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1일1영화 했던 이유 [사람]

글 입력 2021.01.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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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몰토크에 약하다

 

내가 생각하는 제일 큰 약점 중 하나이다. 가뜩이나 낯도 많이 가리는데, 말주변도 변변치 않아서 더 티가 난다. 해도 안 해도 큰 상관이 없는 이야기들, 오늘 나누고 내일이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이야기들에 대해 나는 확실히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꼭 할 필요 없는 이야기라면 안 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은 무인도에 혼자 갇혀 있을 때나 유효한 이야기다. 다들 처음 만나고 어색한 사람들과는 어느 맥락에 가져다 놓아도 어울릴 법한 밋밋하지만 무난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런다고 해도 나는 좀 더 재밌는 이야기, 듣는 이에게 좀 더 기대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고작 스몰토크도 어색해하는 주제에 말이다.

 

그래서 내가 떠올렸던 것은 동아리에서의 경험이었다. 나는 영화, 공연 동아리들을 거쳤는데, 여기에서는 낯가림 심한 나도 사람 사귀기가 훨씬 쉬웠다. 나눌 얘기 없어 어색한 술자리나 밥 약속에서도 이미 전제된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각자 써온 자기소개서를 읽는 것보다도 훨씬 빠르게 서로를 알게 된다. 혹시라도 같이 보고 들은 영화나 음악이 있다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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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사람들은 다른 것보다도 영화를 참 좋아한다. 지나친 일반화일지도 모르겠지만, 꼭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영화 취향과 인생영화는 하나쯤 가지고 있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그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듣는 건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대단히 큰 단서가 되어준다. 그게 얼마나 유용한지를 떠나서 일단 그 과정이 심심치 않고 적당히 깊이가 있고 재미있었다.

 

거기에 내가 '영화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약간의 환상이 더해졌다. 영화를 잘 아는 사람들, 어떤 영화든 제목만 대면 배우든 감독이든 스토리에 대해 줄줄 외고 풀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내 눈에 비친 '영화광’이었다. 영화는 머리 아프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깊이 있는 취향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깊이 있는 지식과 자신만의 취향과 기준을 구축했다는 점이 멋있었다.

 

어떤 분야에 대한 애정은 사실 어떤 다짐이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내 환상 속에서는 어떤 우연한 계기로 스스로 주체하기 어려운 애정이 솟아나는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덕후’였다. 나는 사실 원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좁디좁은 영화 취향을 가졌고 싫은 것도 많다. 다들 본 영화는 괜히 안 봤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안 본 영화를 많이 본 것도 아니다. 아는 영화도 상당히 적은 편인 셈이다.

 

그러니 이 '덕후’의 길을 순수한 노력으로 가겠다는 것인데, 역시 좀 모순이 있다. 그러나 모든 애정과 열정이 순수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나름대로 결론지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멋있고, 사람들과 더 재밌는 이야길 나누고 싶다는 별거 아닌 이유만으로도 영화를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결과가 성공만 한다면 처음의 동기야 미약해도 미화되기 마련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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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day1movie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내가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한 지점은 두 가지다. 첫째, 많이 봐야 할 것 같다. 둘째, 골고루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둘 다 자신 없었다. 스스로에게 일종의 인증 시스템을 도입한 건 그래서였다.

 

나는 매일 영화를 한 편씩 보기로 했다. 그다지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는 숫자라고 생각했다. 매일 본 영화 중 마음에 드는 장면의 사진을 구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했다. 스토리 기능상 올린 게시물이 24시간 동안 지속한 뒤에 사라지므로, 매일 매일 올리기에 적합했다. 스토리가 비지 않게 하려고 꾸준히 업로드하도록 독려하는 효과도 있었다. 해시태그로 #1day1movie를 붙여서 이러한 게시물들을 모았고, 모은 게시물들은 프로필 하이라이트란에 단정히 묶어서 정리해두었다.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남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린다는 것 때문에, 영화를 고를 때에도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영화 장르도 괜히 다양하게, 어제 본 영화와는 너무 겹치지 않게, 되도록 새로운 영화들로, 조금 지루해 보이는 영화라도 한 번 더 시도해보게 되었다.

 

사실 남들이야 내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테지만, 나는 저 해시태그에 대한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고 업로드를 이어나갔다. 스토리를 눌러보면 몇 명이나 이 고독한 노력의 결과물을 지켜보고 있는지 볼 수 있는데, 그걸 보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는 날은 죄책감을 되새겼다. 다행히 이런 노력이 바보 같아지지 않게, 매일 매일 영화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당시 많이 무너져 있었던 하루의 리듬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매일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되새기는 게 일상에 활기를 북돋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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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남기는 일은 생각지 못한 효과를 한 가지 더 불러왔다. 바로 내 게시물을 본 사람들의 DM을 종종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공중에 던진 물음에 답을 해오는 사람들이 생겨난 셈이다. 나는 괜히 올릴 때 영화의 제목이나 개인적인 감상을 자세히 올리지 않고 영화의 장면만 올리는 때가 많았다. 그걸 보고 그 영화를 아는 친구들이 연락을 해오면 그게 그렇게 반가웠고 재밌었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SNS를 통해 기대하는 소통은 무척 개인적인 영역이라 사실 평소에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가까운 친구들이 아니고서야 내가 올린 무언가를 보고 연락이 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올린 영화가 반가워서, 아니면 내 감상이 궁금해서 연락을 주는 친구들은 내가 평소에 닿았던 친구들의 범위보다 넓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봤으며 추천하고 싶은지를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소 실망한 나의 코멘트에 자신의 공감을 담아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의 장면 하나가 불러오는 상호작용이 무척 즐거웠고, 딱딱한 형식에 매임 없이 일상 속에서 서로의 감상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온 연락에는 기껏 준 메시지가 무의미하지 않게 하려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구구절절 나의 코멘트를 덧붙이려 애썼다. 내 이런 과정들을 꼴사납고 귀찮아하기보다 같이 재밌어 해주고 즐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

 

사실 나의 이 프로젝트는 벌써 두 번째 중단을 겪었다. 영화에 대해 깊이 알아볼 새도 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제약으로 두 번이나 중단되었다. 이전에 한 번은 시험 기간이 시작되면서 쏟아지는 과제와 시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영부영 중단되었다. 가장 최근의 중단은 갑작스레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한 시간씩 걸리는 통근 시간 이후 영화를 보고 올릴 기력을 상실해 버린 데에 이유가 있었다.

 

약속 아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내보이는 데에 부끄럽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은 언제든 내가 다시 이 프로젝트를 이어 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알고 소통하는 일이 내 생각만큼이나 재밌고 효과적인 일이라는 걸 어느 정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열정은 언제든 다시 태울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왜 이걸 했고 얼마나 재밌었는지 기억할 수 있다면, 언제든 새로운 시작이 촉발되지 않을까.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지내는 무료한 시간이 아깝다면 이런 식으로도 자신을 움직이게 해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참고로 매일 꾸준히 뭔가를 하고 공유하는 것, 그게 꼭 당연히 영화가 대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뭐든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와 감정이 있는 행동이라면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 혹시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나처럼 소심한 마음의 소유자가 있다면, '사람들이 이런 고독한 노력도 나름대로 너그럽고 넉넉하게 봐주고 호응도 해주던데요' 하는 이야길 전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매일 같이 스토리를 올리던 지루한 나의 노력을 지켜봐주던 모든 친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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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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