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록달록 찬란한 로즈 와일리 전

글 입력 2020.12.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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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내 사랑(Maudie)>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본 건 여러 호기심들이 응축된 결과였는데, 일단 영화 포스터가 아름다웠고 ('빛나는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다고 한다. 내가 나중에 까먹을지도 몰라서 여기에 적어둔다) 제목 <내 사랑> 옆에 'maudie'가 함께 적힌 이유가 궁금했으며, 주연이 에단 호크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비포 선라이즈를 본지 얼마 안되었기에 에단 호크에 대한 호의적인 마음이 굉장히 큰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에단 호크가 맡은 역할인 에버렛은 사람에게 서툴다 못해 거칠어서 폭력적이고 배려심 없는 면모를 가진 노인이었고,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었으나 이 역할에 대한 실망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진정한 주인공은 에단 호크가 아니라, 배우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모드 루이스 (Maud Lewis)'였으니 말이다.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모드 루이스'는 실제 1903년에 태어난 캐나다의 예술가였다. 모드는 어릴 때부터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아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신체가 완전하게 기능하지 못하나 그림을 그리며 이런 제약을 극복해간다.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니 다소 진부한 서사처럼 느껴지지만, 영화를 직접 보면 모드와 에버렛의 집이 무채색에서 다채로운 색깔들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며칠전 예술의전당에서 모드 루이스를 연상케하는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바로 '로즈 와일리'라는 영국 화가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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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와일리와 모드 루이스가 겹쳐 보이는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내가 가정하는 노년의 시나리오 중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훗날 알록달록한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왠지 로즈 와일리 전시회에는 로망에 대한 해답이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전시장으로 입장했다.

 

두툼한 커튼을 열고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캔버스들이 양쪽으로 쭉 펼쳐졌다. 그 속에 담긴 단순하고 귀여운 그림체, 다양한 색감, 캔버스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굵은 붓터치들을 보니 기분이 산뜻해지는 듯 했고.

 

 

 

Scissor girl


 

Hullo, Hullo, Following-on After the News, 2017, Rose Wylie (Photo by Soon-Hak Kwon).jpg

Hullo, Hullo, Following-on After the News, 2017, Rose Wylie (Photo by Soon-Hak Kwon)

 

 

로즈 와일리의 시그니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금발의 여성이 다리를 쭉 찢고 있는 'Scissor girl'를 꼽을 것이다.

 

로즈 와일리가 미용실의 가위에서 영감을 받아서 탄생한 이 캐릭터는 전시회의 3관인 <테이트 모던의 VIP룸> 코너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에는 테이트 모던 회원들의 작품만 전시되고 VIP만 입장할 수 있는 VIP룸이 있는데, 로즈 와일리의 회화, 드로잉, 조각 작품이 이곳에서 전시되었다고.

 

 

 

축구에 대한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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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tenham go fifth, 2020, Rose Wylie (Photo by Jo Moon Price)

 

 

이 전시가 재밌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FC팬 인 로즈 와일리가 축구를 모티프로 작업한 다수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남편의 영향으로 축구 팬이 되었는데, 축구 경기 자체는 물론 축구 선수들 개개인에도 집중하여 루니, 호나우지뉴, 티에레 앙리, 옌스 레만, 피터 크라우치 등을 본인만의 그림체로 귀엽게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우리나라 선수인 손흥민을 그린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림 속 손흥민은 비록 실제보다 팔 다리가 티라노 사우르스처럼 몽당해진 모습으로 뛰거나 경기 중 무릎을 꿇고 세레모니하는 모습이었지만 로즈 와일리 다운 씩씩한 선으로 담아냈다.

 

또한 작품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 만남을 갖진 못했지만 이메일을 통해 진행된 대화를 바탕으로 완성되어 더욱 흥미롭다. 로즈 와일리는 손흥민 선수에게 등 번호를 7번으로 택한 이유, 토트넘의 유니폼 컬러에 대한 생각, 추천하는 한국 영화 등 개인적 취향에 대해 물었고, 이를 바탕으로 10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로즈 와일리라는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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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왜 로즈 와일리의 그림에 열광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작품은 데생이 굉장히 전문적인 것도 아니고, 어릴적 나와 내 친구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스케치북에 그려져있던 그림들과도 비슷한 것 같은데.

 

그 대답은 로즈 와일리라는 사람 자체가 갖는 브랜드적 의미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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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코카콜라 vs 펩시콜라 블라인드 테스트를 들어본적이 있는가?

 

펩시콜라의 마케팅 담당자였던 존 스컬리는 1975년에 펩시의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펩시 챌린지(pepsi challenge)'라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행인의 눈을 가리게 한 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마시게 한 후 선호도를 조사하는 방식이었다. 중요한 건 로고와 네임을 가리고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결과는 펩시콜라의 승이었다. 맛은 펩시콜라가 더 좋았다는 것. 하지만 소비자들은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 단순히 퀄리티만 보고 소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브랜드가 갖고 있는 선호도, 이미지 등 복합적인 내적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물건을 소비하기에, 코카콜라가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로즈 와일리의 그림 역시 비슷하다. 단순히 그림의 완성도만 놓고 평가한다면 로즈 와일리의 그림보다 구체적인 선을 가진 그림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게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심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로즈 와일리처럼 그 사람 자체가 갖고 있는 스토리가 매력적이면 어느새 그 사람에게 홀딱 반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내가 로즈 와일리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음을 깨닫는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나는 과연 다채롭게 나이들 수 있을까? 세련되게 늙는 법이라는 게 있을까' 에 대한 물음은 앞으로도 자주 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럴 때면 나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더불어 로즈 와일리를 구글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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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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