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회색의 ENFP, 진금미입니다.

글 입력 2020.12.2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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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학교 중어중문학부 진금미입니다. 관련 활동으로는…

 

기계처럼 써댄 자기소개서에 촌철살인 같은 비판이 들어왔다.

 

“거짓말 못하는 초등학생이 쓴 것 같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글과 관련된 피드백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닌데 이상하게 그 말만은 너무 아팠다.

 

나는 원래 나를 드러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나 글을 쓸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내리고 표현하는 것을 절대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각 잡고 나를 설명하는 자기소개서는 단 한 줄도 쉽게 써지지 않았다. 꾸역꾸역 완성한 결과물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자기소개서란 본래 내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이 회사에 얼마나 적합한 인재인지 어필하기 위한 글이다. 과도한 솔직함 같은 건 절대 끼어들어선 안 된다. 있는 그대로밖에 못 쓰는 나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영역이다.

 

그 무렵 나는 이런 조언도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고. 상황에 따라서 가면을 바꿔가며 적당히 포장된 ‘나’를 드러내는 건 사회생활의 기본이라고. 맞는 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사람은 다양해지고 맺는 관계도 복잡해지는데 언제까지고 한 가지 면만을 고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자리에 맞게 다양한 자아를 만들어 여러 갈래로 나를 분리해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왜 나는 그게 잘 안 될까 고민했다. 답은 간단했다. 내게 호감을 보인 누군가가 나에게서 예상 밖의 모습을 보고 실망할 까봐 두려웠던 거다. 혹시나 헛된 기대라도 품을까 조급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이렇게 외쳤던 거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게 좋으면 남고 싫으면 떠나도 돼.’

 

그렇게 글과 말로 나에 대해 떠들어댔으면서 나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그저 사랑받기 위해서, 미움 받지 않기 위해서 나 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나를 강박처럼 표현했다.

 

무엇이든 적정선이 중요한 법이다. 거짓된 나를 꾸며내는 것도 성급하게 전부를 드러내는 것도 나한테 좋은 일은 아니다. 전자와 후자 모두 나에 대한 확신을 상대가 심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멋지다고 생각할지. 아마 다 읽자마자 바로 잊어버릴 가능성이 가장 크겠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생각을 접을 것이다. 공들여 탐구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글로써 어떻게 펼칠지만 생각할 것이다.

 

 

 

회색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정말 저것만이 정답일까?’라는 의문을 자주 가졌다. 예를 들면 히어로물에서 영웅이 악당을 처단할 때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똑같이 폭력으로 되갚는 게 맞는 걸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그렇게 나는 액션 영화도 편하게 못 보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같은 영화에서 남들은 즐거워하는 순간에도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저건 범법 행위 아니야?’ ‘저기에선 악당의 말을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에 혼자 심각해졌다. 주인공만 보면 되는데 굳이 악당, 조연의 입장까지 신경 쓰는 탓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심각함을 제대로 된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다. 아무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니 나만 이상한 것 같았다. 여러 작품을 향유하고 고찰한 결과 내가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달리 세상은 수학공식처럼 명확하지 않다. 정답인 줄 알았던 게 오답이고, 오답인 줄 알았던 게 정답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많았다. 선과 악도 그중 하나다. 이 세상에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라고 정의내릴 만한 건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모두 착하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착하다.

 

그래서 나는 마냥 좋은 줄만 알았던 인물이 타락하거나 마냥 나쁜 줄만 알았던 인물이 윤리적인 면모를 보이는 작품을 좋아한다. 사람을 쉽게 특정 짓지 않는 창작자의 태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창작자에게 항상 신뢰감을 느낀다.

 

비단 예술 작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 역시 복잡한 사람이기에 항상 착하거나 항상 나쁠 순 없다. 그래서 가끔씩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자만에 젖어들 때 ‘정말 그럴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꼭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모든 이슈에서 나는 한쪽만 택하는 일이 어렵다.

 

그런데 뉴스에서든 일상대화에서든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는 식의 논쟁이 자주 보였다. 예전에는 애써 한쪽의 입장을 선택해 주장했다. 나조차 내 주장을 확신하지 못하니 상대가 설득될 리 없었다.

 

영국 명상잡지 브리드의 [혼돈 속의 평온]호에서 유독 공감했던 기사가 있다.

 

 

확고한 의견이 없어도 좋다. 그게 인간적이고 정직하다. …(중략)… 자신의 무지와 지식수준의 차이 그리고 자신의 논거가 어느 한 편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수록, 배움과 성장의 장이 열린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지혜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성장하고 서로에게 진솔하게 다가가고 배우려는 자세를 취할 때 발전한다.

 

- 캐롤라인 패턴든, ‘의견 없음’ 중에서

 

 

처음으로 한 쪽을 택하지 못하는 내가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확고한 주장을 펼치는 모든 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의 나를 기꺼이 받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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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엔프피(ENFP)입니다


 

내 생각은 습기가 많다. 폐쇄적인 곳에서 싹트면 습기를 잔뜩 머금고 곰팡이를 피워낸다. 흔히 우울한 생각에 파고드는 행위를 땅굴 판다고 표현하는데, 직접 겪어보니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방에서 부정적인 생각에 잠기면 말 그대로 좁고 깊은 굴을 파내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가장 우울해지는 장소는 침대라는 글을 읽었다. 확실히 나도 침대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내 땅굴이 더 깊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밖을 나가 걸었다. 사람들에겐 그저 취미로 산책하는 거라고 했지만, 사실 나에겐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산책.jpg

오늘도 산책했습니다.

 

 

잠깐 떠오르고 사그라질 줄 알았던 MBTI가 여전히 화제다. 네 개의 알파벳으로 나에 대한 해석을 확인하는 건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일이다. 나의 MBTI는 ENFP다. 여기서 외향성을 나타내는 E가 80%에 육박한다.

 

나의 에너지는 전적으로 밖에 있다. 집에 혼자 있으면 기분이 처지고 사람들과 소통하면 곧바로 기운이 샘솟는다. 소통의 장소가 야외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혼자를 즐기기 위해선 꼭 집을 벗어나야 한다. 이런 나의 기분전환 수단이 산책인 건 당연하다.

 

어릴 때는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교실에서 여러 명이랑 부대끼는 게 불편했고 혼자 있는 게 훨씬 편했다. 성인이 되고 진짜 내향적인 사람을 만나고 나서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향적인 게 아니라 그저 사람이 무서웠던 거였다.

 

내 주변의 내향적인 친구들은 자신의 성격을 부정하거나 고치려 들지 않았다. 낯가리는 특성을 인정하고 가까운 사람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과거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말 한 마디 걸지 못하는 나를 비관했고 군중 속에서 고립된 시간을 외로워했다. 여러 사람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편안하다.

 

굳게 확신했던 나의 특성이 전복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겐 외향성/내향성이 그러하다. 과거에도 나는 집에 혼자 있는 게 답답했고 그래서 산책을 좋아했다. 그때에도 나는 다른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항상 소통하고 싶었다. 현재와의 차이는 자신감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이 입을 모아 해주는 말이 있다. “예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그땐 벽을 치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아서 좋다.” “지금이 너의 본모습인 것 같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모른다. 당연한 줄만 알았던 나의 특성이 상처에 대한 방어기제이거나 사회로부터 학습된 결과일 수도 있다.

 

여전히 내겐 미처 파악하지 못한 본모습이 많다. 죽기 직전까지도 내가 나를 다 알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이 사실을 동력삼아 내일을 살아간다. 내가 모르는 나를 언제 또 발견할지 모르기에.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인 것 자체가 그 증거인데 말이다.

 

그런데 올해만큼은 당연한 소리가 아니었다. 마냥 행복했던 글쓰기가 나를 압박하는 도구로 바뀌었다는 걸 인식했을 때 나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나는 글을 쓰는 거지?’

 

가장 기본적인 정의로 돌아가자. 글쓰기는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이다. 나는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것에 익숙했다. 아무도 내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글은 달랐다. 당장 눈앞에 대상이 없어도 미래의 독자를 상상하며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취업준비를 위한 자기소개서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글이 아니다. 인사 담당자의 눈에 들어 채용되기 위한 목적성 글이다.

 

오늘 나는 뚜렷한 목적 없이 최근 가장 깊이 고찰했던 나의 특성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읊어댔다. 이 불친절한 자기소개를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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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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