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림이 내게 말을 걸었던 순간 [미술/전시]

글 입력 2020.12.26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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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 <수렵도>


 

연 푸른 배경 위로 말을 탄 소년이 있다.

 

소년은 창을 들고 있고 그 옆에는 두 마리의 노루가 지나간다. 사냥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 제목을 보니 <수렵도>다. 하지만 소년의 얼굴엔 사냥에 들뜬 모습도, 긴장한 내색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평온하다. 세상에 무심한 듯 초월적인 얼굴이다. 풀어헤친 앞섶과 짧은 바지, 마구도 없이 편안히 말 위에 앉아있는 소년. 달리는 말의 격렬함은 소년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숲을 연상시키는 배경에는 뚜렷한 형태가 없다. 모든 것을 달관한 사람같은 소년의 표정에 배경은 숲이 아니라 하늘처럼 보이기도 한다. 달리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날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그렇게 평온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에서 풍기는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자꾸 눈길이 갔다.

 

*

 

소년의 표정은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감정적이고 유치하고 바보 같은 모습이 너무도 싫어서 어른스러운 사람이고 싶었던 과거의 나를. 소년의 몸에 어울리지 않는 초연한 태도는 내가 항상 바라왔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잘 웃지 않았고 세상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도록 감정을 자주 억눌렀다. 그게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그렇게 행동하면 동경하던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정을 죽이면 편하다. 단단한 갑옷 속에 숨은 것처럼 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사람과 교류하며 마주하는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은 무표정과 무반응이라는 벽에 튕겨져 나간다. 나는 미숙하고 어수룩한 반응으로 비웃음과 놀림을 받느니 차라리 반응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기쁨과 행복을 포기했다. 모두가 슬프거나 웃는 상황에서 무표정하게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저들과 달라’ 하는 상대적 우월감으로 옹졸한 자존심을 채우기도 했다.

 

그리고 무뎌진 감정이 익숙해지고 나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내가 세워둔 견고한 벽 뒤에 숨어 자유롭게 다니는 사람들을 멀찍이 바라볼 때 마음 한 켠엔 부러움이 일었다. 마음껏 울고 웃고 미숙함과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동경하던 모습이 보였다. 어른스러울 거라 생각했던 내 모습은 정작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웠다.

 

마땅히 겪어야 할 것들을 외면해버리고 당장에 완성된 모습을 따라 하려고 애쓴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꽤나 컸다. 사람들의 대화에 공감하기 힘들었고 그 안에서 이방인처럼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 자주 공허해졌다. 난생 처음 홀로 비행기를 타고 먼 타국으로 떠날 때도 설레지 않았다. 낯선 이국 땅에서 생경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어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그제서야 알았다.

 

그 뒤로 감정에서 도망쳐온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살았다. 가감 없이 적어 내려간 일기를 시작으로 억눌러온 감정을 조금씩 마주했다. 감정을 외면해버리면 찾아오는 공허한 평온함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이겨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흘러나온 노래 가사 한 소절에, 영화의 한 장면에,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마음이 동요했다. 길고 어두운 터널 끝에 만난 빛처럼, 그렇게 느낀 감정들은 생생하고 뚜렷했다.

 

*

 

이 그림을 잊을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미술을 공부하기로 했지만 전시를 보러 다니며 접했던 작품들에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었다. 기계적인 암기와 겨우 쥐어짜낸 감상으로 얼룩진 과제를 할 때마다 다른 길을 가야겠다 다짐했었다.

 

그러던 중 이 그림을 봤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수렵의 역동적인 모습과 그림 속 소년의 초연한 얼굴의 대비는 신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꿈 속에서 잠시 본 환영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과의 간극이 가져온 신비로움과 어렴풋이 느껴진 어린 시절의 동경이 겹쳐져 처음으로 미술 작품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작품 앞에 한참이고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누군가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신기루 같은 이 그림은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다. 개인소장 작품이기 때문에 박노수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지 않고서야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이 그림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세속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꿈을 그림으로 그린 박노수처럼, 이 그림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길 꿈꾸며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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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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