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숙소를 선정하는 기준 [공간]

글 입력 2020.12.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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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한다. 가기 전 계획을 짜고 새로운 풍경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진솔한 대화가 좋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행의 여러 묘미 중에 내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숙소다. 가고 싶은 숙소에 맞춰 여행지를 정할 정도로 나에게 숙소의 의미는 크다.


예전에는 여행지의 관광명소에 초점을 맞추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한 군데라도 더 가야 본전을 찾겠다는 생각에 이른 아침에 나가서는 밖이 어두워지고서야 지친 몸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이렇게 빡빡한 일정으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쉬러 온 느낌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체력도 좋지 않을뿐더러, 좋지 않은 잠자리에 가면 피로가 풀리지 않아 다음날 일정 소화에 차질이 되기도 했다. 쉬러 여행을 오는 것인데 오히려 더 피로하다니. 빡빡한 여행의 절정은 3년 전의 오사카 여행이었다. 4박 5일의 기간 동안 20시간만 자고 돌아다녔더니 몸에 피로가 쌓여 호되게 앓아누웠다. 이때를 기점으로 나의 여행 스타일은 크게 바뀌었다.


‘휴식’을 위한 여행이라는 신조에 걸맞게 일정을 느슨하게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숙소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다. 돌이켜보면 숙소가 좋아야 여행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어느새 숙소는 여행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그 뒤부터 숙소 선정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자연스럽게 소소하지만 확고한 나만의 숙소 선정 기준도 생겼다. 기준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숙소의 테마(에어비앤비라면 호스트의 취향이 묻어날 것)이다. 숙소를 어떻게 꾸미고 디자인하는지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크게 바뀐다. 여행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인 만큼, 단순히 잠자리를 넘어서서 숙소 자체만으로도 리프레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머무르고 싶다.


두 번째는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공동 공간의 유무다. 쉽게 말하자면 카페의 테이블, 집의 거실과 비슷한 거다. 숙소 한쪽에 모두가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면, 함께 모여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같이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요리까지 된다면 금상첨화다. 같이 간 사람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서비스다. 청결한 시설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정말로 쉬고 간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기억에 남는 숙소는 춘천에 있는 '동주'와 제주의 '잠시라도'이다. 공교롭게도 두 곳 모두 전문 숙박시설이 아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서만 예약할 수 있는 일반 주택이다. 아무래도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취향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 두 곳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전하고 싶다.

 



1. 춘천 ‘동주’


 

‘동주’는 강원도 춘천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를 테마로 정해 꾸며놓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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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처음 들어오자마자 갤러리에 온 기분이 들었다.

 

집안 곳곳에는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여러 소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스티커, 엽서, 시집, 책에 뿌리는 디퓨저 등 다양한 것들이 한데 모여 윤동주 시인에 대한 호스트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살짝 노란빛이 감도는 조명과 원목으로 통일된 가구,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는 ‘동주’만의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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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가지에 빠지면 관련 소품들을 소소히 모으고는 한다. 벽과 테이블, 심지어 화장실에 붙어 있는 글귀 등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다양한 오브제, 관련된 디테일을 찾는 게 소소한 재미가 되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 외에도 음악, 책 등에서 호스트의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거실에는 스피커와 수많은 CD가 자리해 있다. 가수 윤종신, 새소년, 선우정아. 그리고 음악 Autumn Leaves, Still With You 등 잔잔한 재즈와 7~80년대 노래를 선호하는 호스트의 확고한 취향을 알 수 있었다.

 

책도 여러 권 놓여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따로 읽을 책을 챙겨와 잘 보지는 못했지만 여기서도 역시 취향이 느껴졌다. 특히 애정 하는 것에 대한 열정, 취향의 결이 나와 맞아 더 좋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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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는 빈티지한 무늬의 식탁보를 덮어놓은 테이블이 있었다. 이 곳에서 영화 ‘동주’도 보고 일기도 쓰며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을 넘어서 주인장의 취향을 공감하고 여러 음악, 향기도 맡을 수 있는 갤러리에서 잠을 자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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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곳곳에는 과거에 이곳을 스쳐 간 사람들이 적어놓은 편지가 있었다. 하나하나 굉장히 공감되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사진 속의 글이다.

 

 

 

2. 제주 ‘잠시라도’



‘잠시라도’는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에 있다. 숙소 옆에는 ‘언제라도’라는 독립서점이 있는데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호스트가 운영하는 숙소인 만큼 숙소 곳곳에는 독립서점과 책, 고양이에 대한 여러 소품을 찾아볼 수 있었다. 주인장의 세심한 감각으로 꾸며놓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참 귀여웠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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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곳곳에는 제주도의 독립서점을 소개하는 지도와 제주에 관한 책이 있다. 제주에 대한, 그리고 서점에 대한 호스트의 열정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서점에서 직접 판매하는 엽서도 곳곳에 있었다.

 

숙소 옆에는 리틀 갤러리도 위치해 분기별로 달라지는 간소한 전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전시 준비 기간에 이곳에 머물렀던 터라 직접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숙소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구경을 해서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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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양이에 대한 호스트의 무한한 애정이 가득 느껴졌다. 숙소의 앞마당에는 넓은 평상과 네 개 정도의 고양이 집, 밥그릇이 놓여 있었다. 고양이들은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안전한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다니고,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졸기도 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평화롭고도 여유로운 오후를 즐겼다. 간식을 들고 마당으로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발치에 모여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기다렸다. 그르릉 소리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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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가장 좋았던 공간은 거실이었다. 한데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푹신한 카펫이 깔렸고, 그 위에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종이 몇 장과 펜만으로 배꼽을 붙잡는 시간이 이어졌다. 빙고 게임, 야구 게임, 초성 게임 등 수많은 게임을 했다.

 

버섯 카레, 오므라이스, 밀푀유나베 등 다양한 음식을 이 곳에서 함께 만들어 먹기도 했다. 숙소가 꽤 넓었는데도 불구하고 엉덩이가 바닥에 붙어있는 것 마냥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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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옆에 있는 리틀갤러리 위에는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이 있었다. 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의 색깔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밤에는 별이 쏟아질 듯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식어버린 찬 공기에 떨면서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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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위치한 구좌읍 하도리는 해녀의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만큼 바다도 가깝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사람도 많이 없어 조용히 산책하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제주의 푸른 무밭과 당근밭을 원 없이 구경했다. 덕분에 당근잎과 무잎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숙소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올레길 코스로 지정된 해안도로가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하면서 제주도의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지루해지면 이름 모를 해변에 내려가 모래성을 쌓았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롭고도 한적한 휴식을 즐겼다.

 

 

 

3. 공간이 주는 힘


 

두 공간의 느낌은 많이 달랐지만 모두 주인장의 취향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전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나의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여행에 함께한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장소였다. 그리고 호스트의 세심한 배려를 통해 머무르는 동안 큰 불편함 없이, 그 이상의 만족감을 얻고 갈 수 있었다.


이곳들을 통해 숙소가 여행에 주는,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늘어나고 있는 지도 앱 속의 ‘갈 곳’ 리스트를 실현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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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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