말 했고 취업에 성공했다.

 

뒤이어 이어진 설명은 이랬다. 면접에서 그 학생의 문제는 자신감 없는 태도였다. 구부정한 자세와 확신 없는 말투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이룬 작은 성취, 조금씩 변해가는 몸, 몸을 움직이며 생기는 에너지가 그 학생을 변화시켰다고 했다.

 

정말 달리기 하나로 그런 변화가 일어날까. 의심스러웠지만 그때의 나는 변화가 필요했다. 꾸준히 무언가를 지속하지 못하고 쉽게 흥미를 잃는 나 자신에 지쳐있었다. 이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나는 정말 답이 없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으로 나도 그 학생처럼 달리기를 시작했다.

 

 

 

작은 성취와 매일의 변화



처음 달리기를 할 때는 무작정 달렸다. 런닝화를 따로 살 생각도 없었고 옷은 집에 있던 레깅스와 맨투맨, 기록 측정을 위한 달리기 어플을 설치하고 바로 시작했다.

 

달리기에 트레이닝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그냥 혼자 규칙을 정해서 달렸다. 내가 만들었던 규칙은 2km로 시작해 10일이 지날 때마다 1km 추가하기, 하루라도 건너뛰면 다시 1일차로 돌아간다는 것, 달리기가 여의치 않으면 걷기를 하되,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30일이라는 기한을 정해두고 달렸다.

 

운동이라고 해 봐야 취미로 춤을 추는 것 외엔 전혀 해 보지 않았던 나는 2km를 달리는 것도 버거웠다. 매일 밤 내 방의 안락함과도 부단히 싸워야 했다. 하지만 정해진 기한과 명확한 목표,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 매일 체감하는 체력의 변화가 나를 계속 달리게 했다. 2km도 버거웠던 내 몸은 어느새 3km, 4km도 거뜬히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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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날 30일 차엔 처음으로 5km를 달렸다. 전혀 버겁지 않았다. 처음부터 5km를 달렸다면 아마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씩 거리를 더해가며 길러진 체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쌓인 시간은 정직했다.

 

쉬지 않고 5km를 달리는 건 누군가에겐 별로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운동에 전혀 관심 없던 내게 이 성취가 주는 보람은 아주 컸다. 나와 한 약속을 지켜냈다는, 나도 꾸준히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조금은 용기 있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그 뒤로도 종종 달리기를 했다. 이전만큼 열심히는 아니어도 머릿속이 복잡할 때, 몸이 너무 무거운 것 같을 때 달렸다. 하지만 매일 달리지 않다보니 예전처럼 변화가 확연히 느껴지지 않는데다 절박함이 사라진 달리기는 습관으로 지속되기 어려웠다. 달리는 날 사이의 간격은 자꾸만 길어졌고 이제는 취미로 달리기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부끄러워졌다.

 

몇 걸음 더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매일의 성실함이 쌓았던 체력은 빠르게 변화했던 만큼이나 빠르게 돌아왔다. 그만 둘 거라면 시작하는 게 의미없다며 게으름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러다 친구의 추천으로 달리기 트레이닝 어플 하나를 알게 됐고 이거라면 유약한 내 의지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만드는 트레이닝 코스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달릴 땐 혼자가 아니었다. 어플 속의 트레이너와 함께 달렸다. 달리는 내내 트레이너는 무수한 독려와 함께 달리기와 관련된 지식들을 이야기했다. 러닝화를 고르는 방법, 부상, 달리는 자세 등 생각보다 자세하고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강조했던 것은 부상, 다치지 않는 것이었다.

 

트레이너의 말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무식하게 달렸었는지 깨달았다. 처음 달리기를 할 땐 내 몸의 컨디션보다 목표와 기록이 더 중요했다. 적절한 휴식과 바른 자세, 페이스 조절 없이 매일 달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달렸었다. 그때는 그 고집을 충분히 버틸 수 있었지만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몸이 전과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트레이너의 조언에 따라 부상을 조심하고 컨디션을 잘 체크하며 달리려고 했다. 하지만 기록 욕심과 트레이닝 일수를 채우고 싶다는 욕심을 못 버렸고 결국 크게 탈이 났다. 달리기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걸음을 내딛지 못할 정도로 심한 어지럼증과 탈진 상태가 온 것이다. 총 8주의 코스 중 단 1주, 세 번의 달리기만 남겨둔 상태였다. 길가에 주저 앉아 펜스를 부여잡고 한참을 있었다. 차도와 인도 사이 설치된 펜스의 역할이 보행자를 보호하는 것 외에 다른 용도로도 쓰인다는 걸 처음 느꼈다. 체력의 극한에 내몰리고 나서야 그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쉬었다.

 

몸이 달리기에 대한 기억을 다 잃어갈 즈음, 한 해가 끝나기 전에 트레이닝 코스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12월부터 다시 달렸다. 이번엔 다치지 않고 잘 달리기 위해 밥을 잘 챙겨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 기록 욕심을 버리고 내가 견딜 수 있는 페이스대로 달렸다. 우리가 하는 것은 빨리 달리기가 아니라 오래 달리기라고. 조금만 더 무리해도 몸은 피로감을 급격히 느끼고 그 피로감은 오래 유지된다고. 더 오래, 더 멀리 달리기 위해서는 내 몸의 컨디션을 잘 살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트레이너의 말을 매번 되새겼다. 그리고 새해를 며칠 앞둔 날에 트레이닝을 무사히 끝냈다.

 

*

 

트레이닝이 다 끝나고, 조급함에 쉽게 지쳤던 나의 지난 날을 떠올렸다. 시작부터 완벽함을 바랐던, 나의 상태와 내가 낼 수 있는 속도를 무시하고 타인의 성취와 나를 비교하며 괴로워했던 시간들. 꾸준하지 못한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고 절망하고 쉽게 포기하며 스스로를 한계 짓기 쉽상이었다.

 

달리기는 그 한계를 깨는 것을 조금씩 도와줬다. 내게 필요했던 건 조급함 대신 매일의 성실함이었다. 더 오래, 더 멀리 나아가려면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욕심에 무리하는 것보다 자신을 잘 돌봐야 했다.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5km라는 거리를 수월하게 달릴 수 있게 되고, 무리하게 뛰었다가 오래 쉬면서 직접 겪은 명제는 쉽게 흐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조급함과 비교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괴롭고 스스로가 작아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생각에 잠식되지 않는다. 달리기의 감각을 떠올리며 수면 위로 빨리 올라오려고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 마라톤 한 번 뛰어보지 않은 햇병아리 러너이지만, 달리기가 내게 남긴 것들은 아주 많다. 그러니 아직 달려보지 않았다면 달리기를 기꺼이 추천한다. 달리기로 삶이 바뀔 거라고 말할 순 없어도, 최소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전보다 조금은 달라질 거라고 확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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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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