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 혼자가 혼자에게 [도서]

글 입력 2021.01.0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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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혼 본문.jpg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생활은 왁자지껄하고 즐겁다. 가게에 가서 주문하고 싶은 음식이 많을 때, 여럿이 함께라면 고민하지 않고 다양한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여행을 갈 때도 짐을 나눠 가져오거나 계획을 함께 짜면서 여행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새록새록 쌓일 추억은 덤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사람 간의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하는 시기이다. 꼭 필요한 외출이 아니면 최대한 집에 머무르면서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고 있다. 다른 이의 온기가 자리했던 곳에 오롯이 나의 체온만이 남았다. 식은 자리가 허전하긴 해도, 나의 온도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자리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분명 혼자가 되어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세상의 수많은 혼자에게 전하는 책이 있다. 이병률 작가가 쓴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이다. 저자는 책에서 혼자에 대한 생각, 혼자였을 때의 생각과 경험을 섬세한 문체로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1. 혼자를 힐난하지 말라



 

그때 우리 옆에 한 청년이 앉아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의 어떤 소란과도 상관없는 진지한 옆모습이었다. 친구도 시차를 두고 흘낏 그를 본 것 같길래 내가 저 청년 좀 보라고 툭툭 쳤다. 그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까지 섞어가며 말했다.

 

-쟤는 왜 저렇게 혼자 저러고 있는 거야?

 

친구로부터 그를 경멸하듯 함부로 내뱉는 소릴 듣자니 참 딱하고 아찔했다. 세상을 살면서 혼자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들통나버린 것이다.

 

p.121

 


최근 몇 년 동안 ‘혼자’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변해왔다. 우스갯소리로 혼자 밥 먹는 것이 부끄러워 화장실에서 숨죽여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홀로 있는 모습은 숨겨야 할 모습으로 인식되었다.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친구가 없는 사람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를 누가 달갑게 수긍하겠는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혼자 있는 모습은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벗어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자신이 먹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등. 지금까지는 상대방과 함께하기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음식이나 영화, 여행지에 홀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 년간 여행의 주요 트렌드였던 ‘혼행’이 이를 대변한다. 이제 ‘혼자’는 외톨이, 고독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움직이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다. 아무리 배우자와 친구, 가족이 있다고 해도 자신을 책임지는 건 본인이어야 한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때,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혼자 있는 시간을 존중하고, 또 기꺼이 누릴 줄 아는 것이 자기 자신과 떳떳이 마주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2. 혼행, 떠나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와 여행을 함께하려고 하지 말라.

큰일난다.


갑자기 나에게 아무 일도 아닌 일로 붉어진 얼굴을 보이거나 어쩌면 짜증 섞인 소리로 뭐라 다그칠지도 모른다.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긋나고 만다.


잠자는 시간도 습관도 다르다. 먹는 시간도 먹는 취향도 다르다.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고 어떤 분위기에 휩쓸리는지도, 그곳에서 꼭 하고 싶은 한 가지의 목적마저도 다르다. 아무래도 어긋나고 마는 것이다.

 

p.216

 


목숨까지 내줄 만큼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도 여행 한 번으로 남이 된다.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아마도 여행에 대한 준비와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기껏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먼 곳으로 떠나는 만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꼭 해보고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친구와 갔던 부산 여행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막차를 놓친 적이 있다. 차로 2~30분 되는 거리를 가야 했기 때문에 기본요금에다 야간 할증까지 합쳐져 꽤 비싼 택시비를 내야만 했다. 예산을 정해놓고 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비용 지출은 여행 계획에 차질을 불러왔다.

 

다음 날 일정을 그대로 할 것이냐 바꿀 것이냐에 대한 의견 차이로 둘 다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결국, 그날은 여행 내내 날 선 분위기가 지속했다. 마지막 날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가끔 그때의 미묘한 감정이 떠오르고는 한다. 한 명이 양보했으면 쉽게 끝나는 일이었는데 그게 안 돼서 다툴 뻔했다니.


몇 년 후 혼자서 홋카이도 여행을 갔다. 2박 3일의 일정이었는데, 무계획 여행이라 말해도 될 정도로 즉흥적인 선택의 연속이었다. 목적지로 떠나는 비행기가 지연된 탓에, 둘째 날 계획을 급하게 끌어오고, 눈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30분을 넘게 열심히 구경했다. 나오니 보이는 해 질 녘에 마음이 끌려 저녁도 거르고 운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바깥에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워 도중에 기차에서 내려 바다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 다음 날도, 마지막 날도 나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누군가와 함께했다면 갑자기 저녁을 거를 수도, 내리던 기차에서 내릴 수도,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진을 찍고 밥을 먹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상대방이 배려에 의지해 실행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자리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여행은 오롯이 홀로 떠난 여행이었기에, 마지막까지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혼자 여행의 자유로움이 좋다. 다른 사람과 맞추지 않고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이 할 때의 즐거움도 물론 좋지만, 가끔은 그때의 내 기분에 몸을 맡기는 것. 혼자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3. 시작은 나의 내부로부터



 

힘의 시작은 내가 무엇을 시작했을 지점부터를 말한다. 그 어떤 시작 없이는 그 어떤 반동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반동의 연속이고 그 연속을 통해 일어나는 결과가 결국 미래를 받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나의 내부로부터, 누군가의 신호와 영향으로부터 반동을 멈추지 않을 준비를 하는 추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15

 


공교롭게도 내가 자발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 역시 혼자 있을 때였다.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시기에 즉흥적인 도심 산책을 한 후 쓴 글이었다.

 

신주쿠-요요기-센다가야-오모테산도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서 보았던 한낮의 햇살과 풍경, 왠지 모르게 벅차오른 기분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헐레벌떡 노트북을 켜고 글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왜 글로 이 감정을 남겨놓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의 풍경과 감정을 생생히 전달할 만큼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아니었을뿐더러, 한국어로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일이 있고 난 뒤로 글쓰기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그전까지 쓰는 글이라고는 과제와 다이어리, 몇 통의 편지가 다였던 나의 일상에 ‘글쓰기’가 등장했다. 그때의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의 아트인사이트 활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도쿄에서의 생활은 잊고 지냈던 나의 여유와 감성을 충전해주는 굉장히 값진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생각에 자제하고 있던 소비 욕구와 문화생활에 불이 붙어 지갑 사정도 조금 위험해졌지만.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다.


굳이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나 자신을 알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혼자 있는 시간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에디터 최예리.jpg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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