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연말 보내기 [사람]

글 입력 2020.12.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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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연말이라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지만, 내 연말은 딱히 지난해들과 다를 것이 없어서일까, 나름대로 연말 기분이 난다. 원체 복작복작한 분위기에선 쉬이 피로감을 느끼는 편이기에 모두가 밖으로 나오려 하는 이맘 즈음이면 반대로 내 외출의 빈도는 잦아들었다.

 

대신 애인 혹은 소수의 친구들과 우리만의 공간에서 딸기가 잔뜩 올라간 케이크 그리고 와인으로 우리의 지나간 한 해를, 또 다가올 한 해를 고대하며 자축하곤 했다.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고 어쩌면 지루할 만큼 따뜻하고 평화로운 순간들을 만끽하곤 했다.

 

올해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연말을 맞아 난 몇 가지 것들에 푹 빠져있다.

 

일단, 며칠에 걸쳐 정성껏 초콜릿을 만들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소수의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고마운 그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수제 초콜릿을 떠올렸다.

 

좀 더 물질적인 선물이 그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뭔가 올해엔 무엇보다 내 마음이 전달되길 바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친구로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고 내 곁에 머물러주는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직접 만든다는 건 꽤나 수고스럽고 꽤나 많은 마음가짐을 필요로 한다. 나 역시 장을 보고 초콜릿을 녹이고 굳히고 유리병에 담는 그 모든 순간에 그들을 생각했다. 이 수제 초콜릿은 표현에 서툰 내가 그들에게 쓴 한겨울의 러브레터와도 같다. 그들 또한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 먹을 때마다 날 떠올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둘째로, 해리포터를 정주행하고 있다. 할 일이 잔뜩 밀려있는 와중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고 중간에 끊지 못한 채 마지막 편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지난 시절, 난 해리포터의 광팬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의 추천으로 해리포터를 처음 읽은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마법에 빠진 듯 순식간에 모든 시리즈를 다 읽어냈고 그 후 10년간 각각의 시리즈를 과장 없이 최소 100번씩은 읽었다. 다음 페이지의 내용을 술술 외는 것은 당연지사, 책의 내용을 달달 외워버린 나머지 영어를 잘 못 하는 내가 원서까지 자연히 읽게 되는 수준이었다.

 

중학교 때는 나만큼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자체적으로 퀴즈를 주고받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미술 공모전에 해리포터를 그려 내면서 성인이 되면 9와 4분의 3을 어깻죽지에 타투로 새길 거라고 다짐했다.

 

스무 살이 넘고는 그렇게 광적으로 해리포터에 빠져있진 않았지만 매년 겨울의 초입에서 한 번,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한 번은 꼭 해리포터가 떠오르곤 한다. 작품 속 주 배경이 눈 내리는 계절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누군가에겐 그저 유치한 판타지물일 수 있겠지만, 내겐 사랑과 우정을 가르쳐준 존재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의 우정은 친구란 무엇인지, 불사조 기사단은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인지, 덤블도어와 맥고나걸은 스승이란 무엇인지, 집요정 도비는 은혜란 무엇인지, 시리우스는 가족이란 무엇인지 말이다. 오늘까지도 이 명작은 나로 하여금 사랑 없이 사는 이의 삶이 얼마나 가엾고 불행한지,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지 깨닫게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를 계획 중이다. 늘 그렇듯 먼 미래는 예측하지 못하지만, 머지않은 날들은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성과로, 찾아주는 곳들이 생겼고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해서 해나갈 생각이다.

 

또, 내년이면 졸업 학년이 되는데 과 특성상 졸업 전시를 진행하게 된다. 50명 정도 되는 인원의 졸업 전시를 졸업 준비위원회가 책임지게 되는데, 대학 생활 4년을 매듭짓는 과정에 이왕이면 내가 직접 참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졸준위가 되었다.

 

갤러리 대관을 알아보는 중인데 솔직히, 벌써부터 부담스럽고 어깨가 무겁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도 없고 확신도 없다. 무조건 따라올 수밖에 없는 질책과 원망 역시 벌써부터 두렵다. 그렇지만, '아무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한다. 그리고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또 해내리라 믿는다.

 

한 해의 마지막 글은 좀 더 멋들어지게 쓰고 싶었지만, 해리포터 마지막 편을 보러 가야 하기에 마음이 급하다. 그리고, 연말인데 뭐가 됐든 간에 며칠만이라도 부담 좀 내려놓고 지내고 싶다. 모두에게 따뜻하고 건강한 연말이 되길 바라며, 내년에 만나요.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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