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탐독가가 되기 좋은 바로 지금, 도서 '탐독가들'

글 입력 2021.01.2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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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좋은 때가 언제라고들 하던가. 분명 예전엔 이런 질문에 가을이 가장 좋은 때라고 대답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젠 독서하기 가장 좋은 때에 대한 답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코로나 시대에 독서하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생업의 목적을 제외하곤 그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집 밖에선 그 무엇도 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물론 넷플릭스나 왓챠,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때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상물만을 소비하다보면, 궁극적으로 지적인 허기가 오는 순간이 생긴다. 그저 생각 없이 눈으로 보며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곱씹고 되물으며 머리를 쓰는 활동을 원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때 책을 펼치면, 그 어느 때보다도 책이 달다.


이런 코로나 시대에 알맞는 책이 카모마일북스에서 출판되었다. 바로 "탐독가들"이다. 조선 시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어떤 독서생활을 통해왔는지, 독서에 대한 그들의 주관은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스스로를 더 알차고 단단하게 만들기 좋은 지금 이 시기에, 고전 시대의 탐독가들을 만나는 것은 분명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목차>


저자의 말

 

[제1부] 고전에서 배우는 독서 리더십

책을 읽을 뿐! 책 미치광이 이덕무의 자오의 리더십

읽고 또 읽다, 다독왕 김득신의 끈기의 리더십

책으로 나라를 경영하다, 세종대왕의 소통의 리더십

밑바닥까지 캐는 독서, 다산 정약용의 격려의 리더십

일상의 독서, 홍길주의 대인춘풍의 리더십

실질의 독서, 담헌 홍대용의 실심실사의 리더십

의문을 품는 독서, 성호 이익의 하문의 리더십

죽고자 하면 산다, 충무공 이순신의 결사각오의 리더십

독서는 실천이다, 율곡 이이의 덕망의 리더십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다, 교산 허균의 평등의 리더십


[제2부] 고전에서 배우는 세 빛깔의 독서론

실학자의 독서론 : 박지원의 독서패러다임의 전환

국왕의 독서론 : 정조의 활법 책 읽기

성리학자의 독서론 : 백수 양응수의 허심의 독서

 


 


"탐독가들"을 통해 옛 성현들의 독서생활을 살펴보니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먼저 첫째로, 꾸준히 책을 읽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다. 각종 놀거리가 많은 현대에서 조선시대를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현대의 기준에서만큼 놀이라 할 만한 게 그다지 많아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평민이라 말하는 양인들과 같이 농공상 중의 하나에 직접적으로 종사하지도 않았으니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도 않았고 놀이도 비교적 단순한 것들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책 읽는 것 말곤 그다지 할 게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명산대천을 유람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주색잡기에 빠져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탐독가들"에서 다루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책을 꾸준히, 많이, 다양하게 읽었다는 것은 결단코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할 게 없어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정말 책을 좋아하고, 책에 빠져든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독서량을 감내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는 책을 단순히 수용하면서 읽지 않고 비판적으로 읽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금에야 흔한 '비판적 사고'를 위한 독서가 조선시대에는 분명 흔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살더라도 깊은 통찰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이 지식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이 바로 항상 의문을 가지며 책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의문을 가지고 밑바닥까지 파고들어보는 사고의 훈련이야말로 활자 너머에 있는 깊은 뜻을 발견하는 기초체력이 되며, 이러한 사고력이 바탕이 되어야 책 너머에 있는 세상 속 수많은 현상에 대해서도 본질을 꿰뚫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독서가 독서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책을 읽고 활자를 머릿속에 한 번 집어넣는 것으로 독서가 끝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독서의 결과가 실질적으로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책을 읽은 나 스스로와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는 독서는 결국 빈약할 수밖에 없다. "탐독가들"에서 만난 성현들은 정치 일선에 있었던 국왕도 있었고,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전쟁의 최전선에 선 장군도 있었으며 정계에서 활약하지 않고 재야에서 생을 보냈던 지식인도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서 있는 그 곳에서의 변화와 개선을 도모해왔다.


*


사람마다 책을 읽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탐독가들"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었는지만을 보는 차원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 밑줄을 쳐가고 베껴 써가면서 글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글에 담긴 뜻의 뿌리까지 쫓아가며 글을 소화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독서하는 책에 그치지 않고 글의 의미를 삼라만상으로까지 확장하여 새로운 의미의 독서로까지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사람 역시 있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각 사람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저자 박수밀은 독서 리더십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리더십은 비단 남을 이끄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통해 괴로움을 씻어내고 현실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기른 성현들을 보며 후세대인 독자들 역시도 자신만의 독서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2부에서 다룬 연암 박지원의 독서론은 그야말로 귀감이 되는 독서론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활자화된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눈앞의 사물과 현실을 꼼꼼하게 살필 것을 주문한 연암은 독자들에게 독서와 현실이 동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책에서 내가 서 있는 삶의 현장으로까지 사유를 확장하여야 하는 것이다. 책을 책으로만 읽으면 관념론적인 차원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로 그 외연을 넓힌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사고력 함양이 될 것이다.


*


개인적으로 "탐독가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김득신의 이야기를 다룬 챕터였다. 김득신은 스스로를 어리석고 둔한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한다. 으레 하는 겸손의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어릴 적부터 총기가 넘쳐 번뜩였던 인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영재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에 천연두를 앓은 바람에 둔했다. 열 살에야 글을 읽기 시작했고 스무 살이 되어서야 글을 지었다고 하니, 이미 세 살에 글을 깨쳤던 율곡 이이에 비하면 한참 뒤늦은 것이다.


그러나 김득신의 부모는 영재 집안에서 태어난 둔재 아들에게도 포기하지 말라며 끝없이 다독였다. 그런 부모의 독려 덕에, 김득신은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남들이 들이는 노력의 배를 들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르면 알 때까지 무한정 반복하여 독파해나갔던 것이다. 이를 두고, 무작정 반복해서 읽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글을 베껴보며 이해하려는 노력을 김득신만큼 들여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게 노력한 사람이었기에 그는 59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룬다.


김득신처럼 노둔하다고 해서 거기에 한계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탐독가들"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정말 가슴 깊게 와 닿은 것은, 내가 이미 나 스스로를 한계 짓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득신은 자신이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 생각나지 않아 중얼거리고 있을 때, 한 구절을 말하며 그 책은 이제 자기도 외울 지경이 되었다는 양 말하는 자신의 하인을 보고도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득신보다 잘 돌아가는 머리를 가지고도 예전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이젠 공부하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더 빠르게 한계를 짓고 있었다.


김득신은 말 그대로 안철지면, 눈빛이 종이를 뚫는 수준으로 책을 끈기 있게 독파해나갔던 인물이다. 현대의 독서법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은 분명 남을 것이다. 그러나 김득신만큼,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데에도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도전해본 적이 있었는가. 그런 도전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던가.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이런 둔재였던 그도 끝없이 책을 읽었는데, 내가 멈춰 서 있을 여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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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독서생활을 살펴보는 "탐독가들". 현대 사회에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독서론을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독서에 대한 근본적인 지향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으로 단순히 그 책에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이치를 깨우쳐 본질을 꿰뚫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독서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책을 가까이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서 "탐독가들"은 나 역시도 옛 성현들처럼 독서해보고 싶은 도전적인 마음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탐독가들

- 조선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과 독서론 -


지은이: 박수밀

출판사: 카모마일북스


분야 : 인문

페이지: 216쪽


정가: 16,000원

ISBN: 978-89-98204-53-2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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