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예인 '과몰입' 사회, 누가 만드는 것일까

글 입력 2021.01.0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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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매년 1월 1일이 되면 연예인들의 교제 소식이 들리고 유수의 포털 사이트는 관련 뉴스로 도배된다. ‘열애설’에 관한 대중의 흥미는 이전보다 줄어든 듯 보이지만 여전히 연예부 기자들은 12월 말이 되면 새해에 터트릴 뉴스를 예고하며 관심을 끌어모은다. 기사가 올라오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가십성의 정보들과 더불어 취재에 동원된 사생활 침해에 관한 비판, ‘알 권리’에 근거한 기자들의 변론이 한데 얽히고설키며 장작을 더하고 불을 피운다. 불이 꺼진 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소모적인 논쟁은, 끊임없는 지적 속에서도 이 연례행사가 매번 처음처럼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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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의 측면에서 일상과 큰 관련이 없는 연예계 소식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대서특필되고 사람들의 중심적인 이야깃거리가 되는 한국 사회가 ‘연예인 공화국’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직업도, 대중이 다루는 매체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연예계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고, 유튜버 등 콘텐츠 크리에이터처럼 분화되고 다양화된 새로운 직업 세계를 대표하는 직종조차 ‘연예인화’되어간다. TV에서 나와 여러 갈래로 쪼개진 매체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연예인과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의 소식을 이야기한다. 파편화된 만큼 오히려 광범위한 일체화가 가능해진 ‘과몰입’의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문화로 고착된 지 오래다.

 

과다한 관심 속에서 고수익을 벌어들이는 연예인의 건물 매입 소식, 이에 대조되는 열악한 콘텐츠 제작 환경과 노동자 처우에 대한 고발이 제기되면 ‘연예인 공화국’에 대한 비판은 활성화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불균형의 혜택을 받는 연예인을 ‘신흥귀족’이라는 별명의 권력 집단으로 규정하고 소시민과 구분되어 구조적 차별에 가담하는 기득권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기도 한다. 차별의 피해자로 자신을 위치시키는 대중에게 연예인은 관심과 수익만큼 비난받아도 되는 존재다. 이렇듯 연예인에 쉽게 비난의 잣대를 가하며 끊임없이 관심을 쏟아내는 ‘과몰입’의 풍조는 사실 ‘연예인 공화국’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동일한 맥락에 위치해 있다.

 

저널리스트 라파엘 라시드는 한국의 연예인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쉽게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이유가 그들이 대중에게 완벽한 모범으로서의 공인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성취에 쉽게 만족하지 않고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 채찍질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은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한 비교의 준거를 찾아 동경하고자 하며,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는 연예인이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은 연예인이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불완전한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완벽한 동경의 대상만이 누려야만 하는 호화로운 삶을 박탈하려고 하며, 자신에게 그러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이는 연예인의 SNS에 수시로 올라오는 사과문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국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유독 낮은 관용으로 이어진다.*

 

* 한국 문화에 대한 주관적 인상에 근거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대중이 연예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적절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기사이다. 또한 이러한 분석은 왜 여성 연예인을 향한 잣대가 더욱 엄격한지에 대한 원인 또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여성 연예인에 쉽게 가해지는 비난 역시 그들을 보편의 인간과 동일한 인격이 아닌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대상적·수단적 존재로 보는 시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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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연예인의 신격화와 연예인에 대한 쉬운 비난은 본질적으로 같은 원인에 근거하며 이것이 한데 섞여 ‘연예인 공화국’을 만들어낸다. ‘연예인 공화국’ 문화가 해소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연예인에게 불공평하게 쏠리는 과도한 혜택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과실의 크기에 비해 쉽게 비난을 받고 중요도에 비해 쉽게 주목을 받으며 그 외의 것에 대한 비판이 사각지대로 밀리는 동안 폭력에 가까운 공격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다행이지만, 어린 연령의 연예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활동과 건강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 기형적인 현상이며 그 배경엔 그들을 향한 지나친 관심과 기대, 그리고 그것으로 정당화되는 폭력이 있다.

 

한국 문화권에서 공유되는 관성적인 비교의 습관을 차치하더라도 원인은 곳곳에 산재하여 있다. 개인적 통찰이나 취재 없이 실체가 불분명한 ‘네티즌 의견’을 유일한 근거로 삼고 ‘논란’이라는 단어로 잘잘못을 흐리는 저급한 연예 기사와 그것을 여과 없이 방류하는 언론사 및 포털 사이트의 낮은 저널리즘 의식이 ‘연예인 공화국’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다.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를 서슴지 않고 자극적인 기사로 사건의 중요도와 긴급성에 비해 과도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소위 ‘기레기’는 세계 어디를 가나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는 점에서 질 낮은 저널리즘은 연예인을 향한 비난을 이끌어내는 통로가 되기 쉽다. 권위를 해체해야 하는 언론인이 오히려 사회적 통념을 기반으로 한 권위에 기대어 이득을 취한다.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거듭되는 사고와 지적 속에서도 연예 기획사와 방송국에 위치한 제작자들의 반성적 피드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에 있어 연예인을 향한 과도한 관심은 곧 이익이고, 이에 대한 제재가 가동되지 않는 한 이익 창출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연예인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특히, 최근에 제작되어 여러 플랫폼의 형태로 유행하고 있는 연예인과 팬의 쌍방향 소통 서비스는 연예인이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인식을 이용하여 수단으로서의 소통을 상품화한 결과다. 서비스의 제공 여부는 연예인에게 달렸지만 연예인을 평가하는 잣대가 하나 더 늘어난 상황에서 비난과 대상화는 손쉬워졌고, 이는 또다시 ‘연예인 공화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를 통해 이익을 벌어들이는 연예 기획사가 과연 그만큼 연예인을 보호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생전 매체가 만들어낸 폭력적인 여론의 피해자였던 연예인을 다루는 방송국의 부주의한 제작 태도 역시 ‘연예인 공화국’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함을 방증한다. 연예인으로 하여금 악성 댓글에 직면하게 하여 이에 대한 반응을 상품처럼 전시했다는 지적을 받은 한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세상을 떠나자 폐지로 무언의 피드백을 보였지만, 해당 방송국은 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고인이 출연을 통해 행복해했다는 지인의 발언을 내보냈다. 사실상 폐지를 제외한 피드백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송출된 해당 발언은 프로그램을 향한 지적을 방어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는 연예인에게 과도하게 몰리는 공격적 여론에 오히려 연예인을 노출시킴으로써 현상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고 이를 상품화했던 방송국 차원의 반성이 여전히 부재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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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연예인 공화국’은 개개인의 팬덤이나 ‘악플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확대하여 다양한 세계를 지우고 국한된 범주에서 한시적인 오락만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사회에 만연해있다. 연예인은 허점 없이 완벽한 롤 모델도, 구조적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 집단도 아니다.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바라고 요구해야 하는 대상은 더 넓은 세계에 위치해 있음을 인식하고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케이팝의 명성에 도취되기 이전에 ‘과몰입’이 여태 낳은 수많은 결과를 날카롭게 바라봐야 한다. 빛으로 상쇄하며 모른 척하기엔 넓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희생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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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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