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끝나지 않은 천구백오십일년의 차디찬 겨울 [문학]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읽고
글 입력 2021.01.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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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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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오목이에게 은노리개를 주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오목이가 수지에게 은노리개를 주면서 끝이 난다. 은노리개에 담긴 상징적, 실질적 의미를 아는 독자들은 두 장면을 모두 아연실색하며 바라보지만 철저하게 배제된 채 오목이의 버려짐과 오목이의 죽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첫 시작 때, ‘아내’, ‘남편’, ‘엄마’ 정도의 호칭 뒤에서 익명으로 거리감 있게 서술되던 이들은 ‘그녀에게도 일곱 살 적이 있었다. 일곱 살이 되기 전에 죽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일곱 살을 피할 수 없듯이.’라는 문구와 함께 금세 구체적인 개인, ‘한수지’로 바뀐다.

 

일정부분 현실과 과거를 번갈아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는 독자로 하여금 다소 길거나 지루할 수도 있는 장편소설을 더욱 흡입력 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게 해준다. 다섯 살, 일곱 살의 엄마가 ‘일곱 살’에 관련된 비정상적인 거부감을 지니고 있으나 남편은 싸늘하게 무시한다.

 

‘내 일곱 살은 당신의 일곱 살 하곤 달라요. 어느 누구의 일곱 살 하고도 달라요.’ 아내는 필사적으로 소리친다. ‘구호를 외치는 투사처럼 한껏 씩씩하고 자신 있게 목청을 돋웠다’고 묘사되어 있지만 내게는 간절하게 구조를 바라는 자의 마지막 외침처럼 들렸다. 그 가냘픈 애원을 남편은 ‘나는 당신이 일곱 살 때 누굴 죽이려 했다 해도 상관하지 않겠소. 그렇지만 당신의 일곱 살로 남의 일곱 살을 헤아리지 말기를 바라오. 더군다나 우리 아들의 일곱 살을 헤아리고 간섭하는 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니 그리 알아요.’라는 말로 차갑게 선을 긋는다.

 

남편이 물어준다면 아내는 대답을 함으로써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텐데, 듣고 싶지 않아 하는 남편 때문에 독자들은 더욱 애가 닳는다. 한 폭의 그림 같던, 극단적으로 이상적인 가족의 일상이 아내 때문에 단번에 산산이 깨지는 걸 본 독자들은 아내가 왜 그래야 했는지 단 몇 페이지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든 탑일수록 무너지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비극을 자아낸다. 작가는 바둑, 뜨개질, 풍경, 분위기를 통해 단 몇 페이지로 독자에게 평화롭고 이상적인 가족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한다. 그럴수록 아내의 행동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떠한 사연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수지의 일곱 살은 배고픔과 함께 시작됐다. 그녀의 일곱 살은 끔찍했다.’로 아내의 과거가 회상되는 순간, 그 이야기만을 기다렸던 독자들은 탐욕스런 눈으로 회상을 읽어가기 시작한다. 다짜고짜 한수지가 일곱 살이었는데,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다. 작가는 그것을 알고 독자들이 한수지의 일곱 살을 궁금해 할 수밖에 없도록 자신이 고안해낸 장치를 앞서 서술해낸 것이다.

 

처음부터 수지와 기욱의 결혼을 아는 독자들은, 수지가 인재와 기욱을 결혼상대로서 거울질 할 때 누구를 선택할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의 전개를 알고 있는 여유로운 입장으로 수지의 내면심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줄거리를 전부 알고 있는 두 번째에서나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작가는 영리하게도 한 번에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숫제 제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싶은 그 아찔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없다. 작가도 그걸 알고 있다. 단지 그래서 독자는 수지나 수철이가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라서 오목이를 버렸다고 덮어놓고 욕할 수 없다. 내면의 작은 양심이 제 존재를 과시하며 꿈틀거리는 것이다. 정말 네가 저들을 욕할 만큼 선량한 사람이야? 결국 독자는 자신의 비양심적이며 악한 부분을 극대화 시켜놓은 것이 수철과 수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동생을 몇 번이고 버릴 만큼의 잘못을 한 독자는 거의 없겠지만 그럼에도 수철과 수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제 잘못임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고, 고민하지만 결국 진실을 밝히지 않고, 그저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으며, 그러면서도 제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일절 상관없는 자기만족식의 속죄 행위까지 한다. 독자는 작가가 서술한 인간의 추악하고 끔찍한 이기심에서 제 모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전란에 고구마 하나, 밥 한 숟갈을 더 먹은 죗값을 지나치게 후하게 치른 오목은 결국 마음 편히 눈을 감는다. 승자 하나 없는 무자비한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름을 지어 달라야지, 하고 마음은 먹지만 결국 일환이가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일남이, 일순이, 이순이, 삼순이, 영남이, 이 성의 없는 이름은 석이, 혁이와 더욱 비교가 된다. 소설에서 이름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모든 걸 잊었어도 ‘오목이’이름만큼은 꼭 쥐고 있고 그럴수록 더더욱 수철과 수지는 ‘수인’이라는 이름에 매달리게 된다. 실제로 찾고 싶지는 않지만 동생을 찾고 있는 것처럼 비추어지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다. ‘할 만큼 했다.’ 죄책감으로 얼룩진 제 양심을 속일 수 있으면서도 제게 일절 해를 끼치지 않는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어느 한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제목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에서 알 수 있듯이 천구백오십일년의 겨울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수지, 오목이 중심인 것은 틀림없지만 영란, 인재, 기욱, 일환, 인재의 노모, 일환의 사장님, 식모애…. 하고 싶은 말도, 보여 주고 싶은 것도 많은 작가가 선택한 기술법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그들 모두의 마음과 내용을 전부 드러내기에 이만큼 좋은 서술은 없다.

 

물론 작가가 특히 집중하는 인물은 수지이다. 수지가 모르는 곳에서도 이야기는 일어나지만, 앞서 서술된 모든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수지와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후에 일어나는 요약적 축약을 통해서 십여 년간의 오목과 일환의 결혼 생활까지 전부 알게 되는 것은 수지밖에 없다.

 

일련의 가족과 육체적 섹슈얼리티로 얽혀진 이 소설은 한 편의 ‘아침 드라마’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수가 있나, 하고 교묘하게 등장인물들이 얽히게 되는 것이다. 읽다가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이 있다. “안녕하셨어요. 오목이에요.” 단순히 수지의 예전 남자친구쯤으로 생각하던 인재에게 오목이가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독자에게 그들의 삶이 더 이상 개인으로만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실제 드라마였다면 순간 시청률이 50퍼센트는 넘겼으리라 자신한다.

 

각자 개인으로 존재할 때는 알지 못했을 면모들이 인물들이 부딪치는 와중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지는 기욱과 인재를 저울질하며 가지고 놀고, 인재는 수지에 대한 앙갚음으로 오목이를 범하고, 오목이는 박군보다 인재를 사랑한다. 각자 자신이 중심이 된 삼각관계 속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이들 누구도 진정한 사랑이나 애정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그렇게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을 손에 넣은 자는 없다. 소설이 해피엔딩이 아닌 이유는 단순히 오목이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다. 경제적, 물리적, 감정적으로도 끝까지 불행했던 오목이의 삶 때문만도 아니다. 결국 여기 등장한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구백오십일년의 차디찬 겨울에서 갇혀버린 수지와,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한 수철과, 기억해내지 못한 오목이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지가 행복한 척 할 수는 있어도, 수철이 자신이 행복하다고 착각할 수 있어도, 오목이 자신이 행복하다고 자위할 수 있어도, 진정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분법적으로 착하고 나쁜 것이 정해져 있어서가 아니다. 나쁘고 싶지 않아하는, 오히려 피해자이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이들은 순간순간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모여 그들의 삶을 만들었다. 그들의 삶은 독자에게 또 다른 선택의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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