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핸들을 쥐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 [영화]

글 입력 2021.01.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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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먼저 넌 나를 사랑하라 했잖아

너도 그거 못하잖아

우리를 돕고 싶어

 


위 가사는 2018년 9월 발매된 김사월의 정규 2집 앨범 1번 트랙, <로맨스>의 후렴구이다. 신보에 있어 첫 번째 트랙이란 전 앨범을 들어볼지 말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당시의 나는 저 후렴구의 가사를 한참이나 곱씹다 곧 전곡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접했던 이 앨범은 발매 후 이 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한 곡도 빠지지 않은 채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못 들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유명한 격언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자꾸만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처음 삐딱한 시선을 품었던 것은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였는데, 당시의 나는 이렇게 대꾸했던 것 같다. '사랑할 거리가 있어야 사랑을 하든가 말든가 하죠.'


이십 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은 저 격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지만, 여전히 가끔은 태클을 걸어 그 이면을 꼬집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을 의무감으로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령 그 대상이 나 자신일지라도.

 

사회는 우리에게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자기애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말은 참 쉽다. 그러나 만약 바로 그 사회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면? 사회가 단정 지어놓은 수많은 잣대 탓에 어느 순간부터 '사랑할 거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거라면 어쩔 텐가. '남자 혹은 여자라면, 부모나 자식이라면, 수험생, 취준생이라면' 등등 목을 조여오는 엄격한 기준들 탓에 자신을 아끼고 돌보기는커녕 혹사하는 청춘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부지기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춘기에 비하면 많이 성숙해진 지금도, 가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날이면 저 가사를 쏘아 붙여주고 싶어진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너도 그거 못하잖아'라면서.


2009년 개봉한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는 앞서 소개한 김사월의 잔잔하면서도 짙은 감성과는 사뭇 다른 정서를 띄고 있으나 나에게 흡사한 정념을 불러일으켰다. 끝내 나를 사랑하지 못했기에 혼자일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부터 유리되어 홀로 둥둥 떠 있는 그 누군가. 노래 속 화자와 영화 속 주인공은 나에게 비슷한 결로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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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표류기 스틸컷

 


성근(정재영)은 당장 섬에 갇히게 생겼는데도 지나가는 유람선에 제대로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던 사람이었다(뒤늦게 목청이 터져라 질러보지만 이미 늦었다). 1% 남은 배터리를 짜내어 겨우 119에 전화를 걸어서는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기.. 바쁘시겠지만 죄송한데..." 등의 쿠션 멘트로 시간을 다 까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속이 미어터지는 듯하다. 영화 초반부의 그는 마치 눈치 보기를 근성으로 타고난 인간 같아 보인다.


투신자살에 실패한 그는 다시 한번 물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보지만, 이번 역시 목숨을 끊는 데에 실패한다. 그의 두 번째 시도는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어질 타협과 적응이라는 전개로 관객을 유도하는 표면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성근에게 있어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 일인지를 강조하는 의미도 지닌다.

 

그 겁 많고 소심하던 맹탕이 무려 한강에 뛰어들지 않았는가. 물살에 휩쓸리며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다 끝내 실패하는 그의 모습은 성근이 읊조리던 '병신은 죽지도 못한다'라는 조소보다는 '대체 얼마나 힘들었으면 투신을 결심했을까'라며 짐작해보는, 인물을 향한 비교적 따뜻한 시선을 유도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죽음 중 개인적으로 익사를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으로서, 허우적대는 성근을 보면서 어디선가 주워 읽었던 묘사가 떠올랐다. 온몸의 세포가 산소를 원하는데 물만 밀려 들어오는 고통은 허파가 불에 타들어가는 것 같은 감각과 같다고 했다. 그 고통보다 더욱 거대한 압박이 있었기에 그는 견디지 못하고 몸을 던졌을 테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그토록 그의 삶을 짓눌렀던 것일까.


그것은 친절하게도 바로 다음 장면에 삽입되어 있다. 성근은 사회에서 '불량' 판정을 받은 인간으로, 그의 가치는 이미 여러 번 사회의 심판을 거쳤다. 쓸 만한 아들, 쓸 만한 직원, 쓸 만한 애인. 그는 이 모든 지위에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력이 있다. '남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그게 안 되냐', '못된 거랑 무능한 거랑 어떤 게 더 나쁜지 아냐'라는 물음 앞에 죄인이 된 그는 허우적대며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심판들에게 사과를 빌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어지는 것은 그에게 제시되었던 유일한 해결 방법이자, 부적합 판결에 따른 처벌과도 같았던 '대출'이다. 대출 앞에서 그는 그냥 가라앉기를 택하고, 이내 꼬르륵 자취를 감춘다. 관객이 성근의 극단적 선택을 헤아릴 수 있도록 하는 짧고도 효과적인 플래시백이다.

 

*

 

죽음이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나 죽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죽어보려 하는데, 갑자기 탈이 나는 바람에 죽음보다는 뱃속 사정이 더 급해진다. 쭈그리고 앉아 일을 치르던 중, 달달한 꽃이 눈에 들어온다. 입에 넣어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우습게도, 살고 싶어진다.


사루비아 꽃 앞에서 비참함으로 온갖 눈물 콧물을 쏟아낸 그는 갑작스레 각성한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그는 이제 180도 바꾸어 본인이 사회를 버려보기로 한다. 평생을 좇았던 돈, 신용카드, 집 따위 없어도 한번 잘살아 보려는 거다. 어려운 일은 '못 해먹겠다!'라며 내던지면 그만이고, 위험해 보이는 일도 해보고 죽으면 그만이다.


그런 그의 새로운 생활은 의외로 순탄히 풀려나가지만, 너무 순탄하니 또 그것대로 문제다. 막 사는 삶도 슬슬 질리고 따분해져 가던 어느 날, 12g짜리 희망이 그를 찾아온다.

 

 
희망. 백 년 만에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성근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이루어내고픈 목표였다. '짜장면 만들기'란 목표는 그가 자신의 쓸모를 스스로에게 증명할 기회이자 테스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짜장면이 상징하는 그의 희망이란 단순히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의 고난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 아닌, 다른 곳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닌 희망이었다. 그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을 것이고, 그들은 모여 성근의 쓸모를 이룰 테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쓸모는 자기애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다.


이 테스트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격과 불합격의 판단 기준이 무엇에 의해 정해지냐는 것이다. 짜장면 만들기라는 성근의 목표가 현실적인 시각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일이자 허무맹랑한 기준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사회가 요구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멀쩡한 사람도 허수아비로 만든다는 양복 속에 갇혀 평생을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자신을 깎아 맞추기에 바빴던 성근, 그는 처음으로 본인이 원해서 시작한 일을 오롯이 해내기에 성공한다. 끝없이 본인을 재단하는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본인의 가치를 깨달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짜장 스프를 입속에 털어 넣지 않았으며 누군가 시켜 주었던 단비 같은 짜장면 역시 그대로 돌려보냈다. 사회에게 잣대를 넘겨주지 않고, 본인이 쓸만한 인간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해보기 위해서.


기발한 소재에 재미를 곁들인 이 영화가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걸음마가 아닐까 싶다. 자신을 포기했던 이가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해가는 과정. 나도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란 믿음이 싹트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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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표류기 스틸컷

 


매 순간이 사투와 같은 그의 인생에는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죽기 싫었으나 죽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죽으려니 실패해 섬으로 떠내려왔다. 섬을 탈출하려 하니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그 섬에 적응해 살아보려고 하니 또 강제적으로 끌려 나왔다. 이러한 수많은 좌절 중에서도 영화의 후반부 가장 눈물겨운 악전고투가 등장한다.


섬을 집어삼킬 기세의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몇 달에 거쳐 기껏 일구어 놓은 텃밭은 모두 엉망이 되었다. '괜찮을 거야'라며 애써 수습해보지만 희망이었던 옥수수도, 말동무였던 허수아비도 맥을 추리지 못하고 무너져 간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망가지던 찰나, 성근이 쉽게 놓지 못하고 마지막 힘을 다해 붙잡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보금자리였던 오리배이다.


나무에 지탱한 채 한 손으로 겨우 오리 배를 붙잡고 있는 성근. 영화는 몰아치던 폭풍의 사운드를 줄이고, 오리 배와 성근을 교차하여 비춘다. 강한 물살에 오리배는 금방이라도 떠내려갈 듯하고 성근은 안간힘을 다해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이때 카메라가 흔들리는 오리의 얼굴을 비추는데,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천진한 얼굴로 이리저리 뒤뚱거리는 오리는 마치 '이제 그만 날 놓아줘'라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 성근은 오리 배와 작별한다. 힘에 겨워 놓쳤다기보다는 단념을 거쳐 놓아준 것 같다. 물살을 타고 빠르게 뒤로 멀어지는 오리 배. 이 광경은 마치 가만히 서 있는 지하철이 반대편 선로의 열차 탓에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지는 착시현상처럼 오히려 성근(카메라)의 시점이 뒤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리배는 그대로 떠 있는데 성근이 떠내려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어쩌면 그곳을 떠난 것은 집이 아니라 성근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는 겨우 짜장면이라는 희망을 이루어 낸 상태였다. 그러나 섬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그게 다였다. 가장 큰 성과를 이루어 낸 순간부터는 모험의 끝이자 안주의 시작이므로, 영화는 집을 빼앗는 행위를 통해 그가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음을 알린다. 성근 역시 어렴풋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붙잡지 않는다. 애써 얼굴을 구기며 웃고, 손도 흔들어 주는 그의 모습은 눈물겹다.


"그냥 여기 있게 해주세요, 아무 짓도 안 할게요..." 아직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그가 애절하게 읊조리지만, 영화는 해병대를 보내 다시 한번 거칠게 그를 쫓아낸다. 그 매정한 태도에 성근은 요만큼도 허락이 안 되는 거냐며 좌절한다. 그가 흙에 새긴 "F**k you"는 꾸준히 펜팔을 주고받던 상대보다는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보낸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근이 욕을 날렸던 그 전지전능한 존재는 그의 마지막 희망까지 무참히 짓밟은 게 아니었다. 지금껏 돈 문제로 그렇게 괴롭혔으면서 죽으러 가는 길에서는 냉큼 교통비를 지원해 준 것도 아니었다.


결말에서 밝혀지듯이, 이 모든 역경들은 성근이 짜장면에 이어 또 다른 희망을 찾아 성장할 수 있도록, 현실에 안주하려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도록 등을 밀어준 것이다. 마치 첫 등굣길을 두려워하는 아이를 북돋아 일으켜 주려는 부모처럼 말이다. 섬에서 쫓겨난 덕분에 성근은 펜팔을 주고받던 신원미상의 친구 정연(정려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who are you?"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짐으로써 '남자 김씨'를 '김성근'이라 명명해 주고, 그는 존재를 부여받는다.


이러한 영화의 결말은, 인생에 폭풍우가 닥쳤을 때 무리하게 맞서려다 꺾여버리기보다는 한번 그 파도에 몸을 맡겨보고 싶어지도록 만든다. 호되게 성근을 괴롭히는 것 같았던 세상이 알고 보니 뒤에서 그를 받치며 밀어주고 있었던 것처럼, 내 세상의 파도가 역시 나를 예상치 못했던 곳으로 데려다줄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심어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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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표류기 스틸컷

 


잘 될 거라는 말 열 마디보다 나처럼 힘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더 위로된다는 말이 있다. <김씨 표류기> 역시 그와 결이 같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교훈성이 짙은 영화는 아니지만, 두 사람의 미숙하고 서툰 인생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데도 무언가가 가슴을 울린다.


그러니 이 영화가 남달리 가슴에 사무친 당신이라면, 속는 셈 치고 자그마한 물꼬를 틔워보는 게 어떨까. 당신이 자신을 믿고 사랑할 수 있도록, 사회가 함부로 당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도록 말이다. 당신만의 짜장면을 찾아 나설 그 고군분투를 이 영화와 함께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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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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