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시절의 냄새 - 거북이, 컴백하다 [음악]

딥페이크(Deep fake) 기술의 첫 번째 선례
글 입력 2020.12.2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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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언제 감각의 형태로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걸까.

 

백수린 - 그 여름의 빌라 (문학동네)

 

 

이동수단이라고는 자동차밖에 없던 그 시절. 차가 움직이는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직접 녹음한 노래들이 담긴 테이프가 꼭 필요했다. 새로운 노래가 나와서, 노래 순서가 마음에 안들어서 몇 번이고 다시 덧입혀졌을, 본래는 영어 학습지용 테이프였던 그것.


특이하게도 외가댁이 서울이고,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항상 지방을 전전했던 우리집은 명절 때마다 줄줄이 늘어선 자동차 대열에 합류해야 했다. 신동아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서 동작대교에 올랐던 게 서울에 올라오는 길인지, 다시 내려가는 길인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멀미가 심했던 내가 느꼈던 안도감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마 도착하는 길이었나보다.


긴 행렬의 지루함을 이겨내려고 들었던 노래들을 다시금 들어보면, 나는 다시 토독 토독- 우박이 차 위로 떨어지는 날 검은 차들 사이에 정지한 금색 베르나의 뒷자석에 앉아 있다. 오래 가열된 석유냄새가 내 코를 찌르는 것을 무시하려고 아빠의 짧은 뒷머리를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면서.


*

 

노래방이었다.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된 건. 이제는 노래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 역할을 하던 내가 벌떡 일어났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 봐요- 힘들다 불평하지만- 말고-“ 귀여운 그 친구의 몸짓 때문이 아니라 노래에서 풍겨나온 향내 때문이었다. 자동차 노래방의 애창곡이었던 거북이의 빙고가 귀에 멤돌자 다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 곡을 시작으로 계속 됐다. 한참 거북이 노래들을 돌고 나서야 집을 향해 나섰다. 뜨거운 열기가 내 피부를 쓸어냈다. 그 날의 북적북적한 도로의 열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괜시리 집에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세트 테이프가 아닌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으로 듣는 경쾌한 리듬이 내 발걸음을 느리게 했다. 눈 앞에선 형형 색색의 무대 위의 거북이가 선명히 보이는데도 여름 아침 안개가 낀 것 같았다.


모든 뉴스가 무감각했고, 줄글의 나열이라는 것 밖에는 느끼지 못하던 어린 때에, 들려온 그 소식이 충격적이라는 것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거북이 리더, ‘터틀맨’ 임성훈 지병 심근경색으로…” 그래도 나는 계속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으므로, 그리고 계속 나의 서울길에 함께 할 노래일 줄 알았으므로 같은 내용의 많은 뉴스들을 쳐다보고 있는 엄마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나 역시도 잊어갔고, 다른 노래들로 덮어갔고, 살아갔다. 그 사이 나는 죽음의 무게를 알게 되었고, 추억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10년만에 다시 마주하고 나서는 노래방에 갈 때마다 불렀다. 그리고 <거북이의 새로운 비디오 클립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머리 안쪽이 찡하고 울렸다. 무언가 휘몰아 쳤는데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울음을 꾹 참고 무대를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 슬픔을 참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눈물인 것을 알았다.


목소리와 움직임이 그러했다. 터틀맨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거북이의 노래. 가지고 있지 않은 기억들이 저 곳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 모든 인지와 감정들이 엉겨붙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한다.


그렇게 웃고 있었고, 그렇게 춤추고 있었고,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움일까? 눈 앞에 있는 이 장면을 두고도 그리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지금 이 시간에 무대 위에 있는 이 사람을 보고 느끼는 이 감정이 그리움일까?


 

비웃어도 욕한대도 믿음대로 가. 그냥 다 고마와.

 

거북이 - 새로운 시작 (원곡 : 가호 - 새로운 시작 (이태원 클라쓰 OST))

 


목소리가 닮은 사람이 노래를 불렀어도 “고마와”라는 한 마디가 눈물샘을 건들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다. 고맙다는 말을 되돌려 주고 싶어도 누구에게 말을 건내야 할 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가사는 노래를 부르기 위한 도구였다. 입 밖으로 내어야 하긴 하는데, 읊조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 붙여 놓은 일련의 발음 도구. 또는 무게를 두어야 하는 멜로디 라인을 부각하기 위한 도구. 그래서 나는 유독 가사를 외우지 못했고, 리코더로 만화주제가를 부를 수는 있었지만,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건 힘들어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던 너.

따라 가고 싶어 울었던 철 없을 적 내 기억 속에 비행기 타고 가요.

 

거북이 - 비행기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이 이렇게 보편화 되기 전에 나는 무엇으로 꿈을 꾸었기에 이렇게 필사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건지 자주 생각해 본다. 한 가지 이유만을 가진 것은 아니기에 끝나지 않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최소한 그 시작은 자동차 감옥 안에서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따라가고 싶었던 때이다. 그렇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몇 안되는 가사 중에는 이 한마디가 있다. 너무 많이 커버린 지금은 철 없을 적 내 기억 속에 동경했던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점점 소멸해가고, 남은 기억들을 현재의 삶과 마구 섞어 재정립한다. 좋을 대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방어기제가 아니라, 소복 소복 그 위로 많은 일들이 쌓였기 때문이다.


터틀맨, 임성훈씨의 귀환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는 세월 속의 한 축마다 새로이 들리는 가사들을 남겨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 멈춰 있었던 임성훈씨의 시간이 다시 우리와 같은 속도로 잠시나마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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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했을 것이다. 딥페이크(Deep fake) 기술의 부정적 활용에 따른 부정적 인식과 고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인격 모독적 성격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무대에 서 있는 거북이 멤버들, 그 무대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던 임성훈 씨의 가족들,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고 코멘트를 남긴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까지, 2020년의 클립 하나는 어여쁜 향기를 불러 왔다.


뭇매를 맞을 수 밖에 없던 딥페이크. 96~98%가 음란물에 쓰이는 이 기술. 게다가 딥페이크 포르노의 피해자 25%는 한국 여자 연예인. 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이 곳에 나는 도대체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기술의 진화와 인간 의식은 같은 도로 위를 달리고 있지 않다. 기술이라는 자동차를 또는 비행기를 운전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임성훈씨.


이 기술이 많은 사람들을 다른 방식으로 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셀 수도 없는 많은 가해자들에게도 흐르는 시간이 어째서 한 사람에게만은 멈춰 있었던 것인지 많은 것들이 일순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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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만이 월등히 부각되던 기술 발전의 미래.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임성훈씨. 이제나 저제나 그런 사람이다. 그가 현 세대에게도 “새로운 시작”의 심볼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


다시 한 번 오래 가열된 석유냄새가 한꺼번에 내 피부 위로 흘러내렸다. 많은 것들이 동시에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이 비디오 클립이, 다음에,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에게 가져다 줄 새로운 감각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그 때에도 이 시절의 냄새를 내가 추억하게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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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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