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원근법 다시보기-1 원근법은 발명인가 발견인가? [미술/전시]

글 입력 2020.12.3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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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근법의 등장


 

"I See"가 "I Know"를 의미하듯 과학적 경험과 합리적인 사고를 중요시했던 서구 문명은 언제나 '시각'에 우위성을 두고 인간만이 가지는 고귀한 감각으로서 시각과 앎의 영역을 동일시해왔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원근법은 경험 가능한 3차원의 공간을 2차원 평면에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인간의 '보는 방식'을 온전하게 대변할 수 있다고 여겨져왔다.

 

성경의 구절을 전하기 위한 그림만이 제작되며 이미지가 문자에 철저하게 종속되는 양상을 보였던 중세 시대와 달리, 르네상스 시기에 이미지는 자율성을 얻게 되며 회화 자체의 조형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증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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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Euclid)는 그의 저서 『광학과 반사광학』에서 시각 광선들(visual rays)은 관찰자의 눈에 꼭짓점을 두는 상상적인 시각 원뿔을 형성한다는 이론을 펼쳤고 이는 르네상스 원근법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클리드의 이론을 기반으로 르네상스 건축가 알베르티(Leone Battista Alberti)는 원근법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하여 수학과 기하학의 질서에 따라 시각 공간을 합리화하고자 하였다. 그의 저서 『회화론』에서 주장하듯, 당시 그림은 유클리드의 '피라미드 횡단면'처럼 평행선 위 사물을 제자리에 위치시키기 위한 직선 체계인 그리드(grid)일 뿐이었다. "화폭을 열린 창으로 상상하라"라는 그의 표현은 르네상스 시기 회화란 원근법으로 구현된 현실의 '환영'을 보여주는 창구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원근법으로 재현된 그림은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시각'을 가정하는 것이므로 데카르트가 주장한 사유하는 자율적인 주체에 대한 환영이자 '텅 빈 주체'인 코기토(Cogito)와 상응한다. 이 말인즉슨 원근법이 서구 합리주의적 세계관에 젖은 허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브루넬레스키 실험.jpg

 

정확한 선 원근법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미술에 적용한 사람은 르네상스의 건축가이자 조각가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이다. 그가 1420년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에서 원근법과 관련된 한 실험을 진행했다. 한 손에 나무 판을, 다른 한 손에는 거울을 들고 그림과 실제 건물을 풍경을 번갈아 보면 이 두 장면이 일치하는 환영을 느낄 수 있는 실험이었다. 브루넬레스키의 실험은 회화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그에 의해 발전된 원근법의 원리는 미술가 마사초(Masaccio)에 의해 순식간에 수용되고 적용되었다.

 


성삼위일체.jpg

마사초(Masaccio), <성삼위일체(The Trinity)>, 1427–1428

 

 

마사초는 브루넬레스키가 발전시킨 건축학적 선 원근법을 그림에 적용한 첫 번째 미술가였다. <성삼위일체>는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이지만, 인물들의 위치에 따라 공간의 층위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성부의 머리 위에 소실점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입체로 보이는 환영은 소실점과 시점이 일치됨으로써 실현되는데, 이때 관람자의 눈은 브루넬레스키 실험에서 구멍처럼 화가가 설정한 지점에 종속되어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Perspective.jpg

 

 

 

원근법은 발명인가 발견인가?



만약 원근법이 실제 인간의 보는 방식을 똑같이 재현한 형식이라면 이를 모르는 사람들도 원근법으로 구현된 그림을 3차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원근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원시부족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그들은 그림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마사초 이후 선 원근법은 많은 화가들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되어 평면 회화에서 무한한 공간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으나 원근법을 현실의 눈과 동일시하기에는 근본적인 오류들이 존재한다. 오류의 근거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원근법에서의 시각은 눈과 소실점을 하나로 가정한다. 즉, 인간을 변하지 않는 '단안'의 주체로 규정하고 이것이 모든 대상에 적용되는 '보편적 시각'임을 산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카메라처럼 고정된 하나의 눈이 아닌 개인의 감정과 심리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원근법은 실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감각과 신체를 폐기하고 개인의 역사와 재현의 실천이 추방된 주체를 설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파노프스키 『상징적 형식으로서의 원근법』에서 원근법을 변화되거나 대체될 수 있는 '상징 형식'이라고 주장하였듯이 원근법은 진리나 팩트가 아닌 하나의 원리로서 발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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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근법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흐름 속에서 미술계 안에서도 합리적인 재현 역사의 권위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이후인간 시각의 과학적 진리이자 현실이라고 믿었던 원근법의 영광은 무너지고 작가들은 현실을 재현으로서의 회화 양식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자유를 얻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원근법(perspective)'은 실제 인간의 시각을 도식화한 진리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원근법은 구멍이 하나인 카메라의 시각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발견이 아닌 수학적 추상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성된 체계이자 인간에 의해 발명된 특정한 시대의 보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절실히 믿고 있었던 진리가 실은 철저한 목적성 아래 주입된 믿음이거나 그저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16세기 우주의 중심은 지구였던 것처럼 21세기 우리가 신뢰하고 있는 허상은 무엇일까.

 

과거에서 머무른 진리, 그로부터 변화한 진리, 동시대에 새로 태어난 진리는 무엇이며 그것이 규정됨으로써 배제되는 가능성은 어떠한가.

 

 

 

정다경.jpg

 

 

[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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