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영화]

글 입력 2020.12.3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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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탱하던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의 시간은 멈춘다. 그래서 죽음이란 언제나 죽은 자보다 남겨진 자들에게 더 가혹하다. 하지만 해와 달이 뜨고, 또 지듯 시간은 예외 없이 우리를 관통한다.

 

영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의 두 주인공 역시 큰 상실을 감당해야 한다. ‘오드리’는 ‘브라이언’과 함께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왔으나 어느 날 ‘브라이언’이 가정 폭력 피해자를 도우려다 살해된다. ‘제리’는 한때 성공한 변호사였지만 지금은 마약 중독에 빠져 중독자 치료 모임을 전전하는 신세로, ‘브라이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오드리’는 ‘제리’를 싫어했지만, ‘브라이언’이 원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를 장례식에 초대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브라이언’의 장례식을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오드리’는 ‘제리’가 어떤 클리닉의 잡일을 도와주는 대가로 임시 거처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자신의 집에 딸린 빈 차고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제리’를 집으로 데려왔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오드리’가 그토록 싫어하던 ‘제리’를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게 한 것은 ‘브라이언’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드리’는 세상을 떠난 남편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가 ‘제리’였다는 것을 알기에,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순수한 호의가 아닌 ‘브라이언’에 대한 미안함, 후회, 부채감으로 인한 행동이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오드리’는 ‘제리’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드리’의 두 자녀, ‘하퍼’와 ‘도리’ 역시 아빠의 죽음 이후 굳게 걸어 잠갔던 마음의 문을 ‘제리’에게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드리’는 이 상황이 불편해진다. 자신은 모르는 아이들과 ‘브라이언’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브라이언’조차 고치지 못했던 아들 ‘도리’의 물 공포증을 고치자, 마치 ‘브라이언’의 자리를 ‘제리’가 뺏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오드리’는 ‘제리’에게 집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한다.

 

‘오드리’에게 있어 ‘제리’의 존재는 남편의 부재를 상기시키기만 할 뿐이다. ‘제리’가 ‘오드리’의 집에 사는 한, 무엇을 하든 ‘브라이언’의 생전 모습이 겹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드리’는 ‘제리’를 향해 “당신이 죽었어야 해요. 브라이언이 아니라, 당신이요.”라는 말까지 하지만, 정말로 ‘제리’가 죽기를 바라서 한 말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을 알지만, ‘오드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남편의 죽음을 되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제리’는 결국 밤사이에 조용히 ‘오드리’의 집을 떠난다. 어린 ‘하퍼’와 ‘도리’는 다시 찾아온 이별에 심하게 상처받는다. ‘오드리’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자신의 삶을 예전처럼 돌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때 ‘제리’와 같이 중독자 모임에 다니던 ‘켈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제리’가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며 다시 마약에 손을 댄 것 같다는 말에 ‘오드리’는 급히 ‘제리’를 찾아 나서고, 마약 중독자 소굴에서 그를 찾아내 집으로 데려와 돌보기 시작한다.

 

상실을 극복하는 것은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부재에 익숙해지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독을 치료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오드리’는 마약에 취해 힘들어하는 ‘제리’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았다. ‘브라이언’의 죽음으로 아파할 때, 그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을 몰라 아이들에게 화를 내 거나 ‘제리’에게 모진 말을 했던 자신이 떠올랐던 것이다.

 

‘제리’를 남편의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오드리’는 그가 집을 떠나고 나서야 자신이 ‘제리’에게서 위안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 내내 무덤덤하던 ‘제리’ 역시 ‘오드리’에게 집에서 나가 달라는 말을 들은 이후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알아차리지도 못했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그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둘은 조금씩 살아갈 힘을 얻었다.

 

어떠한 접점도 없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상실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의 죽음으로 ‘오드리’는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잃었고, ‘제리’는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우리가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면 의외의 것들이 가장 큰 위로를 주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다가도 우연히 본 광고나 지나가는 사람의 혼잣말, 가게 점원의 인사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지듯이 말이다. 그 이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찰나의 순간 내 아픔을 꿰뚫어 보는 것들에 우리는 위로 받는다. ‘오드리’와 ‘제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

 

‘제리’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둘의 관계는 조금 달라진다. 같고 또 다른 각자의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남편의 죽음 이후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않았던 ‘오드리’는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제리’의 앞에서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고 오열한다. ‘제리’ 역시 ‘오드리’의 권유에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해 ‘오드리’의 집을 떠나 재활원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서로를 통해 억지로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이 해답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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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서 ‘오드리’는 ‘브라이언’과 나눴던 대화를 언급한다. 합선 때문에 차고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각종 서류와 가족사진,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잃은 ‘오드리’가 속상해하자, ‘브라이언’은 ‘그건 물건들일 뿐이야. 우리에겐 서로가 있잖아.’라며 ‘오드리’를 위로했다. 이 장면을 보고 나서 비로소 제목이 이해되었다.

 

아무리 아쉬워도 이미 불타버린 물건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 ‘오드리’와 ‘브라이언’이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잃어버렸어도 서로가 가진 기억은 간직했듯이, ‘브라이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기억을 가진 이들은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아픔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건져 올려야 한다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라고 한다. ‘오드리’와 ‘제리’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지만, 상실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서로의 곁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 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서는 결코 그것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나왔던 메시지, “Accept the good.”는 아마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되려 제 마음에 상처를 낸다.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그저 마음에 남은 흔적을 덮기 위해 억지로 다른 존재를 이용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프고 괴롭더라도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가끔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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