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재난 속 글의 힘, 지구에서 스테이 [도서]

소통하려는 노력, 공감하고 싶은 소망이 담긴 시편
글 입력 2021.01.02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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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1일,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은 중국에서 코로나 19 발병이 공식화 된 지 정확히 1년후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건 지난해 12월 초·중순이지만 중국은 이를 곧바로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하지 않았고, 그 동안 중국 관광객들은 전 세계에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그리고 현재, 코로나 확진자는 8200만명, 사망자는 180명이다. 수치상으로 전 세계의 1%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바이러스는 조용히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가고 있다. 날마다 들려오는 뉴스 특보와 사회 기사와는 다르게, 당장 보이는 바깥 세상은 평화롭다. 김소연 시인의 시 구절처럼 ‘재난 영화의 예감은 빗나갔다. 잿빛 잔해만 남은 도시가 아니라 거짓말처럼 푸른 창공과 새하얀 구름이 날마다 아침을 연다.’ 상반되는 이질적인 상황 속에서, 혼란과 우울감은 깊어 간다.

 

지구에서 스테이라는 시집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소통하고, 위로하고, 공감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대적 기록이다. 일본에서 주관한 프로젝트로 18개국 56명의 시인들이 참여했다. 한국, 일본 시편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 외 다양한 국적의 시인들이 시편을 구성해 다양한 개성과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

 

시 각기마다 분명한 색과 장점이 존재해 지루하지 않고 새롭다. 많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보는 것처럼, 시마다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 중에서는 더 알아가고 싶은, 작품을 더 찾아보고 싶은 시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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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상을 담아낸 시

 

 

나는 산책이 늘었다

나는 요리가 늘었다

나에겐 시간이 너무나도 늘었다

축제가 사라졌다

장례식이 사라졌다

옆자리가 사라졌다.

 

- <거짓말처럼>김소연

 

 

코로나 초기, 가장 실감되는 것이 이런 일상의 변화였다. 바빴던 일상에 많은 시간이 생겨났고, 그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초기에는 여유로움으로 인식되었던 시간들이 장기화되자 지루함으로 변질되었다.

 

축제, 각종 행사가 얼마나 반복적인 일상에 활기를 넣어 주었는지도 실감했다. 직접 행사에 가지 못해도, 봄의 5월, 가을의 10월 즈음 느껴지는 축제의 공기, 들뜸의 향연은 삶의 평행선을 그 분위기 자체만으로 올려 주었다. 옆자리가 사라진 시대에서 우리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눈총을 받을 짓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2. 인권, 차별을 담아낸 시

 

 

모든 시민이 규칙에 따라

게임에 참가하고 있으면

문명화된 현대사회라는 환상이 성립된 것이지만

버스 안에서 기침을 한 너를

화난 승객들이

걷어차서 길거리에 내팽개칠 때 문명은 종언을 고한다.

 

- <히포콘더> 에드거 바서

 

 

힙합씬에서 활동하는 에드거는 시인들의 시편 속에서 돋보였다. 날것의 미화 없는 표현과 극단적인 상황이 비현실적인 현실과 너무 닮았다. 코로나를 통해 인류가 쌓아 온 문명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특별한 권리였는지, 힘겨운 투쟁으로 유지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문명화된 현대사회라는 환상을 지탱하기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 과거와 미래, 무엇보다 현재를 위해.

 

 

3. 세계를 담아낸 시

 

 

자칫하면 밀고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공포가 일본에 있다

일국양제가 무너진 홍콩에서도

벌써 이웃에 의한 밀고가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인권문제도 팬데믹도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닌가?

인간의 추악한 면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 <마스크맨> 미야케 유스케

 

*

 

피비린내를 동반한 호흡

죽음을 옮기는 보이지 않는 썩은 냄새

두려움은 낮고 무겁게 울리는 천둥이라

우리의 입과 코를 가리지만

눈 속 깊은 곳은 가리지 못한다.

하나하나 밀폐된 공간들마다 소문이 흘러 나오고

도시를 봉쇄한 사람들은 물도 끊고 먹을 것도 끊어버렸다.

 

- <2020, 보이지 않는 것> 천이즈

 

 

각국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코로나에 대처했다. 유럽 일부국은 봉쇄령을 내리기도 했고,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덴마크는 집단 면역을 시도했다. 가난한 나라들은 코로나에 대응할 자금과 정책이 갖추어 지지 않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지만 뉴스 상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수치와 정보들로는 그 실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인들이 담아낸 현실은 각기 분위기를 지닌다.

 

마스크를 쓰면 고발당하는 일본의 상황은 한국의 상황과 유사했다.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부자연스러운 감시와 고발의 시대가 안타까웠다. 특히 ‘밀고’라는 단어가 냉전 시대, 전쟁의 간첩,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가 바이러스의 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마스크맨>이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묘사했다면 중국의 천이즈의 시는 생명의 위협과 죽음, 생과 사를 다룬다. 기분 나쁜 죽음의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해결할 수 없는 너무 큰 사건, 문제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 진다. 그의 시에서는 전쟁 최전방에 있는 이들의 절박함과 절망감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상황이 이리 심각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한 아픔과 고뇌는 언젠가 무뎌질 것이다. 부정적인 기억은 사라지지 않지만 점차 다른 기억과 추억들이 채워지면서 뒤로 밀려난다. 그것이 망각의 힘, 치유의 힘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시집을 펼칠 때에는 지금보다 가벼운 기분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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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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